못 믿을 건 나이다. 자네 몇 살인가. 들어도 답이 얼른 나가지 않는다. 나무는 해마다 한 마디씩 새 가지를 묵은 가지 끝에 정확하게 올려놓는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사람의 나이도 분명한 숫자가 있을 터인데 대부분 그냥 눙치고 산다. 어려서는 왠지 올리려 하고, 늙어서는 자꾸 깎으려고 하는 게 버릇이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연 나이, 만 나이, 한국 나이, 생물학적 나이 등 종류도 많아서 대강 얼버무리기 일쑤다. 올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한국인이 있었다. 두 분은 인터뷰에서 음악과 수학의 조화를 이루는 대위법처럼 아주 비슷한 소감을 남겼다. 우승했다고 실력이 갑자기 느는 것도 아니죠(임윤찬, 피아니스트). 상을 받았다고 문제가 잘 풀리는 것도 아닌데요, 뭘(허준이, 수학자). 세상에 우뚝한 성취와 ..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폐기’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지난 12월14일 경북 울진에서 신한울 1호기 준공식이 열렸다. 한국 토종 원전이라는 신한울 1호기에 친원전 진영에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즈음 떠오르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나름 가지고 있는 답을 적어본다. 첫째,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 확대가 필요한가? 원전이 탄소 배출이 상당히 적은 발전원인 것은 분명하지만 결국은 비용과 시간의 문제다. 원전은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에 비해 더 이상 저렴하지 않을뿐더러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신한울 1호기는 착공부터 가동까지 12년이 걸렸고 앞으로 원전이 더 지어진다면 역시 10년 이상 걸릴 것이다. 그러나 기후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 티핑포인트를 막을 수 있는 ‘탄소예산’은 채 10년 분량도..
도쿄특파원 시절이던 2009년 일본의 한 경제인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미쓰비시UFJ리서치&컨설팅 이사장으로 있던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嚴)란 사람이었다. 오부치 게이조 내각(1998~2000) 때 총리자문기관인 경제전략회의의 핵심 멤버로 참여한 나카타니는 일본의 구조개혁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가 쓴 책 한 권이 현지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던 게 인터뷰하게 된 계기였다. 당시 그는 저서 를 통해 미국형 신자유주의를 맹신했던 자신의 과거 판단이 오류였음을 인정하면서 규제 완화와 자유경쟁체제 강화가 일본을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규제에는 사회나 경제를 정체시키는 요인이 가득하다고 봤다. 당시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미국식 자본주의가 초래할 사회의 영향을 과소평가했다”고 인터뷰에서 털어놓았..
(50) 영도다리 1971년, 2022년 영도다리. 셀수스협동조합제공 아버지는 자신도 본 적이 없는 부산 영도다리를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다리가 하늘 위로 솟구치면 그 밑으로 큰 배가 지나간다”는 아버지 얘기가 신기하면서 거짓말 같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군 침략으로 피란민들은 남쪽으로 내려갔다. 피란길에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거듭 상기시켰다. “엄마, 아버지랑 헤어지면 어디서 만나자고?” “영도다리요.” “어디라고?” “영도다리.” 일제강점기 1934년에 세워진 영도다리는 다리길이 214m 중, 교각 사이 한쪽 다리 상판 31m가량이 80도 이상 들어져 올라가는 한국 최초의 도개교(跳開橋)로 부산의 명물, 랜드 마크다. 그래서 영도다리는 아이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어른들은 판단했다. 이산가..
자율규제라는 말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선진국은 다 자율규제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조류가 되고, 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한국 사회가 세계 시장에 급속도로 편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말을 신봉하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정부 규제나 강제력을 동원한 규제는 악한 것이라는 신념이 자리 잡고 있는 모양이다. 규제가 무엇인지, 강제력을 수반하지 않는 규제가 과연 쓸모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고 학문적으로도 오랜 논쟁거리라서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쟁에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뭔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는 최적의 수단으로, 경직된 정부 규제 일변도의 틀보다 더 좋은 규제를..
주한미군 우주군사령부 창설식이 지난 14일 경기 오산공군기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주한미군 우주군 사령부가 지난 14일 경기도 오산기지에서 출범했다. 미 우주군 사령부는 2019년 12월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공군기지에 본부가 만들어졌고, 야전군으로는 지난 11월 하와이의 인도·태평양사령부, 12월 플로리다의 중부사령부에 설치됐다. 오산 우주군 사령부는 미국 영토 밖에 설치된 첫 사례이다. 우주군은 외계 생명체나 물체로부터 지구를 방어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다. 적국이 높은 고도로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위성 시스템을 파괴하려 시도하는 경우 등에 대비하는 부대이다. 원래는 공군 산하에 두려 했으나 2018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러시아를 의식해 별도의 군사령부로 두도록 했다. 미군은 ..
‘나도 정치병 환자인가?’ 가까운 지인들이 가끔 정치 과몰입을 지적할 때면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SNS나 칼럼 등의 글에서 감정이 들끓는 정치적 발언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경우가 많아서일 텐데, 그럴 때마다 나는 살아가는 일이 다 정치인데 어찌 정치에 무관심할 수 있겠느냐며 대충 화살을 피하곤 한다. 속으로는 ‘이 신나고 흥분되는 일을 어찌 멈추라는 거냐’고 중얼거리지만. 그렇다. 비록 말이 전부이긴 하지만 정치에 관여하는 데서 희열과 보람(?)을 느끼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치를 피곤하다고 말하고 짜증스러운 정치놀음으로부터 일상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두 부류에는 공통점도 있는데, 양쪽 다 정치를 눈앞에서 벌어지는 시끄럽고 뜨끈뜨끈한 현실 정치의..
재난 보도를 비롯한 재난 수습 지침서는 재난으로 해체된 공동체 회복과정에서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을 잘 구별해서 다루어야 하고, 책임 추궁이 원인 규명에 앞서지 말아야 한다고 깨우친다. 책임 추궁이 선행할 경우, ‘회피 전략’이 횡행하여 원인 규명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 두 가지를 분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고, 책임 있는 자들의 ‘의도적 회피’가 원인 규명을 어렵게 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책임 추궁을 단호하게 앞세워야 할 때도 있다. 이상민 장관의 경우가 그렇다. 그가 이태원 참사에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으로서 이런 충격적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아무 일 없다는 것처럼 버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