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 철학자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1970년 11월 전태일은 자신을 횃불 삼아 박정희의 경제개발이 감추고 있던 치부를 백일하에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1972년 10월 박정희는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전태일의 외침에 유신헌법으로 응답한다. 40년이 흐른 지금, 이번 겨울은 유독 춥게만 느껴진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독재자의 딸이 보내는 득의만면의 미소가 매서운 겨울바람과 함께 더욱 우리의 옷깃을 세우게 만든다. 이제 박정희의 묘지에 누가 당당하게 침을 뱉을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누가 얼굴을 들고 전태일의 묘소에 참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유권자의 과반수가 전태일이 아니라 박정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가 아니라 2012년 올해 벌어진 사건이자 남기고 뺄..
강신주 | 철학자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김수영의 ‘풀’이란 시에서 ‘풀’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문제다. 그렇지만 선택지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김수영’이 없었다. 평소에 풀은 김수영 본인의 삶을 상징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 선생님들이나 참고서에서는 ‘풀’은 민중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름 설득력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풀이 김수영 본인을 상징한다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수업시간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을 때, 국어 선생님도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라고 나름 인정하시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 시험 문제 선택지에는 ‘김수영’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당혹감을 느끼고 있을 때, 또 다른 선택지로 ‘민중’이 보인다. 어떻게 할 ..
강신주 | 철학자 1894년 11월8일 우금치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싸늘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날 우금치는 이전만큼 춥지 않았다. 농민들의 거친 호흡과 피범벅이 되는 뜨거운 땀방울을 예견하고 있었으니까. 우금치 전투! 어쩌면 그것은 전투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독일에서 현대전을 배운 일본군, 그리고 그들과 함께했던 조선 관군 앞에서 동학군은 솔개 앞의 병아리떼와 같았을지도 모른다. 신식 서양 무기와 전술로 무장한 일본 주력군 앞에서 죽창이나 농기구가 무기의 전부였던 농민들은 사격장의 표적지와 같은 신세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지만 조선 관군의 어느 지휘자의 보고에 따르면 시체가 산을 이루고 그 피가 강을 이루었어도 농민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전진했다고 한다. 얼마나 그..
강신주 | 철학자 아침, 아니 정확히 말해 아직 이른 새벽, 고요한 산사에는 목어와 범종 소리가 어김없이 울려 퍼진다. 가슴 깊은 곳에 파고드는 범종 소리는 우리 마음을 아리게 한다. 누구를 깨우는 것일까?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오늘도 생명을 지키기를 바라는 마음 아닐까? 토끼를 먼저 깨워야 한다. 늑대가 먼저 깨어나면 토끼가 먹잇감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늑대를 죽여서 토끼가 편하게 살도록 할 수도 없다. 늑대는 또 무슨 죄인가? 무엇 때문에 다른 짐승의 살을 뜯어먹고 살도록 태어난 것일까? 하지만 육식 동물들이 항상 사냥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늑대는 항상 말라 있다. 일주일에 하루 사냥에 성공하면 기적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마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토끼를 잡아..
강신주 | 철학자 이란 책이 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마이클 샌델의 신간 서적이다. 이 책을 통해 그는 과거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돈으로 사게 된 현실, 그러니까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자본주의의 비도덕성을 개탄만하고 있을 뿐, 샌델은 그 이상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고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현실을 냉정히 진단했던 그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사태를 관조하게 된 것일까. 어쩌면 샌델은 질문을 잘못 던졌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물었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돈으로 팔 수 없는 것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남아 있는가? 억만금을 주어도 팔 수 없는 것들이 우리에게는 남아있기라도 한 것일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과 돈으로 팔 수 없는 것들..
강신주 | 철학자 모순도 오래되면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자본주의 체제에서 산다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 체제에서 산다는 것.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둘 사이의 간극에 너무나 무감각해진 것 같다. 그렇지만 무감각해졌다고 해도 모순은 모순일 뿐이다. 세입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용산참사나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쌍용자동차 사태, 어느 여성을 크레인 꼭대기까지 내몰았던 한진 사태, 그리고 서울역 후미진 곳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인의 풍경 등등. 우리 삶을 지배하는 모순은 언제든지 핏빛 얼굴로 나타나 우리의 삶을 동요시키며 결단을 요구할 수 있다. “당신은 자본주의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에서 살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양자택일이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다른 방식으로 물을 수도 있다. “당신은 자본주의와..
낭패다. 급하게 단추를 채우다 보니, 단추를 잘못 채운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든다. 누구나 단추를 잘 채운 옷을 입고 싶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순간 내게는 단지 두 가지 선택지만이 남겨진다. 첫 번째 선택지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단추를 차근차근 풀어가는 방법이다. 이렇게 인내를 가지고 단추를 풀어가다 보면 언젠가 단추를 잘못 채운 결정적인 부분에 이르게 될 것이다. 바로 이 부분, 잘못 채워진 부분을 제대로 채워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너무나 성가신 일 아닌가. 혹시 단추를 잘못 채웠다는 나의 느낌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두 번째 선택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단추를 잘못 채운 것 같다는 느낌을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며 부정하고 계속 단추를 채워가는 것이다. 언젠가 단..
강신주 | 철학자 자본주의는 상품을 가진 사람보다 돈을 가진 사람에게 우월성을 보장하는 체제다. 돈이 상품과는 달리 무한한 교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까 10만원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10만원에 상당하는 상품 중 어떤 것이든지 구매할 수 있다. 자장면이 먹고 싶다면 자장면을, 아름다운 장미를 애인에게 주고 싶다면 장미를 살 수 있다. 그렇지만 상품을 가진 사람은 이런 무한한 교환 가능성을 가질 수가 없다. 자장면을 만든 사람이 아무리 애인에게 장미를 선물하려고 해도 돈이 없다면 불가능한 법이다. 반드시 자장면을 팔아 장미를 살 수 있는 돈을 벌어야만 한다. 급하다고 해서 자장면을 들고 꽃가게에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여기 자장면이 있으니, 장미 한 송이만 주세요.” 아마도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