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 철학자 마치 콩가루처럼 서로 반목하는 가족이 있었다. 어느 새 성장한 자식들과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권위적인 부모 사이에 있을 법한 갈등이다. 성장한 자식들은 어머니가 가진 억척스러운 이기주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얼마 전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자식들의 불만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고조시켰다. 어머니가 쓰레기를 이웃집 근처에 투기하다가 이웃에게 발각된 것이다. 이웃집의 정당한 문책에 어머니는 증거가 있느냐며 뻔뻔스럽게 맞서기까지 했다. 이 일이 있은 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식들은 어머니에게 해묵은 이기주의를 버리라고 질책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이기주의가 아니었으면 이만큼 살 수도 없었다고 항변한다. 자신의 억척스러움으로 자식들이 이만큼이나 성장한 것이라고 ..
강신주 | 철학자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라는 소설을 아는가?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Michael Ende)가 1973년 집필한 흥미진진한 동화로 우리에게도 이미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소설이다. 독일 어느 마을 원형극장 유적지에 말라깽이 소녀 모모가 살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에게는 타인의 말을 경청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외롭거나 우울할 때, 혹은 삶에 지쳐 피곤할 때, 그녀에게 달려와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는다. 모모에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그들은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앞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얻곤 했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과 모모 앞에 아주 강력한 적..
강신주 | 철학자 정신분석학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억압된 것의 회귀!” 자세히 풀어보자. 억압된 감정은 언젠가 반드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용수철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용수철을 누르면 그것은 반드시 다시 튕겨 나오기 마련이다. 어느 때 튕겨 나오는지가 관건이 된다. 바로 튕겨 나오면 상관이 없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안정을 취할 테니까. 문제는 눌러졌을 때 바로 튕겨 나오지 않는 경우다. 그것은 무엇인가가 튕겨 나오는 힘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생존의 이익과 불이익을 계산하는 알량한 자아가 그 역할을 한다. 엄청난 압력을 가진 채 일촉즉발의 상태에 있다는 것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권력자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무모한 일일..
강신주 | 철학자 TV를 틀면 유명 원로 연예인의 익숙한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여러 가지 조건에서 보험을 들기가 만만치 않은 노년층을 상대로 보험에 가입하도록 유혹하는 광고의 한 대목이다. 장례비 등 자신이 갑자기 떠날 때 자식들이 떠안아야 할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자식에 대한 마지막 사랑이 아니냐는 은근한 훈계도 뒤따른다. 미래에 대한 염려를 조장하고 그 염려를 보험으로 완화시키라는 자본의 유혹이 무섭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돌아보자. 과연 노인들만 미래를 염려하고 있는가? 초등학생에서부터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특목고나 자사고에 갈 수 있을지를 염려하고, 고등학생들은 명문대에 갈 수 있을지 염려하고 있으며, 대학생들은 취업을 할 수 있을지를 염려하고 있다. ..
강신주 | 철학자 신자유주의로 표방되는 현대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너무나 깊고 광범위하다. 신자유주의란 자본가의 자유, 그러니까 결국은 자본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이념이다. 당연히 신자유주의가 발호하면 할수록 인간의 삶은 더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본 성장의 제단에 바쳐진 제물, 혹은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렇다. 신자유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의 성장이지 결코 인간의 행복은 아니다. 정확히 말해 인간의 행복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은 자본의 성장이 우리 인간의 행복을 약속한다고, 구체적으로 말해 “빵이 커지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줄 수 있다”는 감언이설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진지한 얼굴..
강신주 철학자 생계가 심각한 위협에 빠졌을 때, 우리는 이기적으로 변한다. 아니 변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반드시 살아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니까. 이럴 때 우리는 생존 경쟁에 뛰어든 짐승으로 변하고 만다. 이렇게 자신이 가진 것과 가져야 할 것에 연연하는 순간, 우리는 보수적으로 변하고 만다. 왜냐고. 보수주의란 기본적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강력한 소유의 의지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가 기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치 연기처럼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불행히도 사랑이 사라질 때, 우리는 인간에서 짐승으로 변신한다. 모든 것을 절망적으로 소유하려고 할 때, 어떻게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건네주는 일이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신이 소유..
강신주|철학자 얼마 전 김수영에 대한 10주 강의가 끝났다. 모든 강의가 그렇듯 어쩔 수 없이 내 강의도 일방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말하고 제자는 듣는 식으로 강의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의 도중 나는 종종 티타임을 제자들과 갖는다. 이런 때 나는 스님들의 묵언수행의 교훈을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중생에 대한 사랑을 서약한 스님은 중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 듣기 위해 우리는 침묵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내 쪽에서 소음을 내지 않아야 상대방의 소리가 들릴 수 있는 법이니까. 소통은 바로 침묵에의 의지 속에서만 시작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선생은 제자에 대해, 부모는 자식에 대해, 정치가는 국민에 대해, 선배는 후배에 대해, 먼저 묵언수행의 교훈, ..
강신주 | 철학자 장례식장에서 가장 슬픈 표정을 짓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상조회사 직원이나 아니면 부의금을 대신 전달하려고 온 사람일 것이다. 왜냐고? 고인과 일면식도 없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다. 돌아보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고인이나 유족과 그저 아는 정도의 관계라면, 우리는 그 사실을 애써 숨기기 위해 더 공손하게 향을 지피고 더 애절하게 국화를 고르곤 한다. 이래서 예절이나 법도가 요긴한 법이다. 자신의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도 상황에 맞는 연기를 가능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대해 형식이나 방법에 얽매일수록, 우리는 스스로 그를 사랑할 수 없음을 토로하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이 자장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제사상에 어떤 음식을 올려놓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