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과학, 국어 시험 점수 잘 나오게 해주세요” “여자친구 생기게 해주세요” “그녀가 다시 내게 돌아오게 해주세요. 제발” “수시 추가 합격되게 해주세요” “로또 1등 되고 회사 진급시험 붙게 해주세요” “그녀하고 결혼하게 해주세요” 등등. 대충 보아도 10대나 20대, 잘해야 30대 초반 젊은이들의 소원은 이렇게 절절하기만 하다. 사찰 대웅전에 올릴 기와에 흰색으로 적은 글자일까, 아니면 어느 단체에서 마련한 소원 게시판에 붙인 포스트잇 내용일까.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쓰고 또 읽을 수 있는 댓글의 내용이다. 우리 시간으로 12월8일 새벽 2시30분에 독일에서는 분데스리가 프로축구 경기가 하나 열렸다. 레버쿠젠과 도르트문트의 경기였다. 국가대표이기도 한 손흥민 선수가 골키퍼를 제치고 넣은 선제골인..
현대 일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통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국가를 실체가 아니라 일종의 교환 시스템으로 사유하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입장에 따르면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 기구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조금 길지만 가라타니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지속적으로 강탈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다른 적으로부터 보호한다거나 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국가의 원형이다. 국가는 더 많이 그리고 계속해서 수탈하기 위해 재분배함으로써 토지나 노동력의 재생산을 보장하고 관개 등 공공사업을 통해 농업 생산력을 높이려고 한다. 그 결과 국가는 수탈의 기관으로서 보이지 않고, 오히려 농민이 영주의 보호에 대한 답례로 연공(年貢)을 지불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의 책 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초대 감사원장부터 22대 양건 감사원장까지 헌법이 정한 4년 임기를 채운 감사원장은 7명뿐이다. 얼마나 감사원장이 정치바람에 휘둘렸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현 정부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보장”을 약속했던 양건 감사원장이 1년7개월의 임기를 남겨두고 사퇴했다. 청와대의 감사위원 인사개입, 4대강 사업 감사 결과를 둘러싼 정치적 외압 등이 배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기된 감사원의 독립성 문제가 진행형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감사원은 정부의 예산 집행 적정성을 검증하는 회계검사,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위법·비위를 따지는 직무감찰의 권한을 가진 최고 사정기관이다. 감사원의 생명은 권력으로부터 독립이다. 감사원을 헌법기관으로 두고, 헌법이 감사원장 임기를 4년으로 명시한 것도 그 독립..
어린 학창시절, 계란말이는 가장 부유한 아이들이나 도시락 반찬으로 먹던 귀한 음식이었다. 그걸 얻어먹고 싶던 우리는 계란말이를 싸온 친구에게 도시락을 내밀곤 했다. 그때 그 친구는 무슨 유세라도 부리듯 계란말이를 줄듯 말듯 우리를 놀리곤 했다. 그럴 때 우리는 말하곤 했다. “치사빤쓰다.” ‘빤쓰’는 속옷을 가리키니 중요하지 않고, 문제는 치사의 뜻이다. 이 뜻을 정확히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뒤였다. 이 말을 다시 들은 것은 6·25전쟁으로 자식들을 많이도 잃은 불행한 어느 할머니를 만났을 때였다. 인터뷰 말미에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할머니, 할머니에게 전쟁은 어떤 것이었나요?” 그러자 할머니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내게 전쟁은 참 치사한 거였소.” 조선시대 신문고라는 북이 있었다..
철학자는 선생이기도 하다. 말과 행동이 아니라 글을 통해서지만 동시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사람에게도 후회없는 삶을 살아내도록 도움을 주려 노력하니까 말이다. 기만과 허위에 가득 차 있는 생각을 비판하고 소망스러운 삶을 살아가도록 돕고 있으니, 분명 나는 선생이기도 하다. 가급적 학교에서 제안하는 강연은 빼놓지 않으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만사를 제쳐두고 가는 것은 선생님들이 요청한 강연이다. 선생이라는 자의식을 가진 내게는 동료들이 부르는 것 같으니, 어떻게 그들의 강연을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또한 그 선생님들이 가르칠 학생들의 수를 생각해보면, 효율도 만점이다. 한 사람의 선생님이 변하면 수십 수백의 학생들도 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철학자는 항상 사람들을 곤란에 빠뜨려..
“아는 것이 힘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힘을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자. 힘은 권력이기도 하니까. 그래서일까, 모든 부모는 자식이 명문대에 가서 많은 것을 배우기를 원한다. 그들이 아는 것만큼 권력을 가질 테니까 말이다. 이것이 바로 정신노동이 육체노동보다 더 강한 권력을 지니게 되는 이유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안다는 것은 권력을 지닌다는 것이다. 동시에 권력을 지닌다는 것은 알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생각지도 못했을 온갖 비밀들을 대통령은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만 알고 있어야 한다. 그 비밀들이 새나갈 때, 그만큼 권력도 새나가는 것일 테니까. 그러니 권력을 둘러싼 투쟁의 백미는 아무래도 ‘아는 것’과 관련된다고 하겠다. 에서도 쓰여 있지 않은가. ‘지피지..
어느새 후반부로 치닫고 있는 2013년이다. 그렇지만 아는가. 모든 사람들이 2013년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개를 갸우뚱거릴 필요는 없다. 주변을 살펴보라. 아직도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지 않은가.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일제강점기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유신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 2013년을 조선시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남존여비와 경로사상으로 무장하고 있을 것이다. 또 2013년을 일제강점기로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혼마치(本町)의 퇴폐적이고 냉소적인 소비문화를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혹은 2013년을 유신시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권력자의 눈치만 보면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려 하고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도, 일제강점기도,..
이집트에 가본 적이 있는가. 이곳을 방문한 누구라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유혹에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조선시대 왕릉을 압도하는 규모에 놀라 부러움도 피력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집트가 너무 멀다면, 가까운 중국에라도 가본 적은 있는가. 중국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만리장성에 발을 디디게 될 것이다. 끝도 없이 산을 따라 펼쳐진 만리장성을 보면서 중국 문명의 거대한 스케일에 압도되어 북한산에 남아 있는 산성이 초라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해외에 나갈 여유가 없다면, 서울 경복궁에라도 들러 보라. 엄청난 규모의 궁궐이 위엄을 뽐내고 서 있을 것이다. 피라미드도 만리장성도 그리고 경복궁의 웅장함에 매료되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그렇다. 우리는 지배자의 시선으로 피라미드나 만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