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보수정당의 흐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정당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정치권력의 장식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정당이 만들어져서 권력을 취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당이 조직됐다.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을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정당이란 무릇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권력을 쟁취하는 조직이라고 정치학 교과서는 말하고 있으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자유당은 이미 만들어진 정치권력을 유지, 정당화하기 위해 급조한 정당이었다. 이승만은 자신의 재선에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기제로 자유당을 설립했다. 공화당은 5·16쿠데타 세력이 폭력으로 권력을 잡은 후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선거기관으로 만들어졌다. 군부는 먼저 중앙정보부를 만들었고..
최루탄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길거리에 한 청년이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고 서 있다. 가슴을 누르는 역사의 무게 때문인지 몸을 가누기조차 힘겨워 보인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우상호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 그 청년은 바리케이드를 넘어 국회의사당 발코니로 자리를 옮겨 우뚝 서 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가 되었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를 필두로 ‘86그룹’의 부상이 드디어 주목을 받고 있다. ‘드디어’라고 말하는 것은, 이 그룹의 동향은 오래전부터 정치사회에서 관심거리였기 때문이다. 학생운동, 민주화운동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정치사회에 진입한 이들은 다른 어떤 그룹보다 강한 단결력을 보였고, 진보적 비전의 담지자를 자임하면서 대오를 형성해왔다. 따라서 이 그룹이 어떤 역할을 할지는 한국 정치의 미..
독재보다 더 나쁜 것은 독선이다. 정치에서는 그렇다. 독재는 정치의 한 유형이지만 독선은 정치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의견은 옳고 자기와 다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순간 정치는 존재할 수 없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독재보다 더 나쁜’ 그 무엇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이번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나의 길을 가겠다는 듯하다.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는 그저 참조사항일 뿐, 국정운영 기조나 리더십 스타일을 바꿀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어떤 대통령이 국민과 대화는 하지 않으면서 역사와 대화하겠다 하고, 선거의 평가는 외면하면서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고 한다면 그는 독선의 지경에 이른 것으로 봐도 좋다. 이런 상태의 대통령은 대개 자신이 ‘외롭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한 심리학자는 이와 ..
문재인 전 대표와 호남의 불화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마지막 쟁점으로 이번 선거운동은 막을 내리는 모양이다. 새누리당의 친박 공천 소동으로 요란하게 시작하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의 야권연대 얘기로 실속 없이 시끄럽다가, ‘호남의 향방’에 대한 관심을 끝으로 선거운동은 종을 치고 있다. 이런 재미없고 의미 없는 선거가 어디 있나 싶다. 문 전 대표는 호남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든 정치적 기회를 포기하겠다고 배수진을 치며 호남을 두 차례나 방문하였다. 방문의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선거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만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반발을 불러일으켜 부작용을 낳을 거라는 걱정은 일단 덜었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문 전 대표와 호남의 불화가 해결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들 사이..
공직후보자 추천이 끝났다. 복기해 보자. 각 당의 공천전략 목표는 무엇이었고 그것을 얼마나 달성했는가? 새누리당의 목표는 ‘안정’이었다. 야당이 분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여당은 절차 관리를 안정적으로 잘하면 승리는 따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향식 국민경선은 그러한 목표를 실현해 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더민주의 목표는 과감한 ‘교체’였다. 선거마다 패배를 거듭한 정당으로서 뭔가 변화를 보여주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갈이를 할 수 있는 컷오프 시스템을 제도화했다. 국민의당의 목표는 무엇보다 ‘혁신’이었다. 양대 정당의 기득권과 싸우겠다는 세력으로서 기존 정치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인물들을 내세워야 했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추진되었던 세 당의 공천과정은 어떻게 되었나? 모..
대구·경북지역에서 교수 노릇을 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동진’정책과 노무현 대통령의 ‘전국정당화’ 정책을 지켜보았다. 동진정책은 밀라노프로젝트에서 보았듯이, 예산을 내세우면서 이 지역의 상층 토호들을 공략하였다. 그래서 이 지역 민주개혁 세력들이 적잖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전국정당화 정책은 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이 지역 출신 인사들을 국정운영에 적극 등용하였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끝난 후에도 이 지역 정치에 계속 남아 활동하고 있는 지도자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역주의 극복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두 대통령의 정책은 일정한 성과가 있었으나 이런 한계도 있었다. 두 정책 모두 이 지역에서 ‘정당’ 조직과 인재를 육성하지 않고 청와대의 힘으로 밀어붙이기만 한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완장을 찬 사..
“문재인은 무능하고, 안철수는 이기적이어서 헤어졌다. 두 사람의 지도력이 신통치 않아서 야권이 분열됐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론적 설명보다는 “지지자 지형의 구조적 특성이 변화해 그들을 하나의 그릇에 담기 힘들어서 나누어진 것이다”라는 구조론적 설명이 더 그럴듯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야당은 자신이 대표하고자 하는 가치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오른쪽으로 보수여당이 대표하는 가치를 제외하고, 왼쪽으로 진보정당이 대표하는 가치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대표하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나머지 정당’이라는 별명도 얻고 있었다. 이렇게 넓은 범위의 가치를 하나의 그릇에 담으려고 하다 보니 내부는 항상 시끄러웠다.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를 두고 잡..
최경환 의원이 대구의 한 출마자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유승민 의원을 격하게 비판했다. ‘대통령의 뒷다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는 종주먹을 들이대며 이 지역 국회의원들을 싸잡아 야단쳤다. ‘대통령이 어려울 때 뭘 하고 있었느냐?’ 유승민 의원이 한 일이 대통령의 뒷다리를 잡은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이 잘되라고 한 것인지는 따져볼 일이지만, 최경환 의원 자신은 이 지역의 민심을 파악하는데 헛다리를 짚은 것 같다. 최 의원은 이 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을 부추기려 했던 모양인데, 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대통령을 왜 잘 모시지 못했느냐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살림살이를 왜 이 꼴로 만들어놓았느냐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배출한 이 도시의 지역총생산은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