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가 경기 시흥시와 협력해 ‘배곧신도시’에 새 캠퍼스를 건설할 예정이다. 지난해 대규모 아파트 분양 과정에서 이 계획이 신도시의 큰 매력으로 선전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서울대 구성원들은 이 사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대학 운영의 최고 권한을 지닌 이사회도 마찬가지다. 공개된 이사회 의사록에 따르면 논의다운 논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부실한 사업에 대해 서울대 쪽의 책임 소재를 가려야 마땅하다. 서울대는 정부의 종합화 계획에 따라 1975년 현재의 관악캠퍼스를 연 이후 꾸준히 캠퍼스를 통합해왔다. 옛 수원캠퍼스의 농생대와 수의대, 연건캠퍼스의 보건대학원 등이 옮겨왔고, 서울대병원과 함께 있어야 할 특수성을 지닌 의대 등을 뺀 조직이 관악으로 모였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사이에 이 흐..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 나는 왜 어이 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 가서 한데 어울려 옛날같이 살고 지고’(‘가고파’ 중에서)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 (…) /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 향수를 달래려고 술에 취해 하는 말이야 / 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더 좋아’(김상진 ‘고향이 좋아’ 중에서) 20세기 유행가 중 고향을 노래한 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타향살이의 설움과 고달픔을 향수로 달래는 내용이라서 선율이 애틋하거나 목가적이다. 가난하지만 정이 흐르는 가족과 마을, 계절을 따라 다채롭게 변모하는 풍경이 가사에 담겨 있다. 한국인에게 고향은 공동체의 원형, 돌아가고 싶은 삶터로 여겨져 왔다. 김우창 교수는..
어느 날 아침,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던 아이가 문 밖에서 주저앉았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던 아이가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학업을 포기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사이가 틀어진 것이 원인이었다. 3년간 아이와 사회를 연결하는 끈은 갈수록 가늘어졌다. 1년 동안은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상담을 받기도 하고 우울증 약도 먹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발간된 (이충한 지음, 소요프로젝트 펴냄)에 소개된 장면이다.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낯설기는커녕 대중 매체를 통해, 친지나 이웃과의 대화를 통해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는 ‘한국병’ 중 하나다. 일본발 뉴스를 통해 예방주사를 맞은 탓도 있을 것이다. 20여년 전부터 교실 붕괴, 집단따돌림, 은둔형 외톨이를 소개하는 신문 기사와 ..
축구 대표팀이 2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에 진출했다. 축구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도 오늘 저녁 한국팀이 우승컵을 들어 올려 국민들의 시름을 위로해주길 바라는 심정은 똑같을 것이다. 최고령 국가대표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차두리의 시원한 돌파와 끈질긴 수비가 팬들의 화제이고, 연속 무실점 경기의 선봉에 선 수문장 김진현의 선방 장면은 놀라울 뿐이다. 하지만 대표팀을 향한 환호도 우리의 정규 교육과정에서 체육이 차지하는 초라한 모습 앞에서는 무색해진다. 큰애가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시무룩한 표정의 하굣길 아이에게 이유를 물었다. 담임 선생님이 체육시간에 교실에서 자습을 시키면서 너희들이 떠들었기 때문에 벌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전담 체육교사가 없는 현실에서 행정 잡무도 많은 선생님이 아이들과 햇볕 아래 나..
“일시에 거지떼들을 맞이한 각 지방에서는 상하가 모두 당황했다. 이제 부산지구를 중심한 그날 이후의 피난민의 움직임을 보면, 부산 하면 그래도 우리 정부가 엄연히 자리를 잡고 있으니 가기만 하면 어찌어찌 되겠지, 원주민들도 피난민이라고 하면 많은 동정을 하겠지 하였으나, 원체로 많은 피난민(부산지구만 30만명이었다)이 오고 보니 당국의 손도 못 미치려니와 수용할 집이 없어 야단이 났다. … 이래서 몇 달 지나지 않았건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소중히 가지고 내려왔던 옷가지며 패물, 집기 등을 방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있을 수 없다는 옛 성현의 말씀 그대로 경제적으로 비참한 구렁에 빠지게 된 각 계층은 이렇게 완전히 도덕적으로 타락의 구렁으로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
어느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아주 나빴는데, 본인과 가족들은 모르고 있었다. 일곱 살이 되어서 부모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안경을 맞추어 주었다. 아이가 난생처음으로 안경을 끼었을 때 이렇게 말하더란다. “엄마는 지금까지 세상을 이렇게 보고 있었던 거야?” 선명하게 다가오는 사물들에 충격과 경이로움을 느낀 것이다. 우리는 똑같은 대상을 놓고서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똑같이 인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라고 이야기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타인의 몸이 되어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처럼 경험하리라고 여기기 쉽다. 그 당연한 전제가 깨지는 것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각(知覺)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다. 낯..
어떤 경우에는 구체적인 에피소드보다 통계 숫자가 더 충격적일 때가 있다. 설렁탕 값과 장례비를 봉투에 넣어놓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독거노인에 관한 뉴스도 안타깝지만, 지난해 남성 노인 자살률이 전체 자살률(인구 10만명당 28.9명)의 6배에 달한다는 통계 수치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20여년 전만 해도 먼 나라 얘기였던 자살률이 이혼율, 저출산율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 자랑스럽지 못한 세계 최고는 또 있다. 인류 탄생 이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속도로 다가오는 초고령화 사회다. 그렇잖아도 늙음이나 죽음을 무슨 질병처럼 백안시하는 사회인데,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사회 전체가 노인을 외면하거나 무시, 방치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한민국의 노인은 삼중고에 시달린다. 외롭고 아프고 가난하..
지난해가 아무리 힘겨웠어도 새해 첫날에 잠시라도 시름을 접고 희망에 들뜨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올해는 신년 분위기를 누릴 마음의 여유마저 빼앗긴 국민들이 많다. 그만큼 지난 2014년은 큰 사건과 사고가 이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는 새해맞이가 우울한 젊은이들이 유난히 많다. 취업난에 고통받는 20대 외에도, 지난달의 수시 결과가 나빠서 정시에 기대를 걸고 기다리는 수험생들도 그러하다. 수시에 합격한 학생은 입시 굴레를 홀가분하게 벗어났지만, 정시 발표를 기다리는 학생과 학부모는 불안에 휩싸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적지 않은 이들이 벌써 재수를 결심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새해를 전망하며 많은 분들이 한목소리로 말한다. 정치개혁이나 제도개선도 중요하지만, 우리부터 한 사람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