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나라는 고대 중국 남방에 있던 나라다. 그래서 적월북원(適越北轅), 즉 월나라로 가면서 수레 방향을 북쪽으로 돌린다는 말은, 목적과 전혀 상반되는 행위를 비유한다. 허균은 잘 알려진 에서, 온갖 이유로 길을 막아놓고서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는 상황을 통렬히 지적하는 말로 이를 사용하였다. 오늘날 사람을 선발할 때 어머니가 천첩이거나 개가한 과부가 아닌지를 따지지는 않으니 허균의 시대보다 더 나아졌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다시 살펴보면 그보다 훨씬 많은 조건들이 인재 선발의 기준으로 더해졌음을 알 수 있다. 출신 지역과 학벌, 정치 성향과 과거 전력 등으로 장벽을 쌓아두고, 이런저런 은원(恩怨) 관계로 얽힌 제한된 인맥 안에서 선발하려다 보면 인재가 없다는 한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새 정부..
에 실려 전하는 ‘황황자화(皇皇者華)’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환하게 빛나는 저 꽃, 언덕과 습지에 피어 있네. 급히 가는 많은 일행, 이르지 못할까 늘 걱정이라네.” 임금의 명을 받들고 나라를 대신하여 사행을 가면서 혹여나 임무를 다하지 못하는 일은 없을지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담은 시로 해석되어 왔다. 다음 구절에는 이국땅을 달리고 달려서 두루 묻고 알아보리라는 다짐이 이어진다. 19세기 말의 문장가 이건창은 23세 젊은 나이에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그 이듬해에 사행을 가게 된 이가 전송의 글을 부탁하자 그는 대뜸 부끄러움을 떠올린다. 나름대로 외교 응대에 필요한 학식과 문장력이 남다르다는 자부심과 포부를 가지고 자청하여 갔던 사행이었지만, 정작 사행 길에 겪고 행한 일들은 부끄러운 탄식의..
‘약상(弱喪)’이라는 말이 있다. 젊은 나이에 타지에 나와 살다 보니 고향을 잃어버려서 돌아갈 길도 모르게 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디 장자(莊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려고 이 말을 했지만, 자신의 참모습을 잊고 헤매듯이 살아가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길 잃은 아이’의 막막함이 ‘귀향’의 아늑함과 대비되면서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표현이다. 조선 문인 이식(李植)은 억지로 굽혀서 신기한 모양으로 만들어놓은 소나무를 보며 약상을 떠올린다. 외모를 번지르르하게 꾸미고 처신을 약삭빠르게 하면서 남의 시선을 끌고 인기를 누리는 데에만 급급한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며 아등바등하는 일들 가운데 정작 ‘자신’은 없다는 사실이다. 위로 자라는 본성을..
벌써 20년 전 일이다. 장교 교육을 받는 중에 부사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막 부임한 소위가 터줏대감 중사에게 휘둘려서 부대원 통솔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들을 듣던 터라, 부사관과는 거리를 두고 계급 서열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부사관의 경험을 인정해 주고 호감과 신뢰를 쌓으면 잘 협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은, 물정 모르는 이상론으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 조선시대 지방 수령으로 부임하는 이들에게 주는 조언에도 아전을 엄하게 단속하고 향반에게 정사를 맡기지 말라는 내용이 많았다. 지역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들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향반을 도적처럼, 아전을 원수처럼 여겨서 경계를 늦추지 말고 사소한 허물도 가차 없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전과 ..
- 7월 1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근심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남들의 평판 때문인 경우가 많다. 특히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서 개인의 사적 영역까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기 쉽게 된 오늘날, 평판은 사람을 쉽게 띄우기도 하고 급전직하로 내몰기도 한다. 평판을 관리하는 전략이 아무리 발전된다 해도 남들의 마음을 나의 기대에 맞게 끌어오기는 어렵다. 오죽하면 공자가 의 첫머리에서 군자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 않음’이겠는가. 고려시대 문인 이달충은 평판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잠언인 을 썼다. 그 서문에 등장하는 무시옹(無是翁)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나를 사람이라 해도 나는 기쁘지 않고 사람들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해도 나는 근..
알 낳는 말, 꼬리 달린 개구리, 등에 삼 척 길이의 털이 난 거북이가 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 예는 아무리 무수히 들어도 부족한 반면, 그런 예는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런데 그런 예가 있다. 이 있을 수 없는 것들이 버젓이 논의되고 있는 곳이 조선의 조정이고, 그곳을 한 발짝도 나서지 않으면서 이만하면 되었다고 여기는 이가 바로 조선의 왕이다. 의 저자로 알려진 유몽인이 중국으로 사신 가는 이에게 써준 글에 나오는 말이다. 유몽인이 보기에 조선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였다. 국론이 사흘도 못 가는데 왕통이 200년 동안 존속되고 있으며, 작은 법마저 무시하고 지키는 이 없는데 어딜 가나 삼강오륜의 교화로 가득하다. 기본적인 경제정책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데 어떻게든 먹고는 살며,..
“군자가 야(野)에 있고 소인이 위(位)에 있으니 백성들이 군주를 버리고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 에 나오는 말이다. 재야(在野)라는 말이 일찍부터 ‘조정이 아닌 민간에 있음’이라는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정치뿐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재야’의 존재는 소중하다. 현실 권력을 쥐고 있지 않으므로 이해관계를 벗어나 옳은 말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재야사학자’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나서면 정치가요, 물러나면 학자였던 조선시대 사대부와는 달리 정치와 학문이 각기 전문 영역으로 분화된 오늘날, 학문 분야에서 ‘재야’와 ‘재위’의 구분 기준은 무엇일까.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의 ‘자리’에 오르지 않은 이들을 ‘재야’라고 불러야 할까? 그러나 그런 연구자들도 정작 ‘재야사학자’라고 불리는 어..
이상한 일이다. 멀리서 찾는 이들이 몰릴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는데, 정작 그 근방에 사는 이들은 그런 풍경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왜 그럴까? 늘 권력과 이익을 다투는 자리에 갇혀 살다 보니 아름다움이 눈앞에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슴을 쫓아가다 보면 주변의 산은 보이지 않고 황금을 움켜쥐려다 보면 옆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마음이 온통 어딘가에 쏠리면 다른 데에는 눈이 갈 겨를이 없는 법이다. 고려시대 문인 이제현의 설명이다. 아름다움이 지금 여기와는 아주 다르고 먼 어떤 곳에 있다는 생각은, 각박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때로 위안을 주기도 한다. 그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품고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라고 가르치려 들면서 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