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서류에 남겨진 김윤덕이라는 사람이 있다. 경상북도 경산군 하양읍 남하리에서 1926년 7월에 태어난 이 사람은 태어나고 무려 10년이 지난 후인 1936년 4월에 출생신고가 되었다. 6남매 가운데 장남이었는데, 첫째부터 셋째까지 위로 3명은 넷째가 태어난 해인 1936년에 함께 출생신고가 되었다. 이후 계속 같은 주소지에서 살다가 1956년 10월17일 태어난 장소와 같은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 사실은 30년이 지난 1990년 9월경 신고됐다. 출생신고도 사망신고도 매번 늦었던 이 사람은 최소한 기록상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사망한 사람이다. 사할린에도 김윤덕이 있다. 홋카이도보다 조금 더 북쪽에서 일본과 머리를 맞대고 있는 러시아 섬이 바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사할린이다. 사..
옆집 컴퓨터 안되는 것을 조금 손봤다가, 꿀을 한 병 받은 적이 있다. 컴퓨터나 TV 봐달라고 하는 것들이 대개는 간단한 스위치 몇 번 누르거나, 자동숨김 된 작업줄 꺼내는 정도이다. 한데 그것 하나 해주고 뭐 받을 때는 황송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을 들려주실 때가 많다. 간단한 사용법 알려드리고 꿀 한 병이라니. 그런데, 이 집이 벌도 치고 있었네. 소 키우는 일에, 농사에, 일 있을 때는 공사판에도 다니시는데. 벌통은 대체 어디에 놓고, 언제 돌봐가며 치시는 것인지. 시골에서는 벌을 전업으로 하지는 않아도, 몇 통씩 벌통을 놓고 있는 집이 적지 않다. 그리고 고등학교에서도 벌통을 놓고 꿀벌을 치는 학생들이 있다. 양봉 동아리를 만들어서 직접 벌을 치고, 꿀을 따고, 그 꿀로 지역 특산품이 될 만한 음식..
“이곳에 서열이 있다는 거 알아?” 캐나다에 살러 온 직후에 만난 어느 선배가 대뜸 나에게 물었다. “서열이라뇨?” “캐나다에는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서열이 있어. 어린이, 여자, 노인, 강아지, 그다음이 남자야.” 처음에는 물론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나라에 살아보니 한국에서 온 보통 남자의 눈에는 이런 서열이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약자를 우대하고 우선시하는 사회여서 그런지 남자들은 이리저리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었다. 이런 판국에 성추문을 만들기라도 하면 남자는 진짜 개만도 못한 대접을 받게 된다. 캐나다에서도 성폭력 뉴스는 심심치 않게 터져나온다. 최근 10년간 토론토 한인 동포가 성범죄 혐의로 기소되어 떠들썩했던 사건도 두 건이 있었다. 첫번째 사건은 20대 남성 6명이 같은 교회 ..
최저임금 인상이 뜨거운 이슈다. 지난 7월 최저임금위원회가 2019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인상된 시급 8350원, 월급(209시간 기준) 174만5150원으로 발표한 이후 노사 양측 모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으로 사업주가 알바 노동자와 함께 일하는 편의점과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아쉬운 점은 많은 언론 보도에서 인상된 최저임금이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였는지는 빠진 채 인상에 따른 부담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해서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고, 이를 통해 경제성장 동력을 만들어보려는 정부와 임금 인상으로 인한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기업의 줄다리기는 앞으로도 일정 기간 계속될..
세상 모든 일에 호기심 넘치던 이십대 초반에 페미니즘을 접했을 당시 내가 어떤 고민을 가졌는지 한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십년이 훌쩍 지나 다시 마주한 페미니즘은 그야말로 ‘다시 만난 세계’였다. 두 번째 만난 글들은 이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에게 훨씬 더 구구절절하게 와닿았고, 때론 가슴 깊이 찔러서 깊은 반성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다양한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공감할 여지가 훨씬 늘어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이 받아왔던 불편부당한 대우를 명확히 인식하게 되고 이를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과정에서 힘을 얻어 스스로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페미니즘을 만난 이후 삶이 더 편안해졌..
대학원 시절에 나는 장학금을 자주 받았다. 그것도 대학원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장학금이었다. 돈 받았다고 연구 성과를 억지로 내야 할 부담이 없으니 누구나 군침을 흘렸다. 하지만 이런 장학금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이 후원하는 형태가 많아서 수혜자의 조건이 굉장히 선명해야 한다. 학교 관계자나 학과 교수가 해당자를 추천하는 간단한 절차지만 고배를 마신 자를 납득시킬 이유가 로또 당첨자에게 있어야지만 논란이 발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바닥에서 최고의 적임자였다. 이유는 내가 힘든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살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서였다. 나는 고시원과 옥탑방에서 5년을 살았고 그 시절 내내 신문배달을 했다. 다른 사람보다 형편이 나빴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이 풍기는 상징..
토론토에서 의류 비즈니스에 종사하며 만난 특이한 인물이 있다. 이름은 사이먼. 만난 지 10년이 좀 넘었다. 70대 후반인 그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옷차림에 똑같은 인상이다. 빛바랜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사시사철 점퍼는 열고 다닌다. 코끼리 같은 몸집에 다리를 조금 절룩거린다. 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은 하얀 수염으로 늘 덥수룩한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 모습은 일품이다. 그는 유대인이지만 나를 만나면 스님처럼 합장한 뒤 악수를 청한다. 그의 인사말도 늘 똑같다. “다음주는 네 비즈니스가 틀림없이 더 좋아질 거야.” 사이먼은 옷을 취급하는 도·소매 상인들에게 비닐백 등 장사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공급하는 업자이다. 도매상 중에는 유대인들이 많다. 내가 아는 유대인 도매상은 모두 사이먼과 거래를 한다...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한 달이 조금 더 지났다. 생후 30일이 막 지난 2번 꼬마와 요즘 부쩍 동생을 향한 질투로 마음고생이 심한 세 살 1번 꼬마의 앙육자로 살아가는 일상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1번 꼬마를 키우며 육아를 어느 정도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둘이 되니 차원이 달라졌다. 우선 하루의 시작이 언제인지가 불분명하다. 잠자는 시간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시간마다 울어대는 신생아 수유노동은 새벽이 되면 그 절정에 달한다. 새벽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준 뒤 2번 꼬마가 금방 잠이 들면 나도 모르게 실실 웃으며 자리에 눕는다. 반쯤 좀비가 된 상태로 아침을 마주해 1번 꼬마를 깨워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 등원을 시킨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소통하고 아이의 소식을 전해주는 키즈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