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모 대학에서 열린 ‘학문 후속세대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발표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작자 미생’의 발표문을 제출했고, 학회의 간사가 그것을 대신 읽었다. 거기에 몇 년 전의 나와 닮은 여러 대학원생이 있었다. 3년 전까지, 내 신분은 대학원생이었다. 정확히는 박사 과정 ‘수료생’, 학위 취득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이수하고 논문 인준만 남은 단계를 가리킨다. 나 역시 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연구재단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신진연구자 지원사업’이라는 프로젝트 공모가 있다는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연구자들이 신청할 수 있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 과제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심정이 되었다...
“한국남자야, 이게. 이 XXXX야! 이게 한국남자라고. 너 뒤질 준비해.” BJ ‘갓건배’ 살해협박 사건 당시 갓건배 추격 방송을 시작하면서 BJ ‘이병욱’이 한 말이다.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정의구현을 위해 길을 나선다. 무엇보다 갓건배가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욕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행했던 ‘BJ특수반’은 갓건배를 처치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시키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남자란 도대체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자신들이 속해 있는 BJ 네트워크 안에서 집단으로 움직였다. 그 네트워크의 이름이 ‘느금마 엔터테인먼트’다. 느금마 엔터는 명확한 실체는 없지만 느슨한 동아리라 할 만한 집단이다. 여기서 ‘느금마’(느..
1박2일 동안 잠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하는 게 잠적일 텐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라질 수는 없었다. 원체 잔걱정이 많고 벌여놓은 일들이 한창 진행 중이어서 몰래 자리를 비우기 찜찜했다. “잠적은, 한다고 말하고 실행하는 게 아니지”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긴장이 풀리고 웃음이 터졌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친절한 잠적을 감행하게 된 셈이다. 언젠가부터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소읍에 도착하는 데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숲길도 걷고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다. 뜨끈뜨끈한 온천수에 몸을 씻고 나니 활기를 되찾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제 뭐하지?’라는 생각도 잠시, 나는 어느새 책을 읽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아무 일도,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전히..
생산지의 무밭과 배추밭, 그리고 향신료며 젓갈 생산과 유통의 일선은 김장 식료 준비로 이미 분주하다. 사전에 따르면 김장은 “겨우내 먹기 위하여 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담그는 일. 또는 그렇게 담근 김치”이다. 또한 “김장거리로 무, 배추 따위를 심음. 또는 그 배추나 무”를 아우른다. 지상 어느 곳이든 겨울을 지나야 하는 지역에서는 반드시 겨우내 먹을 음식을 따로 준비하게 마련이다. 목축이 성한 곳에서는 양, 사슴, 소, 돼지의 고기, 내장, 선지를 총동원해 겨울 넘기는 동안 먹을 소시지, 햄을 만든다. 어업이 성한 곳에서는 염장이나 훈연으로 생선을 갈무리한다. 물도 마르고, 식물도 동물도 그 모습을 감추는 겨울을 나기 위해, 사람은 내가 사는 데서 주어진 자원으로 음식을 해 어떻게든 새봄까지 간수하고 ..
긴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월요일에 나는 부모님과 함께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지내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서울에서 큰삼촌이나 막내 이모와 번갈아가며 같이 사셨다. 그러다가 한 3년 전부터 부쩍 아파지신 할머니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식들이 함께 돌보다가, 할머니에게 치매증상이 나타나자 몇달 전부터는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시래기같이 바싹 마르고 늘어진 몸으로 휠체어를 타고 있는 할머니를 뵈니 갑자기 눈물이 차올라 얼른 “할머니, 저 왔어요!” 하고 손을 덥석 잡았다. 보고 싶었던 할머니와 준비해온 과일도 같이 먹으며 한참을 정답게 얘기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대뜸 엄마 보고 “승윤이는?” 하며 내가 어디 있는지 묻는다. 그 말에 엄마가 깔깔 웃으며 “승윤이 여기 ..
-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NH농협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IBK은행, DROPTOP, GS25, MG새마을금고, CU, Tous les Jours, Paris Baguette, Tworld, CGV, MINI STOP, 웰피부과, olleh, Hug Gallic, 프라이덴 치과, 킹노래방, 크리스탈 사우나, MADELENE, URBAN Bakery, 디지털 프라자, ETOOS#수학학원, K2, Hyundai Oilbank, 삼천리 자전거, Marley Coffee, MILLET, Eider, 꿀잠, SIEG, adidas, Reebook, BRONX, TARR TARR, FM치과, KOLON SPORT, NIKE, 다비치 안경, 창조의 아침 미술학원, 날씬한 요가, 재능교육, ..
지난봄에 누군가가 나에게 “고향이 어디예요?” 하고 물었다. ‘망원동’이라고 답하자 그는 “망원동을 고향이라는 사람도 있네요” 하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의 어느 특정 동네를 고향으로 답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고향을 묻는 질문에 ‘홍대입구’나 ‘망원동’이라고 자연스럽게 대답해 왔다.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태어났으니 홍대입구라고 하는 게 가장 알맞기는 하겠다. 성미산의 서쪽 자락에서 나는 오래 살았다. 정확히는 성산동과 망원동과 상암동의 경계지역에서 자랐고, 어린 나는 여권도 없이 동과 동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1990년대부터 꿩을 잡아 보겠다고 성미산을 타고 놀았고, 망원유수지 인근의 한강시민공원에 가서 연을 날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
사람 A가 사람 B에게 묻는다. “C라는 사람 알아?” “응, 알아.” 사람 A가 재차 묻는다. “잘 알아?” 사람 B가 대답을 주저한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 A는 사람 B가 사람 C를 잘 안다고 확신한다. 사람 B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는 사람 C를 안다고 말하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 사람 C에게 물어봐도 사람 B를 안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 C를 잘 안다고 말하기는 왠지 어렵고 불편하다. ‘잘’이라는 부사가 가져다주는 무게 때문에 사람 B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 C와 알고 지낸 지 5년이 훌쩍 넘었지만, 단순히 긴 시간 동안 교류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득 ‘잘’이라는 단어는 간편하면서도, 그만큼 쉽게 써서는 안되는 말처럼 느껴졌다. 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