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 |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parsh0305@gmail.com “뉴스마다 정치 이야기들은 엄청 하는 데, 우리 같은 사람은 도통 느껴지지가 않아요.” 며칠 전 택시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대선 관련 보도가 계속되자 운전사 아저씨가 무심히 던진 말이다. “유세장 가본 지가 언젠지 모르겠네. 요즘은 여론조사로 선거 다 하는 거 같아요. 선거도 없어지지 않을까요? 여론조사로 할 날이 오겠죠?”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매일 매일의 주가 변동에 울고 웃는 주식투자처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쏟아내는 여론조사 결과에 정치가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려도 정말 괜찮은 걸까. 여론조사가 정치를 지배하는 지금과 같은 일이 계속돼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만 맴돌았다. 여론조사는 참고할 만한 ‘소극적 지식’으로 이용..
시험에 나올 예상문제를 콕 찍어준다는 ‘족집게 과외’는 유형이 다양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한 것뿐 아니라 요즘은 논술과 입학사정관 대비는 물론 학교 내신성적을 올려준다는 과외도 있다. 줄넘기를 가르치는 과외도 등장했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후보들에게도 족집게 과외는 필수인 모양이다. 저마다 나름 일가를 이룬 인물을 과외선생으로 모시고 있다. 어쩌면 족집게 과외는 정치권에서 먼저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 특히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를 청와대로 불러 의견을 들어왔다. 경제는 국민이 입고,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분야임에도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대통령 스타일에 따라 과외교사를 대하는 태도도 각양각색이었던 것으로 전..
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대통령 후보로 나선 세 사람의 공약을 들여다보면 거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복지, 경제민주화, 일자리 창출은 어느 후보나 입만 열면 하는 말이다. 선거철이면 항상 그랬듯이 경제성장이 다시 공약의 중심이 된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에서도 세 사람 모두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 일자리 창출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솔깃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셋 중에서 안철수 후보만 그런대로 참신한 구상을 내놓았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성장동력이 필요하고, 이 동력은 창의력이 자유롭게 발현될 수 있는 여건에서 이루어지는 기술혁신을 통해 얻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체상태에 빠진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평가해줄 만하다. ..
박해천 | 홍익대 BK연구교수·디자인연구 일단 전설적인 1980년대에서 시작해 보자. 5월 광주로부터 3저 호황을 거쳐 88올림픽에 당도하는 기이한 역사. 군사정권의 폭압정치에도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던 청년들이 있었고 그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변화를 꿈꾸었다. 과학과 이성의 힘을 믿었던 그들은 서슬 퍼런 반공의 칼날 아래서도 거침없이 ‘혁명’이라는 단어를 발설하곤 했다. 그러나 역사는 그들 편이 아니었다.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1991년 소련의 해체는 그들의 청춘에 종지부를 찍는 서글픈 사건이었다. 누군가는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오죽하면 내 눈물마저 나를 배신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이념의 강철 대오가 무너진 ..
박창근 | 관동대 교수·토목공학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사회적 합리성 없는 과학적 합리성은 공허하고, 과학적 합리성 없는 사회적 합리성은 맹목적’ 이라 했다. 만약 어떤 행위가 사회적 합리성도 과학적 합리성도 없다면, 그것은 공허하고 맹목적일 것이다. 불행히도 지난 5년간 우리사회를 분열시켰던 4대강 사업이 바로 그러하고, 그것은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홍수예방, 수량확보와 수질개선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천에서 홍수 피해는 여전하고, 산간농촌지역에서는 물이 부족한데도 4대강에 확보한 물은 사용처가 없고, 보건설로 물이 정체되어 낙동강은 지난 여름 ’녹차라떼‘가 되었다. 4대강사업은 과학적 합리성이 부족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물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문제의식은 옳았..
정부는 어제 국무회의에서 342조5000억원으로 편성한 내년 예산안을 확정했다. 올해보다 17조1000억원(5.3%) 늘렸다. 경기를 부양하고 나라 곳간도 지킨다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내년 균형재정 목표에서 한걸음 물러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0.3%(4조8000억원) 적자로 잡았다. 경기를 살린다며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지난해보다 3.6% 늘어난 23조9000억원으로 잡았다. 경제성이 불투명한 도로 건설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2년 만에 무너뜨렸다. 보건·복지·노동 분야 예산은 지난해보다 4.8% 늘어난 97조1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봇물처럼 터지는 복지 수요를 감안했다. 문제는 내년 수입을 너무 낙관적으로 잡은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는 점이다. 정부는 내년 총..
남재일 | 경북대 교수·신문방송학 돈은 잘 벌어다 주는데 종종 엄마를 때리는 아버지, 늦은 밤 귀가해 술 취한 얼굴로 “나처럼 성공하려면 공부 열심히 하라”는 아버지. 이런 ‘유능한 나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은 ‘무능한 착한 아들’이 되기 쉽다. 둘의 화해는 쉽지 않다. 아들은 수혜보다 피해를, 아버지는 피해보다 수혜를 앞세우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의 나쁨에만, 아버지는 아들의 무능에만 집착하게 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아들은 유능을 나쁨과, 아버지는 착함을 무능과 동일시하는 착시에 빠진다. 나아가 아버지는 유능을 나쁨으로 표현하고 아들은 착함을 무능으로 증명하려는 착란에 도달한다. 이 상태는 일종의 도착이다. 서로가 상대를 온전한 인격체가 아닌 사물화된 이미지로 대한다는 점에서 그렇..
정부가 내년 3월부터 ‘0~2세 유아 전면 무상보육 정책’을 바꿀 방침이라고 그제 밝혔다. 부모 소득이나 맞벌이 여부에 관계없이 보육료를 전액 지원하는 데서 소득 등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쪽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0~2세 유아 전면 무상보육 정책은 시행 1년 만에 폐기된다. 정책 변경으로 보육 지원금이 줄어드는 부모는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해 2012년도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정부 의지와 관계없이 0~2세 무상보육 예산을 끼워넣어 통과시킨 정치권의 반발도 크다. 더욱이 여당인 새누리당은 물론 야권도 지난 총선 때 유아 전면 무상보육을 당론으로 정하고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부가 보육료 차등 지원을 전제로 내년도 예산안을 짜 국회에 제출키로 한 만큼 무상보육 정책의 변경 여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