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원 | 서울시립대 교수·철학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자연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자연과학의 핵심 테마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과학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가령 오늘날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인 환경문제만 보더라도 그것이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깊은 관련을 갖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자연을 하나의 거대 기계로 보는 기계론적 관점과 하나의 유기체적 생명체로 보는 유기체적 관점으로 크게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기계론적 자연관은 16세기 이후의 과학혁명(가령 역학, 천문학, 화학 등에서의 혁명)과 데카르트적인 합리주의 전통에서 유래한다. 과학혁명의 과정은 자연을 보는 관점을 급격히 바꾸어 놓았는데 전통적인 신 중심의 자연관, 즉 자연은 신의 의도에..
박진섭 |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 연간 700만명 방문! 국민들 대다수가 한 번쯤 갯벌을 찾는다. 살아 있는 대자연의 생태학습장으로서 갯벌만큼 역동적인 생태계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없다. 이런 갯벌도 과거에는 쓸모없는 땅이라고 여겨져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사라지던 비극의 시대가 있었다. 시화 갯벌이나 새만금 갯벌이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 대규모 간척 논란이 잠잠해지나 싶더니 ‘갯벌양식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갯벌의 수난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정부입법이 아니라 절차가 간단한 의원입법 형식을 빌려서 ‘수산업법’ 개정과 ‘갯벌양식어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이 법안의 주된 내용은 기업과 외부 자본이 갯벌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대폭 완화하..
황대권 ‘야생초 편지’ 저자 얼마 전 지방의 한 군립도서관에서 인문학 초청강연이 있어 다녀왔다. 청중의 면면을 보니 토박이뿐 아니라 도시에서 갓 이주한 귀농인도 꽤 눈에 띄었다. 강연 후 페이스북에 이런 감상문이 올라왔다. “요즘 같은 초스피드 시대에 한마디 하고 3초씩 쉬며 파워포인트나 동영상 자료도 없는 강의를 듣고 있으니 세월을 거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문맥으로 보아 강연자를 폄훼하려는 의도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의도적으로 했던 이야기식 강연이 잘 먹혀들지 않은 것 같아 조금은 씁쓸했다. 한 번은 서울의 한 대학에서 요즘 최고로 잘나가는 인기강사의 대중강연을 참관한 적이 있다. 무대가 TV 쇼프로그램처럼 화려했다. 나 역시 그 무대에 서는 강연진의 일부였지만 왠지 꿔다놓은 보릿자루 ..
안철환 | 귀농본부 텃밭보급소장 옛날 농부님들은 콩을 세 알씩 심었다. 한 알은 하늘의 새가 먹고, 한 알은 땅 속의 벌레가 먹고, 비로소 남은 한 알로 농부가 콩을 키워 먹었던 것이다. 사람 먹을 것도 귀한 때 미물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었으니 그 측은지심이야말로 성인군자나 다름없다. 그러나 콩 세 알을 심은 진짜 이유는 새, 벌레를 위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이 먹을 한 알을 확실하게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그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보는 게 옳다. 아마존 밀림 가운데 원주민들의 농경지가 자그만치 12%나 됐다고 한다. 그 넓은 면적에서 농사를 지었음에도 그들의 농경지는 외부인의 눈에 쉽게 띄지 않았다. 왜? 숲을 파괴하지 않고 숲 그대로에 맞게 농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곳..
김선 | 굿네이버스 말라위 지부장 인류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질병은 무엇일까? 보통 암이나 에이즈 등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질병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1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2억건 이상의 발병률을 보이는 공포의 질병은 바로 말라리아다. 우리가 말라리아를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이른바 잘 사는 나라들에서는 말라리아가 그리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 아프리카 말라위 지역 주민들에게 장례식은 일상이다.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말라리아로 사람이 죽어나간다. 대부분의 장례식은 아동들의 장례식이다. 지역을 조사하며 이 지역 5세 이하 유아 사망률이 30%에 육박한다는 것과 대부분의 사망원인이 말라리아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산술적으로 계산할..
이석조 | 환경과학원 기후대기연구부장 언제부턴가 봄이 되면 ‘불청객 황사’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황사는 발원지의 기온, 기압 배치 등 기상 상태에 의해 발생빈도 및 강도가 좌우되는 자연현상이다. 2000년 이후 황사 발생 시 서울에서 관측된 미세먼지(PM10)의 최고 농도가 3311㎍/㎥까지 나타났다. 특히 2010년에는 1354㎍/㎥였는데, 이는 2011년 서울의 먼지 평균농도인 47㎍/㎥와 비교하면 얼마나 높은 것인지 알 수 있다. 황사는 농도도 중요하지만 더 큰 문제는 황사 입자의 크기가 일반 미세먼지보다 작은 3~6㎛에 집중돼 있으며, 또 그 입자 중에 많은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유해물질의 포함 여부는 발원지에서 발생한 황사가 어느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에 도달하는지에 ..
고영재 | 언론인 봄볕 따가운 4월 중순 천관산 자락, 이름 높은 ‘장흥표고’ 농장이다. 버섯 종균을 참나무 토막에 삽입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캡슐 모양의 종균을 참나무 구멍에 넣는 할머니들의 손길이 번개처럼 움직인다. 일흔네 살 ‘능주댁’이나 팔순 ‘운봉댁’의 잽싼 손길에서 나이를 가늠할 길이 없다. 아침 8시 시작된 작업은 오후 6시까지 계속된다. 일손은 하루 두 차례 새참과 점심 때 잠시 멈출 뿐이다. 할머니들 솜씨는 한 치 오차 없이 움직이는 고성능 전동 로봇의 그것 그대로다.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신통할 따름이다. 그 나이에 그 기력, 그 솜씨가 놀랍다. 칠순 팔순 할머니들의 손놀림에서 강건한 힘을 느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들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건강하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온몸이 성한 데..
더글러스 러미스 정치학자·오키나와 거주/ 번역 | 손제민 기자 1970년대 초반 일본 학생들의 미국 워싱턴주 핸포드 핵시설 견학을 주선한 바 있다. 견학 시점을 나가사키 원폭투하 기념일(8월9일)에 맞췄다. 이 때문에 견학 안내자는 당혹스러워했다. 자신들이 만든 플루토늄으로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는 핸포드 핵시설 노동자들 사진 앞에 섰을 때 안내자의 목소리는 중얼거리듯 작아져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핸포드 핵시설이 얼마나 안전한지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는 매우 활기를 띠었다. 그는 플루토늄 폐기물은 깊은 구덩이에 매립되며 누출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모니터된다고 말했다. 내가 질문했다. “플루토늄의 반감기가 2만4000년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누가 그렇게 오랫동안 모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