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인양을 시도할 것이라는 속보를 본 순간부터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양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다시 접했다. 기상 여건에 따라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머지않아 세월호 인양이 시도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부디 인양에 성공하기를. 최대한 온전하게 세월호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를. 꽃 같은 아이들을 태운 배가 무참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사건은 온 국민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상처가 너무 컸던 탓인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부터는 세월호를 입 밖에 꺼내기를 주저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광화문광장을 지날 때면, 불편한 마음에 발걸음도 빨라졌다. 작년에 선거를 준비하던 누군가가 “이제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 국민들이 싫어한다”고 말할 때, 나조차도 그 앞에서 아니라고 말하질 못했었다...
지난 1월9일은 304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0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참사의 원인, 과정, 결과가 지닌 이해 불가의 무능과 사악함에 대한 분노는 인간은 본시 망각의 동물이라는 표현이 끼어들 자리조차 없애야 하지만, 맹목으로 확산되던 세월호 피로감과 못된 버릇을 못 버린 종북론의 마녀사냥,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변함없는 후안무치의 조직적 방해로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바다 밑바닥에 박힌 세월호는 우리들 심장 밑바닥에 박힌 가시다. 맨밥 꿀꺽 삼키듯 덮어보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가시의 존재는 더 분명해지고, 고통은 더 선명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끄러워하며 슬퍼하며 비루한 공범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날 ..
5일 밤 9시30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마을극장 향. 방금 연극 공연을 마친 일곱 명의 중년여성 배우들이 객석에 인사를 하기 위해 무대 앞에 둘러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2학년 8반 안주현 엄마입니다.” “6반 이영만 엄마입니다.” “4반 김동혁 엄마입니다.” “저는 생존학생 2학년 1반 장애진 엄마입니다.” “7반 정동수 엄마입니다.” “3반 정예진 엄마입니다.” “7반 곽수인 엄마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아이들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밝힌 이들은 ‘416가족극단 노란 리본’의 단원인 세월호 엄마들. 손에는 ‘끝까지 밝혀줄게’라는 일곱 글자 팻말을 나누어 들고 있었다. ‘416가족극단 노란 리본’은 자신들이 출연하는 창작극 을 1월 들어 벌써 세 번 무대에 올렸다. 4일과 5일 ‘성미산 동네..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괴감을 높여 주기도 했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준 또 다른 긍정적인 영향은 세월호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꿔줬다는 점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공론화되기 전까지 세월호에 대한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이제 그만 좀 우려먹어라, 지겹다. 둘째, 유족들이 돈 더 받으려고 저러는 거다. 셋째, 교통사고인데 무슨 진상규명이 필요하냐. 넷째, 인양하지 마라. 돈 아깝다. 모든 이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을 통해 표출되는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정부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의 공모관계가 밝혀진 이후 세월호는 다시금 조명되기 시작한다. 사건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벚꽃 잎이 난분분히 흩날리고 있다. 화사한 봄빛을 터트린 벚나무 아래에 모여 선 아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눈부시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아이들과 함께 다소곳하게 서 있는 앳된 선생님은 아이들만큼이나 순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마지막 봄이 그렇게 사진 속에 있었다. 정유년 새해 첫날, 기억교실에서는 세월호 유가족 몇이 반별로 찍은 단체 사진을 벽에 걸고 있었다. 의자에 올라선 아버지의 못질은 서툴렀고, 의자를 꼭 잡고 있는 어머니의 눈매는 매서웠다. 못이 단단히 박혔는지, 한쪽으로 기울지나 않았는지 한참 공을 들인 뒤에야 사진 하나가 걸렸다. 아이에게 떡국을 끓여줄 수도, 새해 덕담을 해줄 수도 없는 부모들은 사진을 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양 온 힘을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가 일단락됐다. 이번 국정조사에서 핵심 증인인 최순실씨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은 공개된 청문회장에 끝내 나서지 않는 등 시민 우롱으로 일관했다. 어제 국정조사특위는 19년 만에 구치소 현장 청문회를 했다. 최씨는 청문회장까지 나오기를 거부했고, 의원들은 수감동을 찾아가 비공개 신문을 했다. 검찰 출두 당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울던 최씨는 이날 혐의를 부인하면서 계속 짜증을 냈다고 의원들은 전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아느냐”는 질의에 최씨는 “모른다”고 잡아뗐고, 미르·K스포츠 재단 문제에서 “나는 그런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딸 정유라씨 부정입학 의혹에는 “딸은 이화여대에 정..
눈물에는 여러 가지 눈물이 있다. 기쁨의 눈물, 억울한 눈물, 겁먹은 눈물, 회한의 눈물, 고통의 눈물, 웃음 끝의 눈물, 마지막 숨을 몰아쉰 눈물, 웃픈 눈물, 거짓 눈물…. 눈물을 흘리는 사람과 상황에 맞춰 이름을 짓자고 하면 세상에는 사람들 생김새만큼이나 많은 눈물이 존재할 것이다. 이날의 눈물은 어떤 눈물이었을까. 지난 9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날이다. 남보라색 재킷에 회색 바지를 입은 그는 오후 4시53분 청와대 위민1관 영상 국무회의실에 입장해 국무위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대통령 신분’이란 껍데기만 갖게 된 그는 4분54초간 모두발언했고 우리는 TV로 이를 지켜봤다. 이후 TV로는 볼 수 없는 비공개 간담회가 이어졌다.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자리였을 것..
오늘은 대한민국 운명의 날이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 표결에 부쳐진다. 만약 이 안이 가결되고 장차 헌법재판소를 통과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실로 오랜만에 우리나라에서 정의가 승리하는 장면을 국민이 목격하게 된다. 세월호 유족들은 먼저 간 자식을 생각하며 눈물 흘릴 것이다. 토요일 촛불집회에서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 뒤 정국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 될 수밖에 없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하면서 여러 후보가 대선의 급류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은 불문가지다. 개헌 주장도 더러 나오겠지만 현 국면에서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에 불과하다.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