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 날까지 내년도 예산안에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 자동 부의제도가 포함된 국회선진화법이 2014년 시행된 이후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를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의장이 15일 본회의를 마감시한으로 예산안 처리를 압박하고 있지만, 긍정적인 신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예산의 내용과 규모를 두고 ‘새 정부 vs 전 정부’ 구도로 여야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법인세 같은 예산 부수법안에서도 도무지 접점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과거처럼 해를 넘겨 예산안이 처리되거나, 아예 사상 첫 준예산 편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선진화’라는 별칭을 따로 붙여야 할 정도로 선진화법 이전의 국회는 그야말로 후진적이었다. 예산 처리 시..
“노사는 우리에게 중재를 요청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끼리 합의가 안 돼서 일단 우리에게 중재를 요청했다면, 그때부터는 철저히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파업이나 직장폐쇄는 즉시 멈춰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최대한의 제재를 가합니다.” 몇 년 전 유럽의 사회적 대화 실태를 연구하기 위해 방문했던 스웨덴 국립중재위원회에서 들은 말이다. 스톡홀름 감라스탄 남쪽 허름한 건물 안 사무실에서 커트 에릭손 국립중재위 법률부장은 엄청난 얘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냈다. 세계 최고로 노동권이 존중받는 나라에서 노조를 이렇게 엄격하게 대한다니 약간은 의외였다. “그 대신 우리는 결과로 보답합니다. 노조가 임금 인상을 자제하면 인플레이션을 확실하게 잡아서 설사 명목임금이 깎이더라도 실질임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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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5일 제주 4·3 대책회의 참석을 위해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간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주 4.3아카이브 제공 1948년 ‘제주 4·3’이 격화되자 미군정은 4월17일 모슬포에 주둔 중인 국방경비대 9연대에 진압을 명령했다. 그러나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우익단체인 서북청년회와 경찰의 도민 탄압이 사태의 도화선이라 보고, 평화적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김 중령은 4월28일 남로당 제주위원회 조직부장이자 무장대 군사총책 김달삼과 만나 72시간 안에 전투를 중지하고 무장해제와 하산이 이뤄지면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는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미군정 사령관 하지는 협상 결과를 무시했다. 사흘 뒤인 5월1일 발생한 오라리 마을 방화사건은 무력진압의 신호탄이 됐다. 미군정과 경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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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1일 카타르 도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포르투갈과 맞선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1-0으로 이겨 4강 진출을 확정한 뒤 국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도하 | AP연합뉴스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은 ‘삼사자 군단’으로 불린다. 빨간 혀와 발톱을 지닌 파란 사자 세 마리가 새겨진, 잉글랜드 축구협회 엠블럼에서 비롯된 별칭이다. 이 엠블럼은 12세기에 등장한 왕실 문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자왕’ 리처드 1세가 즉위하면서 원래 한 마리였던 국장에 한 마리를 추가했고,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한 마리를 더 넣어 세 마리의 사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삼사자는 잉글랜드와 자국 축구의 상징이 됐다. 각국 축구대표팀을 친숙하게 부르는 별명이 다양하다. ‘레 블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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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옥희 울산교육감이 지난 3월22일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첫 등교 때 한 학생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노옥희 교육감 페이스북 캡처 누구나 살면서 다시 태어나는 듯한 경험을 하는 순간이 있다. 교육자 노옥희(1958~2022)에게 그런 순간은 20대 중반 울산 현대공고 수학교사 시절 한 제자와의 만남이었던 것 같다.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에서 어렵게 학교에 다니던 이 학생은 졸업 후 공장에서 일하다 손목이 잘리는 산업재해를 당했다. 노동조합은 없었고, 산재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았다. 한 푼도 보상받을 수 없어 절망했다고 한다. 노옥희는 2011년 책 에서 그때를 회고하며 “학생들에게 전공과목만 열심히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
조두순이 출소한다는 소식을 듣고 국민들은 불안해했다. 그리고 두려워했다. 그러자 정부는 여러 정책을 쏟아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뒤 이번엔 조두순이 현재 거주지에서 딴 곳으로 이사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사 지역 주민들이 결사반대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하나? 더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조두순보다 심각한 성범죄자가 오늘도 출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지역 주민들의 분노는 정부 대책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정당한 분노이고, 지역 주민들의 불안 또한 내 주변 가족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합리적인 불안이다. 이러한 분노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답을 제시하여야 한다. 답은 ‘어떻게’라는 질문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왜’..
윤석열 대통령 취임 7개월이 되었다. 대통령실 이전 빼고 도대체 뭘 했냐는 말도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70%쯤의 국민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방식이나 태도 등을 반대하지만, 그는 오로지 국민을 위해서라며 과감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앞으로만 나가는 저돌적 스타일이다. 그러는 게 자신과 여당은 물론 국민에게도 좋지 않다는 지적이 많지만, 좌고우면 없는 진격을 거듭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앞으로 나가는 방식은 대개 ‘싸움’이다. 매일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 주로 직접 싸우지만, 가끔 대리인을 내세우기도 한다. 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전술의 기본쯤은 간단히 무시한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싸움처럼 보인다. 대통령의 싸움은 안팎을 가리지 않았다.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를 이끈 이준석 대표는 ‘내부 총질이..
벌써 12월이다. 한 해의 정리와 연말결산을 하는 달이니 나도 첫 원고를 쓰던 때로 돌아가 ‘원고결산’을 해본다. 이 지면에 처음 실린 글은 최소 3년은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금연에 성공하려면 소문부터 내라는 조언을 적용해 누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아도 마구 소문을 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항공기 승무원마저도 비행기를 타기 힘들었지만, 아무튼 나도 3년간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육로가 막힌 대한민국에서 비행기란 무엇인가. 야간버스에서 자다 깨 여권 검사를 당하는 경험처럼 새로운 가능성, 이국적인 상황, 낯선 여행 그 자체다. 하지만 동시에 시간당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운송수단이기도 하다. 유럽환경청(EEA)은 승객 한 명당 비행기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버스의 4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