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영국 동부의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 성냥공장에 근무하는 여성 및 소녀 노동자 1000여명은 최초의 대규모 여성 노동자 파업을 단행했다. 하루 14시간 이상의 노동과 저임금 및 벌금제도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계기는 성냥제조에 사용된 백린의 치명적 부작용 때문이었다. 백린은 턱이 괴사되는 인중독성 괴사(phossy jaw) 등 인체에 축적되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유해 물질이었다. 최근 개봉된 영화가 바로 이 파업의 발단이 된 백린의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영화에서는 질병에 걸린 여성은 장티푸스에 걸렸다고 비난하며 내쫓았고, 백린의 문제를 제기한 여성노동자는 신변의 위협까지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의 노동자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 ‘일을 중단’하고 거리로 나서는 것이었다..
2017년 5월25일 영국 맨체스터의 한 광장에 시민들이 모였다. 어딘가 슬픈 표정을 한 이들은 사흘 전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장에서 일어난 테러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1분간 침묵했다. 1분의 침묵이 끝나자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한 여성이 맨체스터 출신 록밴드 ‘오아시스’의 ‘화내며 뒤돌아보지 마세요’(Don’t look back in anger)를 조용히 읊조렸다. 그가 20초가량 노래를 부르자 몇몇이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따라불렀고, 1분쯤 지나자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처음 노래를 시작한 리디아 번스마이어 롤로는 지난 사흘간 머릿속에 떠올랐던 노래를 불렀을 뿐이라며, 사람들이 따라부르기 시작했을 때 소름이 돋았다..
겨울 채비를 마치고 거개의 나무들이 적막에 드는 겨울,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유난스레 돋보이는 나무가 있다. 호랑가시나무다. 상록성의 초록 잎 사이의 빨간 열매가 도드라지는 호랑가시나무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겨울나무’ 혹은 ‘크리스마스 나무’다. 잎 가장자리의 가시가 호랑이 발톱을 닮았다 해서 호랑가시나무라고 이름 붙인 나무인데, 일부 지방에서는 얼기설기 엮은 가지로 호랑이가 등을 긁을 때 쓸 만하다 해서, 호랑이등긁개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예수의 가시면류관을 만든 나무라고도 하고, 예수의 이마에 박힌 가시를 뽑아내다가 자신의 여린 몸이 찢겨 피를 흘리며 죽어간 작은 새 ‘로빈’이 좋아하는 먹이여서 예수의 수난과 함께 기억하며 성탄 장식에 썼다고도 한다. 크리스마스가 ..
국회가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 날까지 내년도 예산안에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 자동 부의제도가 포함된 국회선진화법이 2014년 시행된 이후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를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의장이 15일 본회의를 마감시한으로 예산안 처리를 압박하고 있지만, 긍정적인 신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예산의 내용과 규모를 두고 ‘새 정부 vs 전 정부’ 구도로 여야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법인세 같은 예산 부수법안에서도 도무지 접점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과거처럼 해를 넘겨 예산안이 처리되거나, 아예 사상 첫 준예산 편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선진화’라는 별칭을 따로 붙여야 할 정도로 선진화법 이전의 국회는 그야말로 후진적이었다. 예산 처리 시..
“노사는 우리에게 중재를 요청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끼리 합의가 안 돼서 일단 우리에게 중재를 요청했다면, 그때부터는 철저히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파업이나 직장폐쇄는 즉시 멈춰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최대한의 제재를 가합니다.” 몇 년 전 유럽의 사회적 대화 실태를 연구하기 위해 방문했던 스웨덴 국립중재위원회에서 들은 말이다. 스톡홀름 감라스탄 남쪽 허름한 건물 안 사무실에서 커트 에릭손 국립중재위 법률부장은 엄청난 얘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냈다. 세계 최고로 노동권이 존중받는 나라에서 노조를 이렇게 엄격하게 대한다니 약간은 의외였다. “그 대신 우리는 결과로 보답합니다. 노조가 임금 인상을 자제하면 인플레이션을 확실하게 잡아서 설사 명목임금이 깎이더라도 실질임금이..
1948년 5월 5일 제주 4·3 대책회의 참석을 위해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간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주 4.3아카이브 제공 1948년 ‘제주 4·3’이 격화되자 미군정은 4월17일 모슬포에 주둔 중인 국방경비대 9연대에 진압을 명령했다. 그러나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우익단체인 서북청년회와 경찰의 도민 탄압이 사태의 도화선이라 보고, 평화적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김 중령은 4월28일 남로당 제주위원회 조직부장이자 무장대 군사총책 김달삼과 만나 72시간 안에 전투를 중지하고 무장해제와 하산이 이뤄지면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는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미군정 사령관 하지는 협상 결과를 무시했다. 사흘 뒤인 5월1일 발생한 오라리 마을 방화사건은 무력진압의 신호탄이 됐다. 미군정과 경찰은..
모로코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1일 카타르 도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포르투갈과 맞선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1-0으로 이겨 4강 진출을 확정한 뒤 국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도하 | AP연합뉴스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은 ‘삼사자 군단’으로 불린다. 빨간 혀와 발톱을 지닌 파란 사자 세 마리가 새겨진, 잉글랜드 축구협회 엠블럼에서 비롯된 별칭이다. 이 엠블럼은 12세기에 등장한 왕실 문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자왕’ 리처드 1세가 즉위하면서 원래 한 마리였던 국장에 한 마리를 추가했고,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한 마리를 더 넣어 세 마리의 사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삼사자는 잉글랜드와 자국 축구의 상징이 됐다. 각국 축구대표팀을 친숙하게 부르는 별명이 다양하다. ‘레 블뢰’(..
노옥희 울산교육감이 지난 3월22일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첫 등교 때 한 학생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노옥희 교육감 페이스북 캡처 누구나 살면서 다시 태어나는 듯한 경험을 하는 순간이 있다. 교육자 노옥희(1958~2022)에게 그런 순간은 20대 중반 울산 현대공고 수학교사 시절 한 제자와의 만남이었던 것 같다.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에서 어렵게 학교에 다니던 이 학생은 졸업 후 공장에서 일하다 손목이 잘리는 산업재해를 당했다. 노동조합은 없었고, 산재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았다. 한 푼도 보상받을 수 없어 절망했다고 한다. 노옥희는 2011년 책 에서 그때를 회고하며 “학생들에게 전공과목만 열심히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