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광석|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통합진보당 내분 사태의 불똥이 이곳 남도땅 강진까지 튀었습니다. 지난 4·11 총선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을 관리했던 간부들이 부정선거 책임자로 몰리고 있습니다. 강진군 통합진보당 당원은 몸을 쓰는 노동자, 농민이 많습니다. 이분들이 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당 사무실이기에 같은 컴퓨터로 투표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농민들은 집에 컴퓨터가 있어도 나름 복잡한 인터넷 투표를 직접 하기가 약간 ‘거시기’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같이 나와 투표하셨습니다. 당 실무를 하는 일꾼들은 투표를 할 때마다 곤혹스럽습니다. 단독 후보인 경우에도 기어이 찬반을 물어야 하는 당 규정상 50% 투표 참여는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 총선 후보를 뽑는데..
함민복 시인 일요일마다 나는 한 모임에 나간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관광지다. 일요일은 다른 날보다 이 고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장사를 하는 나로서는 일요일에 가게를 떠나는 게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집사람이 가게를 보니까 가게를 완전히 닫는 것도 아니지만, 가끔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어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집단상가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어떤 날은 관광버스가 두세 대씩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물건을 팔든 못 팔든 나와 같이 있는 것이 집사람은 든든한가보다. 한창 바쁜 시간에 모임에 간다고 빠져나올 때, 흔쾌하게 잘 다녀오라고 하는 집사람의 말을 들으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이런 사정을 헤아려 내가 가급적 오래 가게에서 머물 수 있게 멀리서 차를 몰고 나..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고 물기 꼭꼭 닦은 뒤 올라가는 곳이 있다. 몸무게를 좀 줄이고 싶은 건 내 오래된 희망 중의 하나이다. 어제 점심시간에는 인왕산 허리의 산책로를 걸었다. 그러니 눈금도 정상을 참작해주지 않을까. 그런 얄팍한 기대감으로 거실 한편의 체중계, 간이저울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기대가 문제였지 바늘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저울은 야윈 손으로 내심 지목한 숫자의 바깥을 태연히 가리켰다. 쥐꼬리만큼 운동하고 맛난 것 찾아 포식한 결과는 냉정했다. 하지만 내 머리는 좀전의 실망을 금방 잊었나 보다. 버릇대로 밥을 잔뜩 먹은 것이다. 거북한 배를 안고 문을 나섰다.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알아들었다고 외눈을 껌뻑거렸다. 어쩌다 큰 빌딩에 갈 때 엘리베이..
오성 스님 가는 봄을 붙잡고자 푸른 솔 향이 좋은 숲길을 걷고 있다. 언제나 걸어도 좋은 길. 그 길을 알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세상 어디에 있든, 생의 어느 시간에 있든 여유와 평화로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정리할 일이 생기면 걷는 게 습관이 되었다. 소중했던 출발의 시간을 떠올리며 마무리를 신선하고 긴장되게 한다. 사실 ‘지금’이란 늘 마무리이면서 출발점인데, 무기(無記)의 시간으로 보내고 있을 때가 많다. 천천히 걸으면서 처음으로 돌아가 자신을 살펴보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여기저기 떠돌다가도 가야산 숲길을 생각하면 행복하다. 싱그러운 초심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수행을 향한 도반들의 맑은 눈빛이 있다.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에야 이렇게 그리워할..
강광석 |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suam585@hanmail.net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매일 기도한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식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의 마크를 1년 동안 양복 안주머니에 가지고 다녔다는 아버지야말로 아이의 합격에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어본 사람만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기뻐하고 아파할 수 있습니다. 선거가 끝났습니다. 마을회관에 있던 벽보가 없어지고 바람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펄럭이던 플래카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단 하루 만에 모든 잔치가 끝났고, 세상은 전과 같이 조용합니다. 당선만 되면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정치인은 ‘고맙다’는 당선 인사 플래카드를 걸고 코빼기..
함민복 시인 마당에도 노란 민들레가 피어났다. 날이 흐려서인지 마음에 노란색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서인지 그 빛이 예전만 못하다. 4·11 총선이 끝났다. 면 소재지에서 걸어서 15분 걸리는 내가 살고 있는 곳까지 들려오던 선거차량의 유세소리가 사라져 갑자기 동네가 다 고요하다. 스피커 소리에 놀라며 짖어대던 개들도 낮잠에 들어 동네가 온통 고자누룩해졌다. 주위가 고요해졌는데 나의 마음은 왜 이리 싱숭생숭 시끄러워지는 것일까. 투표 전날 매화나무를 한 그루 샀다. 마당에 나무를 심으며 나무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나무가 커가며 공간의 풍경을 어떻게 바꿔갈 것인가. 계절에 따라 나무는 그림자를 어떤 방향에 내려놓을 것인가. 어떤 종류의 새들이 날아와 무슨 노래를 불러줄 것인가. 지나는 바람소리를 읽어줄, ..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영어를 정식으로 배운 건 중학생 때부터이다. 겨우 알파벳만 떠듬거리며 첫시간을 맞았는데 미리 공부를 해온 친구들이 있었다. 고작 에그(egg), 스쿨(school), 애플(apple)을 발음하는 정도였지만 나는 주눅이 팍 들었다. 철조망 같은 줄이 그어진 펜먼십 노트에 철자 연습부터 시작했다. 영어를 잘해야 성공한다는 압력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는 영어와는 그다지 친하지 못했고, 따라서 잘하지도 못했다. 지금도 영어에 능통한 이를 보면 부럽다는 감정보다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럭저럭 대학을 졸업하고 한 줄의 글이라도 끼적거리게 되었을 때 우리말을 제대로 쓰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통렬히 느꼈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빈약한 어휘는 금방 밑천이 바닥났다. 하는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