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칼바람처럼 싸늘하고 날카로운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배우 김주혁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訃音)이다. 한낮의 도심에서 그가 탄 차량은 앞차와 경미한 충돌 후 인도로 돌진해 아파트 단지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난간이나 가로수를 들이받고 멈출 수도 있었을 텐데, 야속한 네 바퀴는 하필 계단 아래를 향해 굴러갔다. 불운이고 또 비운이다. 동료 연기자와 영화인, 방송인들은 물론이고 스크린과 TV를 통해 그의 모습을 오래 봐왔던 국민들까지 모두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불과 사흘 전 한 시상식에서 “연기 생활 20년 만에 처음 상을 받는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서 주신 것 같다”며 상기된 얼굴로 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감격하던 사람이었다. 삶과 죽음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도 죽..
도시에서 시골에 내려와 몇 년 살고 나면, 저마다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몇 가지 생깁니다. 그렇게 흔히 하는 이야기 가운데, “그거 농사짓는 거 보고 있자니까, 아이고 그거 못 먹겠더라. 농약을 얼마나 치는지” “아니 그 돈 받자고 어떻게 농사를 지어요?” 하는 말 따위들입니다. 작물마다 특히 농약을 자주 치는 것이 있습니다. 과일은 대개 약을 많이 치기도 하고, 사방이 탁 트인 넓은 과수원에서 멀리서도 잘 보일 만큼 약을 뿌리니까, 더 많이 농약을 치는 것 같지요. 그러면 그 과수원 농약 치는 것 몇 해 지켜보고는, 그 과일 못 먹는다 소리가 나옵니다. 올해 타작이 끝나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을도 금세 끝나 갑니다. 아직도 “가실(가을) 다 했나?”라고 하시는 할매들이 있으니까요. “다 거뒀냐?” ..
10월에는 마을공동체 관련 행사들이 많이 열린다. 청명한 날씨가 이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덧 올해의 마을살이를 정리하고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서 그렇기도 하다. 행사들이 겹쳐서 모두 둘러보지 못해 아쉬운데, 올해는 안산의 ‘2017 전국 마을박람회’ 화성의 ‘마을공동체 한마당’에 다녀왔다. 안산의 행사에서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 동안 화랑유원지, 경기도미술관, 단원구청 등에서 다양한 마을정책콘퍼런스와 주민들의 야외포럼이 열렸다. 이 중 기억에 남는 것은 ‘곶안: 곶 안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고잔동 문화마을 교과서를 펴낸 디자인 전문팀 ‘강장공장’의 강진영·장재욱 공장장과 마을공간 ‘소금버스 협동조합’의 노승연 대표가 함께한 토크콘서트였다. 안산에서 나고 자랐다는 세 사람이 주민들과 얘기 ..
평범한 시골 농군이었던 내 할아버지는 “동네 창피하다” “남부끄럽다”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 이웃의 시선을 다분히 의식한 행동거지에 관한 말씀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이 말씀을 캐나다 신문을 보면서 종종 떠올린다. 이곳 경찰과 언론은 흉악한 범죄를 적발하기만 하면 피의자 신상을 바로 공개한다. 법으로 처벌하기에 앞서, 일단 남부끄럽게 하고 동네 창피부터 톡톡히 당하게 한다. 특히 악질 흉악범이나 부정부패 공직자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다. 최근에는 두 여성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동의 없이 인터넷에 유포한 남성 티안 추(24),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하고 달아난 뺑소니 여성 운전자 에런 화이트(28) 체포에 관한 기사가 나왔다. 얼굴 사진은 기사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다. 사회 정서적으로 흉악범들을 단죄하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일하다 다친 상처에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는 말이 다르다고 작은 휴대전화 화면 속 가족들과 나누는 이야기에 그리움이 묻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땀 흘려 일하고 난 뒤 느끼는 바람의 싱그러움을 모르지 않는다. 월급날이면 괜히 마음 한쪽 두둑해져 친구들에게 호기롭게 술이라도 한 잔 사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다. 만나보면 대부분 특별할 것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일하려면 피부색이 다르면 아픔을 느끼지 못해야 한다. 지난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다 다칠 확률이 내국인보다 6배 높았다. 문진국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이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산재보험에 가입된 ..
- 10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긴 연휴 동안 마을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저녁마다 집집이 마당에 불이 환했다. 아이들 웃고 떠드는 소리도 나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자동차 트렁크에서 집 마당으로 짐을 날랐다. 할매 할배들도 바빴다. 챙길 것이 많고, 볼 것이 많고, 짬짬이 이야기도 풀어놓고. “추석도 추석이라고는 별로 안 하고, 그냥 팔월이라고 했지, 팔월. 아직 일이 바쁘니까. 먹고 노는 거는 백중이 크고. 백중에는 집집이 풀 거름 마련하고 나서 놀고, 추석은 식구들하고, 친척들하고 지내는 날이고 그랬지. 추석에는 집안 살림 싹 깔끔시럽게 해야지. 여기서는 송편 같은 거는 잘 안 해 묵었어. 송편 말고, 올벼 가져다가 콩고물해서 찰떡하고, 박나물하고, 토란국 끓이고 그랬지.” 추석이 가까워오면 ..
- 10월 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지난 9월25일부터 27일까지 수원시지속가능도시재단 주최로 ‘지속가능도시주간’ 포럼이 열렸다. 포럼 마지막 날 오전에 마을공동체, 도시재생, 사회적경제 등 주제별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이 중 마을공동체에 대한 주제는 ‘마을르네상스의 융복합 발전과제’였다. 이제는 마을의 부활을 넘어 여러 분야의 ‘융복합’을 이루는 게 마을공동체의 당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융복합이 이슈가 되는 맥락을 크게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관료제로 인해 수많은 부처와 부서로 나뉜 정부나 지자체의 구조와 달리 공동체는 근본적으로 통합적이다. 그래서 어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러 분야의 협조가 필요하다. 이른바 ‘칸막이 행정’의 극복이 공동체 활성화의 관건인 셈이다. 둘째, 정부..
캐나다에서 경험한 두 가지 에피소드. 토론토에는 대형 한국식품점이 몇 개 있다. 고객과 직원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고 영어 쓸 일이 없으니 식품점 분위기는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느 날 물건을 하나 들고 계산대 앞에 줄을 섰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새치기하지 마세요.” 깜짝 놀라 돌아보니 내 뒤에 있는 사람이 나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조금 전 그 사람은 무엇을 빠뜨렸는지 자기 수레를 내 뒤에 두고 매장 안으로 급히 들어갔었다. 계산대 앞으로 돌아온 그는 내가 자기 앞에 끼어든 걸로 착각했다. 창졸간에 새치기꾼이 되어버린 나는 “새치기 아닌데요?”라고 항변했다. 계산대 직원이 개입해 확인해주었기 망정이지,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소리 높여 싸움을 할 뻔했다. 캐나다 TD은행에는 ‘비즈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