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제103조)고 선언하여 법관(판사)의 독립을 사법부의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법관이 지켜야 할 윤리기준과 행위규범을 정한 ‘법관윤리강령’에서도 가장 첫 번째로 ‘법관은 모든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 나간다’(제1조)고 하면서 독립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독립성’은 두 가지 이유에서 중요하다. 첫째, 독립성은 재판의 공정성이 보장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다. 공정성은 사법절차에서 지켜져야 하는 절대 원칙이다. 공정하지 않은 판결에 대해 당사자에게 승복을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법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성장한다. 사회가 발전하고 다양해지면서 새로운 법리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에 기존의 ..
‘고향세’라니, 세금이라는 건 버는 돈, 쓰는 돈, 가진 돈에 붙는 거 아닌가. 무슨 세금이지? 찾아 보니 고향세는 일본에서 먼저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고 한다. 지방정부에 돈이 없으니까,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 자기가 내는 세금 가운데 일부를 자기가 원하는 지자체에 보내는 제도이다. 일본에서는 제법 자리를 잡아 지방세보다 고향세를 더 많이 거두는 지자체도 있다. 우리나라도 곧 구체적인 방법을 정해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고향세 같은 아이디어를 내야 할 만큼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처참하다. 자기 살림을 늘 중앙정부에서 돈을 받아서 꾸려 나가는 입장이다 보니,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할 때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지자체장의 선거나 지역 국회의원 선거 자료의 핵심은 늘 “내가 ..
2008년 12월, 나는 경향신문 지면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 계획을 비판했다. 그해 11월엔 바이오매스,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칼럼을 썼다. 그러나 2017년 7월의 나는 당시의 나에게 온전히 동의할 수 없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9년쯤 됐으니 입장이 바뀔 법도 하다. 중요한 것은 그 이유다. 첫째, 신재생에너지의 기술적 발전에 대한 기대치가 수정됐다. 둘째,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자동차 산업이 변하고 있다. 셋째, 환경오염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하나씩 짚어보자. 내 입장이 달라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장밋빛 기대를 접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 가령 구글의 판단도 그렇다. ..
2016년 통계를 보면 중학교 한 학급에는 학생이 평균 30명 있다. 이 중 6~25등은 일반고에 가는 학생들이고, 대학입시에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가지 못하지만 대학은 진학하는 수험생들이고, 대기업에는 가지 못해도 중소기업의 대부분을 채우는 사람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평범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입시 문제는 중학생 때부터 1~5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림잡아 1~2등을 모아놓은 과학고와 외고 등 특수목적고, 3~5등을 모아놓게 될 자립형 사립고가 쟁점이 된다. 특목고와 자사고를 해체하지 않을 경우 일반고는 실업계에 진학하는 나머지를 제외하면 중학교 때 6~25등을 하던 학생들의 학교가 된다. 대학입시에서 ‘성공’할 수 있는 1~5등을 어떻게든 확보해 실적과 학급 분위기를 잡으려는..
얼마 전 다문화가정 학부모와 상담하면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초등학생 자녀들은 방과후 동네에 있는 공부방(지역아동센터)에 다녔다. 대부분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이용하는 시설인데, 아이들이 오랫동안 공부방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해온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는 것이다. 공부방 교사는 아이들에게 학습지를 풀어오라는 숙제를 내주고, 숙제를 다 못하거나 풀어온 문제가 틀린 경우 그 개수만큼 플라스틱 자와 장구채, 노트 등으로 때렸다. 아이들은 수십 대에서 많은 경우에 100대 넘게 맞기도 했다. 머리가 길다고 다른 아이들 앞에서 가위로 머리카락 일부를 자르기도 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폭언이나 욕설로 공포심을 주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피해를 당한 아이들은 자해, 등교거부, 부모와 대화 단절 등 이상행동 ..
아이들과 섬진강에 나섰다. 다행히 4대강 축에 끼지 못했던 섬진강에는 모래사장이 남아 있다. 발목쯤 잠기는 자리, 물속 모래를 헤치면 재첩이 있다. 발가락에 힘을 주고 모래를 휘저으면서 걷는다. 발가락에 단단한 껍질이 걸린다. 하나씩 재첩을 집어 올린다. 둘이 같이할 때는 한 사람은 모래를 헤집으면서 걷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뒤를 따라가면서 드러난 재첩을 줍는다. 이렇게만 해도 식구들이 두고두고 먹을 만치 재첩을 잡을 수 있다. 봄에 산나물하듯, 때맞춰 하는 살림살이. 아이들도 저마다 한 움큼 재첩을 잡았다.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으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 아이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면 먼저 귀가 쏠린다. 그렇게 듣는 이야기가 노골적이든 그렇지 않든, 결과적으로는 부모가 무언가를 더 해야 ..
사드 배치에 대한 청와대의 태도는 수상하기 짝이 없다. 대체 왜 끝없이 어깃장을 놓는 것일까? 어차피 미국은 사드를 못 뺀다는 전제하에 벌이는 벼랑 끝 전술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판단은 미국과 한·미동맹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하고 있다. 하나씩 따져보자. ‘한반도는 미국에 이른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미동맹을 먼저 파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럴 리가.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가 결코 아니다. 미국에 전략적 요충지란 석유가 나오는 중동, 유럽을 향해 띄운 ‘항공모함’ 영국, 중국과 러시아 견제를 위한 최대 거점인 일본 등이다. 과거에 그어졌던 ‘애치슨 라인’이 보여주었다시피 한반도는 그에 포함되지 않는다. 2002~2004년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일요일 오후 5시30분. 서울역이나 삼성역, 또는 종합운동장역 근처에 가면 수십명 또는 100명 넘는 사람들이 모여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젊은 남자들은 주말에 한 소개팅 이야기 또는 애인 이야기를 하고 40대가 넘어 뵈는 남자들은 애들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은 창원, 울산, 거제, 여수 등 산업도시 일터로 돌아가는 회사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이다. 1990년대 중후반엔 주로 40~50대 ‘기러기 아빠’들이 셔틀버스에 탑승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부터는 아이들을 ‘유학’ 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아빠들은 전세 등을 얻어 아내와 아이를 서울로 보냈다. 가족이 살던 아파트는 세주고 아빠는 사택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20년이 지난 지금 셔틀버스의 구성원은 훨씬 젊어졌다. 20~30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