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법학교수와 변호사들이 길거리에 나앉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16일 동안 법원 앞에 천막을 쳤다. 278명의 법률가들이 마음을 모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두 사건이 떠오른다. 지난 1월 특검이 신청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청구가 법원에서 기각된 것과 얼마 전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이 청와대의 물리적 거부로 불발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은 법이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음을, 청와대 압수수색 불발은 법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특검이 신청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조의연 판사는 뇌물죄에 대한 특검의 수사가 충분하지 못했고, 구체적 사실관계와 법률적 평가를 둘러싸고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을 영장기각사유로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의 강요에 의..
장례는 순조로웠다. 상제들은 마음을 다치지 않았다. 허투루 쓰이는 돈이 적었고, 마음에 없이 예를 차리지도 않았다. 길고도 짧았던 이틀밤 동안 큰소리도 한번 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병원에 실려 가신 것도, 그리고 그 다음 일도 모든 것이 급작스러웠던 까닭에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순조로웠다’라고 적어 둘 수 있을 것이다. 장례 문화를 바꾸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연명치료에 대한 뜻을 미리 밝혀 놓듯이 자신의 장례를 치르는 절차를 미리 적어 두거나, ‘조문보’, ‘엔딩 노트’ 같은 것을 만들거나, 무엇보다 ‘작은 장례’라는 이름으로 장례식에 드는 시간과 돈을 줄이려고 하는 것들이다. 서울 서대문구는 지자체가 나서고 있고, 몇몇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 가..
아닐 미(未), 죽을 사(死).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을 담아 은퇴 후 고령층을 국가에서 ‘미사자(未死者)’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대중매체는 ‘미사자 과잉 사회, 잉여 인구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식의 여론몰이를 일삼고 있다.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기라도 하는 듯 행정자치부에서는 ‘대한민국 미사자 지도’를 지자체별로 순위를 붙여서 공개한다. 인터넷에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늙은이들 잡으러 가자’, ‘우리 도시를 고려장 특화 도시로’ 같은 ‘농담’이 횡행한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가정법이다. 하지만 아마도 독자인 당신에게는 강한 불쾌함과 거부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국가 경제’를 앞세워 멀쩡히 살아 있고 앞으로도 쾌적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는 고령의 시민들을 ‘아직 안 죽..
정치학자들은 얼마 전까지 시민들이 의견을 자유로이 교환하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민주주의 마당으로서 온라인 공간, 특히 소셜미디어의 가능성을 말해왔다. ‘아랍의 봄’, 오바마 재선에서 드러났던 시민의 참여, 한국의 촛불시위는 모두 그러한 흐름을 기술적으로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브렉시트, 미국 대선에서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 여론조사에는 응답하지 않는 ‘숨은 보수’ 현상 등은 온라인 공간에 대한 몇 가지 근본적인 의심을 갖게 한다. 우선 시민들의 생각이 데이터 과학 알고리즘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걸러지고 서로 교류하지 않고 서로 접촉하지 않게 될 수 있음이 드러났다. 최근 실리콘밸리 데이터 과학자 사이에서 뜨거웠던 논쟁이 ‘필터 버블’이었다. 필터 버블은 위키백과에 따르면 “구글, 아마존, 페이스..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으로는 충분치 않은 묵은 해가 지나고 기어코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 우리는 존재한다고 믿었던 상식과 원칙이 모두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아니, 보다 분명하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져 있었지만 그동안 감춰졌던 우리 사회의 적폐(積弊)의 일부가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엄청난 권한을 선거에서 주권자에게 약속한 대로만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에게 약속한 선거 공약은 제대로 지키지 않고,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재벌과 기업은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권력자를 돈으로 매수했고, 부정한 청탁으..
사람이라면 못난 구석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나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무서운 부끄럽고 못된 생각들이 마음속에 한가득이다. 당연하게도 입 밖으로 튀어나오거나 저지르지 않기 위해 만고의 노력을 다한다. 그럼에도 가끔씩 삐져나오는 못남을 모두 다 막아낼 수는 없다. 어떤 이들은 내 곁을 떠났고, 누군가는 그 못남까지도 끌어안아 주었다. 나는 그들의 관대함으로부터 살아갈 힘을 얻었고, 끊임없이 스스로의 못남과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이것이 나만의 사정은 아닐 터다. 어쩌면 고결하다고 칭송받는 이들도 마음속에서는 자신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을 것이다. 자기합리화의 유혹은 본능적인 것이다. 자기 자신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당연히 자기 자신이고, 그러니 어찌 그 가련한 존재의 사정을 봐주고 싶지 않겠..
벽초 홍명희의 소설 의 한 장면을 펼쳐보자. 백정인 꺽정이는 양반인 덕순이와 죽이 좀 맞는 편이었다. 하지만 서로 존대와 하대를 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 차별을 순순히 받아들일 임꺽정이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 존대와 하대에 대해 논쟁이 오가던 중, 머리 깎고 병해대사가 된 갖바치 선생이 꺽정이의 성정을 좀 다스려 보려 한다. “우리말에 층하가 너무 많은 것은 사실이겠지. 그렇지만 어른 아이는 고사하고 양반이니 상사람이니 차별이 있는 바에야 말이 자연 그렇게 될 것 아닌가.” 계급 차별을 없애버리면 되지 않느냐는 꺽정이의 반론에 대해 병해대사는 이렇게 논리적으로 응수한다. “벌써 영 내리는 사람과 영 받는 사람에 차별이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순순히 물러설 임꺽정이 아니다. “못쓸 차별을 없애려면 영을..
‘밥상 이야기’라는 메뉴를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www.jirisan.com)가 있다. 사이트 주인장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밥상 사진을 올린다. 반찬과 식재료에 관한 간단한 코멘트와 음식에 대한 기억이나 소소한 이야기가 함께 올라온다. 식당에서 사 먹는 밥이 아니라 집밥 사진이다. 아침, 점심, 저녁 대중없고 세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의 밥상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남의 집 밥상 구경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먹는 밥이다. 아무리 서먹한 사이라 해도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기 마련이다. 뭘 먹느냐에 따라 회의석상에서 나올 일 없는 이야기도, 숟가락을 놓고 컵에 물을 따르며 음식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풀려나온다. 그 사람과의 새로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