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이 난항에 봉착했다는 소식이다. 안철수 후보 측은 문재인 후보 측이 사전 약속을 깨고 ‘양보론’을 흘렸다는 이유를 표면적으로 내세웠지만, 기대처럼 단일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표출되었다는 생각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정권교체가 정치적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단일화는 게임이다. 게임은 규칙을 만드는 일이다. 규칙이 없다면 게임도 없다. 안 후보 측에게 문 후보 측은 정해진 규칙을 바꾸려는 묘수를 부리는 모양새로 비쳤을 것이다. 문 후보 측은 ‘오해’라고 해명했고, 안 후보 측은 여기에 다시 반발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번 일이 단일화에 대한 양 후보 측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흥미를..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대선이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세 후보 간에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지만, 쌀쌀해진 날씨만큼이나 선거 판도를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한 것 같다. 누가 봐도 흥행이 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기대를 모았던 ‘안철수 현상’은 ‘또 다른 야권 후보’ 하나를 만들어내는 수준에 그쳤다. 결과적으로 정권교체나 정치개혁이라는 ‘바람’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단일화라는 지루한 제살 뜯어먹기 경쟁이 최대 이슈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언론들은 파당적 이해관계에 근거한 선전선동만을 늘어놓고 있을 뿐,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중요한 5년을 보내게 될 차기 정부의 구상에 대한 생산적인 이야기는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쯤 뜨겁게 끓어올랐어야 할 인터넷 여론마저 ‘문-안 단일화 ..
대통령 선거에 관심이 달아오르는 지금, 정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두 편의 영화가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첫 번째는 조만간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다는 인데, 모순적인 행보를 보인 광해군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둘로 쪼개서 긍정적인 대통령 상을 부각시키는 영화이다. 흥미롭게도 이 긍정적인 대통령 상이라는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 제도에서 ‘직선제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국민’의 대리자이다. 합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단숨에 뛰어넘어 ‘국민’의 요구를 실현시켜줄 수 있는 권력의 인격화가 바로 이런 대통령인 것이다. 권력다툼이나 벌이는 신하들의 모습은 어딘가 정치인을 닮아 있고, 권력의 음모로 내세워진 ‘가짜 광해군’은 실질적인 측면에서 국민의 난제를 해결해주는 ‘진짜 주권’으로 그려진다. 이런 내용 탓인지 를 노..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한국어로 ‘덕’이라고 번역되는 영어 virtue는 라틴어로 virtu이다. 어원은 그리스어 arete라는 말에서 나왔다. ‘덕’이라고 하니까 착한 사람이나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이 말은 어떤 기예나 능력을 갖춘 상태를 의미한다. ‘능란함’이나 ‘능숙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인 소피스트들은 이런 기예나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을 교육이라고 불렀고, 학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한국 사회에 만연한 학문에 대한 태도가 이미 고대 그리스에 있었던 셈인데, 프랑스의 철학자 바디우는 이 상황을 일컬어 “우리는 다시 소피스트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피스트의 시대라고 하니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은 주변에서 ..
드디어 안철수 원장이 출마선언을 했다. 10분간 진지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그동안 고심해온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모습은 안철수라는 이미지에 걸맞은 퍼포먼스였다. 안 원장이 제시한 수사학은 자신에게 쏟아진 관심에 정확하게 화답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출마와 정치개혁을 동일선상에 놓음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했다. 구체적인 실천지침이 없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에서 밝힌 것들에 대한 지지를 확인한 뒤 출마선언이 나왔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말하자면, 출마선언은 과 조응을 이루는 것이다. 정책을 먼저 던져 놓고 반응을 본 뒤에 결정을 내린 모양새이다. 여기까지 본다면, 안 원장은 모두에게 익숙한 대통령 후보의 탄생과 전혀 다른 경로를 걸었다. 낯선 것은 새로운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법인데, 안 원장은 ..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민주통합당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이 종반전에 접어드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시선은 안철수 원장에게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심’과 ‘모바일심’의 대결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민주당 경선이 정치개혁보다 세력 다툼에 더 힘이 실려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이번 민주당 경선 잡음으로 인해 안 원장이 대변하고 있는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이 반대급부로 더 강해진 느낌마저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정치개혁을 통한 정권교체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야권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팽배해지고 있다. 민주당 후보만으로 대선을 치를 수 없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셈이다. 예상했던 것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경선 흥행성적은 더 이상 민주당이 이번 대선..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얼마 전 인기리에 이라는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유행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어떤 시대성을 읽어내긴 어렵겠지만, 부정하고 부인해도 스며드는 완고한 현실은 온통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판타지에도 어김없이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흥미롭게도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현실’을 말한다기보다 ‘꿈’을 말하겠다는 태세로 시작한다. 익숙한 지명들이 등장하고, 주인공들도 있음직한 캐릭터이지만,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인물의 복장이나 거주하는 공간은 과도하게 인공적인 세트장 느낌을 자아낸다. 이런 가상의 이미지를 현실로 내려앉히는 역할을 하는 것은 흥미롭게도 ‘1990년대에 대한 추억’이다. 드라마에서 김도진 역할을..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가수 싸이가 최근 발표한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이 유튜브에서 조회수 2000만건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CNN을 비롯한 미국의 유수 방송사들이 이 사실을 보도했고, 경향신문도 2회에 걸쳐 심도 있게 이 현상에 대한 분석 기사를 실었다. 이번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한류열풍을 거론할 때 한국 기획사의 치밀한 스타관리시스템을 성공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유튜브라는 매체 환경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한류에 대한 관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유튜브는 문화상품의 유통과 관련해서 신개념을 만들어냈다. 시공간의 제약에 상관없이 자신이 제작한 동영상을 업로드해서 국경을 뛰어넘는 관객들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유튜브는 카피라이트를 고집하는 주류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