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유태계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법학을 공부해서 1908년 보헤미아왕국 산재보험국에 취업했다. 보헤미아왕국은 독립 이전에 체코를 지칭하던 명칭. 그의 업무는 산재노동자가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 받을 수 있도록 법률상담을 해주는 것이었다. 폐결핵으로 그만둘 때까지 그는 이 일을 계속했다. 세인이 보기에 ‘좋은 직장’이었겠지만, 카프카는 그의 평생지기 막스 브로트에게 “부조리한 정부와 회사에 저항하기는커녕 보상금 한 푼을 더 받기 위해 비굴한 자세를 감추지 않는” 노동자들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한다. 법을 전공하고 법률 관련 일에 종사했기 때문에 카프카는 현실과 법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괴리를 잘 알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발 더 나아가서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지 않게 보상금 몇 푼으로 노동자들을 달래는..
삼성, 밀양, 후쿠시마. 요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설명해주는 세 가지 키워드라는 생각이다. 얼마 전 보도에 따르면 삼성의 신입사원 모집에 9만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이 9만명의 지원자가 누구겠는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스펙’을 자랑하는 젊은이들일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부터 수없이 많은 경쟁의 관문을 통과해서 도달한 최종 지점에 삼성이라는 ‘평등의 고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고원’에 올라가야 젊은이들은 ‘평등’의 권리를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이 평등은 고원 위와 아래를 나누는 불평등에 대한 동의를 전제한다. 이 ‘평등의 고원’을 유지하는 것이 이를테면 한국의 경제주의이다. 고원의 위와 아래를 나누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합리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정당한 노력을 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리는 철학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용기’라고 말했다. ‘용기’야말로 우리가 견지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virtu)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무너져버린 이념을 다시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용기’라는 말이다. 철학에 있어서 지난 30년간을 바디우는 무기력의 시대로 진단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철학은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 그가 제기하는 뼈아픈 반성이다. 젊은 세대와 철학이 분리됨으로써, 또는 자본의 요구에 맞춰 훌륭하게 철학이 교양의 영역으로 퇴거함으로써, 상대주의와 냉소주의가 판을 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현상은 낯설지 않다. 인터넷을 가득 메운 독설과 조소는 진지함 자체..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 혐의’를 둘러싼 논란은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진보의 문제가 터져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진보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했어야 할 문제를 방치한 탓에 국가정보원의 공안수사에 빌미를 제공한 경우인 것이다. 진보당은 이번에도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보다 자기에게 제기된 의혹을 ‘조작’이자 ‘날조’라는 식으로 넘어갈 모양이다. 이번 사건이 불거졌을 때, 진보의 일부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지만, 그 의견을 표명할 자유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치겠다”는 유명한 볼테르의 관용주의를 인용하면서 진보당 편을 들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생각이다. 지금 진보당의 주장은 국정원이 제기한 ‘내란음모 혐의’가 완전 거짓이라는 것이다. 처음에 회합 자체를 부정하던 입..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보수주의가 지지한 이념은 민주적 자본주의였다. 경제적 차원에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진행되고 인재육성과 생산성의 상관관계가 운위되던 한편으로 정치이념 차원에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추동한다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명제가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졌다. ‘모두가 부자 될 수 있는 자본주의’나 ‘인민자본주의’ 같은 캐치프레이즈가 이 때문에 가능했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멋진 유토피아인가. 모두가 부자 되고 권력의 주인이 된다는데, 이보다 더 환상적인 약속은 없을 테다. 진보 내에서도 자본주의를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이런 전제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경우는 보기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의미했고, 이것이 곧 민주주의의 문제로 받아들여졌..
인문학이라는 말만큼 남용되고 있는 말도 없을 것이다. 인문경영이라는 말이 등장하더니 급기야 인문힐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2012년 11월 세계적인 인문학자를 초청해서 부산에서 치러진 한국-유네스코 세계인문포럼의 주제는 ‘치유의 인문학’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런 기조를 유지할 모양이다.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처음 가진 공식적인 오찬 모임에 박 대통령은 ‘인문정신문화계 인사들’을 초청했다고 한다. 이 모임에서 한 참석자는 괴테의 를 인용하며 “‘영원한 여성이 우리를 고양시킨다’는 마지막 대목이 있는데, 대통령께서 영원한 여성의 이미지를 우리 역사 속에 각인하셔서 우리 역사가 한층 빛나기를 기원한다”고 발언해 논란을 낳고 있다. 인문학의 어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인 휴머니티스(humanities)..
현대차 희망버스가 폭력 논란에 묻혀 본래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지난해 방한해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만나고 돌아갔던 세계적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참가자들을 격려하는 연대의 편지까지 보냈지만, 희망버스에 대한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목적은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현대차 사측에 법원 명령을 조속히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이었지만, 폭력성에 대한 강조에 묻혀 정작 이 내용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잘못은 회사 측에 있는 것인데, 비난은 엉뚱한 이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부당함을 제쳐두고라도, 이번 논란은 다시 한번 시위와 폭력에 대한 한국 사회의 결벽증을 확인시켜준다. 노동조합에 폭력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
라틴어로 국가를 의미하는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는 ‘공공재’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함께 참여해서 만들었다는 취지에서 ‘공익’ 또는 ‘복리’라는 뜻도 가진다. 이 개념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원칙으로 삼고 추구하고 있는 국가와 정치의 목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국가와 정치의 표상이 바로 이 개념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이런 국가의 이념을 정립하기 위한 투쟁의 기록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한 사람에게 집중된 권력을 통제하고 다수의 구성원이 국가라는 ‘공공재’를 나눠 가지는 문제에 대해 정교하게 발전시킨 것이 서구의 정치철학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도 이런 정치철학의 산물이다. ‘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