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부구치소 관련 코로나19 확산에 야당과 야권 대선주자들은 호재를 만난 듯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인권’을 공격무기로 꺼내 들었다. ‘재소자 인권을 강조했던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가 맞나’ ‘선택적 인권 의식’ ‘인권 감각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후진국 수준’ 등.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된 언론기고문도 끄집어내 그 당시 갈수록 악화하는 재소자 인권을 지적했음을 환기했다. 맞는 지적이자 비판이다.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고 최우선시해 온 문재인 정부로서는 수치다. “사람이 먼저”라고 외치면서 재소자들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으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집단감염뿐만이 아니다. 무더위에 열사병으로 죽어 나가고, 지난해 5월 부산구치소에서는 의료진이 없어 제때 진료받지 못한 정신질환 수용자가..

입시에 내몰린 시절이 있었다. 오갈 데 없어 더러 일요일에도 가던 고등학교. 부산 서면 근처 시외버스정류장을 지나칠 때면 공부고 뭐고 다 접고 구포 넘어 그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에 발등이 마구 들썩거렸다. 돌아올 차비가 없는 빈 호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나중에 우리나라 모든 읍(邑)에서 하룻밤을 자리라! 퍽 돌발적인 결심을 했더랬다. 어느새 시시한 어른이 되었지만 까맣게 잊었다가 꽃산행을 다니면서 낯선 고장의 이름들이 새삼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흩어진 산을 섭렵할 때 충청의 배꼽 같은 곳을 찾는 날도 있었다.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뜻의 문경(聞慶). 그 근처의 주흘산 부봉(釜峰)을 오를 땐 부산(釜山) 생각을 많이 했다. 과연 부봉도 가마솥을 엎어놓은 형상이었다. 햇..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 학생운동이 미미하게 남아 있었다. 학생운동은 대학생 중 숫자로도 정치적으로도 소수에 불과했지만, 그나마 힘을 발휘했던 건 치솟는 등록금 문제 덕이었다. 학교마다 ‘등록금 투쟁’ 혹은 ‘학원 자주화 투쟁’이라는 이름을 붙인 형태의 집회들이 있었다. OT를 통해 운동권 선배들과 친하게 된 새내기 중 몇몇은 학교 본관에 가서 연좌투쟁을 했다. 어설픈 민중가요와 춤, 구호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오갔다. 등록금 투쟁을 승리하면 납부했던 등록금의 일부를 학생들에게 돌려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학교 행정조직은 1980년대 이후 학생들을 다루는 노하우를 익혔고, 학생운동은 뉴스거리가 아니었으며, 늘어난 대학의 숫자만큼 대학생이 함께 늘었다. 정치적 주체로서 학생운..

고대로부터 밤나무는 광합성으로 만든 양분들을 그러모아 이 모양대로 열매를 만든다. 그리고 옛날과 같은 포장, 똑같은 방식대로 가지에서 뿌리 쪽으로 밤을 떨어뜨린다, 툭. 공주 근처 정안알밤휴게소에서 구입한 그 알밤 하나를 깨물고 부여로 들어서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 부여에 눈이 와줄까. 지난여름, 부여에 갔었다. 아, 정림사! 뜻밖의 감정들이 툭툭 튀어나와 물구나무를 섰다. 백제는 百濟이니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대강 눙칠 수 있겠으나 부여는 왜 ‘남을 여(餘)’일까. 무슨 넉넉한 마음이길래 고장의 이름을 이리 삼았을까. 그러다가 박물관에서 왕흥사 사리기의 명문(銘文)을 보았다. 丁酉年二月十五日 百濟王昌 爲亡王子立刹本 舍利二枚葬時 神化爲三(정유년 2월15일 백제왕 창이 죽은..
2008년 처음으로 교도소에 들어가 보았다. 교도관 뒤를 졸졸 따라가는데, 얼마나 긴장했던지, 예닐곱 개의 철문을 지나치는데 가슴이 예닐곱 번 철렁댔다. 볕이 드는 1층 복도를 따라 걷는데도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수인이 아니라 강사였는데도 그랬다. 나는 인권연대가 주관한 재소자 인문학 프로그램(평화인문학)의 강사였다. 이 프로그램을 따라 안양, 수원, 여주, 영등포, 남부 등 여러 구치소와 교도소를 다녔다. 강의를 거듭할수록 처음의 긴장과 두려움은 사라졌다. 하지만 철문들이 닫히는 소리에는 어떻게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전자장비가 부착되어 예전보다 조용하고 부드럽게 닫히는데도 그랬다. 그것은 사람을 가두는 문들이 닫히는 소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주관 단체가 10여년간 분투했음에도 프로그램 ..

머리맡에 두는 책은 그냥 놓아두기만 하기가 십상이다. 마음은 빤하고 표지만 닳았다. 늘 머리를 들고 다니면서도 그 머리를 잘 쓰지 못하는 건 다음과 비슷한 경우라 하겠다. 절기에 유념해서 몸의 윤곽에 꽉 맞추고자 하였다.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24절기를 쓰고 외웠다. 망종까지는 그런대로 껴안았는데 그 이후론 제대로 챙긴 적이 없다. 삼계탕을 먹어주어야 한다는 말복(은 24절기에 속하지 않는다) 때 힐끗 보고 또 까맣게 까먹었다. 경자에 이은 신축의 간지를 짚어보다가 겨우 생각이 났다. 저무는 해의 끝자락에서 달력을 바꾸며 확인하니 소한이 지척이다. 나는 날(日)의 생리를 모르고 살았구나. 가까이에 두었지만 이처럼 놓치는 건 머리의 안팎을 구별하지 않는다. 왜 이리 각성은 멀고 망각은 가까운가. 몇 해..
좋은 글은 ‘취향’이나 ‘입장’보다는 ‘인식’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언제나 믿고 있지만, 올해의 마지막 글이니까, 취향을 드러내는 일이 한 번 정도는 용서되었으면 싶다. 아마도 주관적일 ‘올해의 책’ 목록을 적어보려고 한다. 이미 언론을 통해 선정된 책들은 넣지 않았다. 나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책도 뺐다. 외서(外書)로 한정한 것은 지면이 넉넉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번역자와 출판사의 이름을 또박또박 눌러 적었다. 다 따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책을 많이 만드는 번역자와 출판사들이다. 언제나 수고와 가치에 비해 보상은 적은 일을 수행하는 이 이름들을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 이 글은 나대로 연말 결산을 하고 출판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지만, 광고로 읽힌다 해도 거리낄 것이 없다고 느..

어머니 모시고 시골 가는 날. 나의 외가, 그러니깐 어머니는 친정 가는 길이니 며칠 전부터 들뜬 기분을 숨기지 않으신다. 멀리 검단산, 남한산을 거쳐 마침내 병풍처럼 늘어선 덕유산. 내가 저 산에서 산나물도 억수로 뜯었다 아이가, 어머니의 추억도 귀에 담으며 고속도로를 버리고 무주구천동 지나 백두대간의 한 고개에 이르면 드디어 고향에 들어섰다는 안온한 실감에 젖어든다. 이름에서부터 호쾌한 기상이 흠뻑 묻어나는 ‘빼재’에 서면 공기도, 마음의 자세도 퍽 달라진다. 밭에는 사과나무, 길가엔 벚나무가 반짝거리는 시골길을 가다가 바로 이 골짜기와 그 이웃 골짜기가 배출한 두 젊은 시인의 시집을 다시 확인한다. 거창에 가서 거창에 그 젖줄이 닿는 시를 읽는 건 달나라에 가서 이태백의 시를 읊는 것과 같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