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이명박 정부는 자고 나면 오르는 물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물가상승률은 상반기에만 정부 저지선인 4%를 훌쩍 뛰어넘더니 3분기에는 4.8%까지 치솟았다. 민심은 들끓었고 장관들은 동분서주했다. 난데없이 물가감시기구를 자처한 공정거래위원회가 ‘가격불안품목 감시·대응 대책반’이라는 거창한 조직을 신설, 라면 제조사들과 “왜 비싼 라면을 출시했느냐”며 드잡이를 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비 안정화 점검단’이라는 걸 꾸려서 원비를 올린 유치원의 리스트를 뽑아 교육청에 통보, 원비 안정화를 ‘당부’했다. 대형외식업체에는 가격 인상 자제를 ‘협조요청’하고, 편승인상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골목식당들의 밥값 인상 억제를 ‘계도’하는 등 갖가지 구식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현장에 투입됐다. 말이 당부와 ..
문재인 정부의 대표 경제정책이라 알려진 소득주도성장이 사면초가에 처했다. 언론은 연일 이전보다 더 나빠진 고용과 분배지표를 거론하며 맹폭에 나서고 있다. 야당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포기하고 경제정책 담당자를 교체하라며 으름장을 놓는 와중에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최저치를 경신했다. 지표만 놓고 보면 할 말이 별로 없게 된 것도 사실인데, 대통령은 “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단호한 입장을 재확인하는가 하면, 장하성 정책실장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더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청와대의 이런 입장에 대해 ‘국민과의 전면전 선포’라고까지 비판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더 세밀한 검토와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특히 외국에서는 ‘임금주도성장’이라..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주 중 장관 4~5명을 교체하는 중폭의 개각을 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 개각은 지금도 늦었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 없이 출범하면서 조각이 서둘러 이뤄졌음에도 1년이 넘도록 개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을 쉽게 교체하지 않는 문 대통령의 스타일 때문이다. 그동안 능력과 자질이 의심되는 장관들의 실명이 거론된 지도 오래다. 국방부 장관은 기무사 계엄령 문건 방치를 비롯해 구설에 휘말렸던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민망하다. 교육부 장관은 대입제도 개편안 등 오락가락 정책을 놓고 무책임하고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쓰레기 대란, 미투 운동, 노동개혁을 놓고 제대로 역할을 못한 환경부·여성가족부·고용노동부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의 주요한 역할인 갈등 조율은 기능을 상실했다고 해도 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시민참여형 개혁기구는 경찰청이 만든 경찰개혁위원회였다. 새 정부 출범부터 경찰개혁위원회 출범까지 달포밖에 걸리지 않았다. 구성도 남달랐다. 위원들은 모두 외부 인사였다. 경찰관이나 전직 경찰관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고위직 경찰관들은 갑자기 낯빛을 바꿔 개혁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처구니없고 속은 쓰렸지만, 그것도 촛불의 성과라 여기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개혁성과였다. 경찰개혁위원회는 모두 30건의 개혁안을 발표했는데, 다행히 어지간한 개혁안은 두루 담아냈다. 2005년 남영동 보안분실(예전의 대공분실) 폐쇄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던 전국 각지의 보안분실들이 모두 폐쇄된다. 서울만 해도 홍제동, 옥인동, 신정동, 장안동, 신촌 등지에 보안분실이 있다. ..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만 1년이 지났다. 문재인 정부 1년에 대해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서는 극과 극을 오가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지만 문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은 83%로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1주년 지지율 중 가장 높다. 어쩌면 일반국민은 남북정상회담 성공으로 안보불안이 현저히 줄어든 가운데 문 대통령이나 문 정부가 지금껏 보여온 국정 개혁의지의 진정성을 신뢰하면서 당장의 정책 효과에 연연하기보다 아직은 지지를 보내야 할 때라고 판단하기 때문 아닐까? 그간 누적되어온 문제를 해결하는 데 1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에너지정책의 주요 기조는 탈원전·탈석탄이라 불리는 원전과 석탄의 단계적 감축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즉 ..
문재인 정부가 첫 위기(?)를 맞고 있다. 지지층이든, 아니든 국정 지지율 ‘60%’ 어름에 시끌벅적하다. 지지층이 염려를 담은 분석이라면, 반대층은 ‘거 봐라’는 투로 예언의 실현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여전히 국민 3명 중 2명이 지지한다. 70% 안팎을 비행하던 그간 지지율이 지나치게 높았을 뿐 지금도 낮은 게 아니다. 이처럼 ‘고공 지지율’은 문재인 정부를 특징짓는 열쇳말의 하나고, 그 때문에 작은 흔들림조차 파문을 그려내는 ‘지지율의 함정’과도 같은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그간 ‘지지율 정치’의 달콤함에 길들여져 있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국민이 외교안보 디딤돌이자 이정표입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힌 ‘국민론’이다. 여론을 기준 삼기 가장 어려..
처음부터 한국 정부가 혼자 감당할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한국 정부가 해결하겠다고 나설 일이 아니었다.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 제도의 희생양이 된 여성은 26개국 출신 40만명 이상이다. 중국인 20만명을 포함해 독일·영국·미국 간호사 등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 결과다. 따라서 일대일 양자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할머니들이 우리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과 국교를 단절하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고, 국제사회에서 한·일 간에 합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한 것도 아니다. 이런 국제적인 인권문제를 졸속 합의로 땡처리한 당사자가 1965년 한일협정을 강행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어쩌면 그런 박근혜 전 대통령이어서 별다른 ..
유난히 눈이 많은 올해다. 밤새 소복이 쌓인 눈처럼 12월의 밤들도 소리 없이 내려앉으며 한 해의 끝에 닿고 있다. 지난 한 해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들 마음속 시간들을 포근히 감싸는 하얀 위로들이다. 지난 26일자 경향신문의 1면 첫 화두는 ‘77만원세대’였다. 통계청의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지난해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 한 달 소득이 78만원이었다는 것이다. 2007년 여름 우석훈·박권일이 저서 를 통해 비정규직으로 상징되는 청년의 불안한 삶을 공론화한 지 꼭 10년 만이다. ‘88만원세대’가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면, ‘77만원세대’는 스스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고 한다. ‘생’ 자체를 부정하는 허깨비 같은 삶들의 절망이 가슴에 박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