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차는 높은 건물이 비죽비죽 솟아있는 혁신도시를 빠져나가 휑하게 비어있는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벼를 베어낸 자리에 가지런히 남아있는 밑동에는 새파랗게 그루풀이 솟아나 있었다. 한겨울에도 땅 밑은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날마다 그 길을 달려 출퇴근한다는 이는 이곳에 좀비들만 산다고 말했다. 굳이 되묻지 않았는데도 그는 자꾸 대명천지에 좀비를 끄집어냈다. 창밖으로는 오래된 간판이 무심하게 걸려 있는 가게들이 보였다. 평일 대낮인데도 가게는 대개 문을 열지 않았고, 가게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 동네들은 밤에나 어슬렁대는 그림자가 보이죠. 정말 좀비들이 사는 거죠.” 그가 말하는 좀비는 분명 밤마다 텅 비어있는 거리를 휘적휘적 돌아다니며..
별스러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학교 기숙사에서 지낸다는 그는 급식실에 비빔 코너가 생긴 첫날, 밥을 간장에 비벼 먹어보고, 고추장에도 비벼 먹어보고, 주먹밥도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를 사뭇 진지하게 했다. 생활하면서 겪은 우스운 이야기 공모에 응모한 글 중 하나였다. 비빔밥을 먹는 데 몰두한 그는 자신이 흔히 말하는 ‘급식충’이 된 것은 아닌가 자문하면서 글을 맺었다. 아마도 우스운 생활 글을 쓰려고 보니 밥을 비비는 데 심혈을 기울인 자신의 모습이 퍼뜩 떠올랐나 보다. 또 다른 응모 글 중 하나는 모의고사 볼 때 답안지를 작성하고 깜박 졸았는데, 가위에 눌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혹여 답을 작성하지 않은 건 아닌지 두려웠다는 얘기였다. 글을 쓴 이는 시험 시간에 가위에 눌릴 정도로 잠에 취한 ..
어떤 곳은 소리로 기억된다. 미얀마라고 하면 양철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이면 빗방울 소리를 듣는 게 참 좋았다는 미얀마 친구 때문이다. 그러면서 미얀마가 마치 옆 동네처럼 친근하게 느껴졌고, 미얀마 사람을 만나면 괜히 반가워 알은체를 하고 싶었다. 거기 비가 자주 내린다지요? 비가 내리면 풀잎에 젤리 같은 빗방울이 맺힌다지요? 내 친구 아세요? 그는 내 친구의 이름을 듣자 잘 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20년을 넘게 살다가 미얀마로 돌아간 동화 작가였다. 그를 만난 곳은 그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출판기념회였다. “어느 날 내 마음이 내게 말했어요.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어.” 스무 살의 청년이었던 그는 마흔이 넘어 고향으로 돌아..
용산참사가 벌어진 그 참혹한 겨울을 보낸 뒤에야 높은 곳에 올라선 사람들이 보였다. 세상과 싸워야 하는 사람들은 자꾸 위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스스로 지은 망루에, 철탑에, 타워크레인에, 굴뚝에, 옥외광고판에, 세상은 위태롭게 쌓아 올린 바벨탑이었다. 단단히 딛고 서 있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내쫓긴 이들은 허공에 올라 언제 끊어질지 알 수 없는 난간에 제 몸을 묶고 소리쳤다. 여기 사람이 있다! 서울시청 앞 18m 철탑에 올라 9시간이나 고공농성을 한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도 똑같았다. “쫓겨난 지 1000일,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그들이 농성을 하는 공장 빈터에는 빛바랜 천막이 늘어서 있었다. 세상과 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막사는 허술했지만, 제 몸으로 부딪쳐 싸워온 이들의..
도청이 있는 도시에 아파트를 얻었다는 부모님 말씀에 우리 형제들은 텔레비전에서 본 아파트가 복닥복닥 서 있는 강남의 어딘가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삿짐 트럭은 식당과 술집이 늘어서 있는 복잡한 골목을 요령 있게 빠져나가 이층짜리 집이 서로 등을 붙이고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좁은 골목을 비틀비틀 올라가 비탈진 자드락에 덜렁 서 있는 4층짜리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한 동밖에 없는 아파트의 오른쪽 외벽에는 칠성아파트라고 씌어 있었다. “여기 사이다 회사가 지은 거네.” 실없는 동생은 위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사이다를 꽤 팔았을 텐데 아파트를 고작 이렇게 지었을까 싶었지만, 시골 친구들한테 새 주소를 불러주면서 사이다 회사의 그 칠성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아파트를 지은 사람 이름이 김칠성이란 걸 알게..
태백에서 철암으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기차 건널목을 건너 이어진 길에는 간간이 짐을 실은 큰 트럭만 경적을 울리면서 내달렸다. 철암으로 들어가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곳은 오래전에 시간이 멈춰 있었다. 한때 그러니까 탄광촌 개들은 입에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석탄 산업이 번성했던 시절에 철암은 태백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지만, 그 명성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철암역 맞은편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 시장은 높은 건물이 제법 늘어서 있었는데, 철암천에 세운 기둥에 지탱하고 있는 건물들은 하나같이 허술했다. 그곳이 밤마다 대낮처럼 환히 불을 밝힌 번화가였으며, 식당이고 술집이고 발 디딜 틈이 없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텅 비어있는 시장과 달리 철암역..
흑백텔레비전마저도 동네에 한두 대밖에 없던 시절, 삼류 유랑극단은 공터에 천막을 치고 약을 팔기 전에 검은 망토를 두른 이수일과 입술을 빨갛게 칠한 심순애가 등장하는 어설픈 신파극을 보여줬다. 그것도 재미있다고 밤마다 동네 사람들은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부리나케 공터로 몰려나왔다. 초등학교 때 살던 소도시에서는 여름이면 시장에서 가까운 곳에 서커스단이 들어왔는데, 그곳을 지날 때면 말똥 냄새가 났다. 그 서커스단 구경 값이 꽤 되어서 말을 타고 뭘 하는지 끝내 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내 기억 속 서커스는 명절 때마다 방송에서 보여준 외국 서커스단의 묘기였다. 공중그네를 타고 날아다니거나, 장대 꼭대기에서 끈에 매달려 빙글빙글 돌거나, 채찍으로 호랑이를 고양이 다루듯 하는 것을 어찌나 많이 봤는지 지금도..
이맘때면 인쇄기가 밤낮없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마주 오는 사람이 어깨를 옆으로 꺾어야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을지로와 충무로의 겨울은 분주했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달력 70%를 찍어낸다는 그곳은 가을부터 대목이었다. 밤새 뜬 눈으로 인쇄기를 돌린 인쇄공들이 푸석한 얼굴로 새벽길을 나서면 리어카를 끈 노인들이 골목을 휘저으면서 검은 필름을 수거해 갔다. 필름 속에 새겨져 있던 글씨를 지우고 닦아내서 은을 추출한다고 했다. 필름은 은이 되고, 종이는 돈이 되던 그곳의 전성기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인쇄소 한구석에서 납으로 된 활자를 뽑던 문선공들이 사라지고 사식기로 활자를 한 자 한 자 찍어낼 때만 해도 인쇄 밥을 먹던 사람들은 지구에 종말이 오지 않는 한 인쇄기는 돌아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