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살에 내 아이는 제 발로 학교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 가을 나는 아이와 함께 한낮 텅 빈 공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빈둥거렸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을 쫓기듯 달리면서 잔뜩 날이 서 있던 아이는 비로소 어릴 적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는 학교에 빼앗겼던 아이를 되찾은 것 같아 내내 행복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아이는 그때의 자유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했다. 오랫동안 정해진 시간에 묶여있던 아이는 자신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시간을 헤쳐 나가는 것도, 사람들의 편견도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는 난생처음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세상과, 세상 사람들과 맨몸으로 부딪치면서 깨달았다고 했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청소년 삶과 청소년 문학’을 주제로 한 토론..
아버지가 대장장이였으니 별수 없이 그 일을 이어받아 모루를 짊어지고 해안가 마을 장터를 떠돌았다는, 남쪽 어촌 마지막 대장장이의 얘기를 적은 책을 보면서 엉뚱하게 총을 숨겨놓은 관을 끌고 사막을 떠돌아다니는 서부영화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쇳덩어리를 끌고 장이 서는 곳을 찾아다니는 한 사내의 모습은 비운의 총잡이처럼 비장할 것만 같았다. 그가 장터 한구석에 화로를 지핀 뒤 잘 달궈진 쇠를 모루에 올려놓고 내리칠 적마다 울려 퍼져나갔을 쇳소리, 그 소리는 아득하게 멀어서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어릴 적에 철가면 아저씨가 온종일 용접 기계를 들고 불꽃을 튀겨가면서 잇고, 잘라대는 철공소 앞에서 살았던 나로서는 대장장이도 화덕도 드라마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려니 했다. 그런데 지금도 곳곳에 대장간이 남아..
내가 어릴 적에 동해안에 가려는 사람들은 대개 청량리에서 강릉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한여름에는 밤 11시에 출발하는 강릉행 막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청량리역이 북새통이었다. 이들을 태운 기차는 밤새 여러 도시를 가로지르고, 남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강을 따라 달리다가 꾸역꾸역 높은 산을 넘었다. 통로까지 빈틈없이 자리를 메운 사람들은 부대끼며 너부러지고, 주저앉아서 밤새 노래를 부르며 떠들어댔다. 그들이 제 흥에 지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서로 기대어 잠에 곯아떨어졌을 무렵 기차는 산자락을 휘감아 돌며 바다로 달렸다. 선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사람들이 차창 밖으로 희끄무레하게 동이 트는 걸 지켜보다가 잿빛 하늘과 같은 빛의 바다가 보여서 탄성을 지르면 기차 안은 다시 술렁거렸다. 그렇게 기차 안에서 함께 아침..
우리가 소년이었을 때, 세상은 우리 편이었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것을 몰라도 해는 뜨고 지고 우리는 무럭무럭 자랐으니까.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이 있고 명왕성이 있다는 걸 몰라도 괜찮았다. 하지만 태양계에 속한 행성들의 질량과 부피를 익히고 별들을 구성한 화학원소들이 무엇인지 외우면서 깨닫게 된다. 별에도 이름이 있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하니 뭐라도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면서 짐작한다. 세상은 우리 편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번듯한 회사도 다녀봤고, 이것저것 사업도 해봤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는 그는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운전하는 걸 워낙에 좋아해서 선뜻 이 일을 시작했지요. 음악도 듣고, 별도 보고. 그런데 이..
익숙한 풍경이었다. 기차역에서 바라본 김천시는 언젠가 한 번은 들렀을 법한 작은 도시의 모습이었다. 가게가 밀집한 번화가라고 해도 높은 건물이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하나둘 지붕을 잇대어 들어섰을 가게가 즐비한 좁은 도로를 빠져나오면, 눈앞에 거짓말처럼 초록빛의 세상이 펼쳐졌다. 뜨거운 볕에 벼는 부쩍부쩍 자라고 무성한 나뭇잎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작은 중학교가 서 있었다. “우리 학교 전교생이 17명이에요. 그래서 행사를 할 때면 옆에 있는 초등학생들도 불러오곤 해요. 5~6학년들을 오라고 했는데 괜찮을까요?” 교무실에서 만난 선생님 말에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생과 초등학생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 선뜻 그려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서로 어색해하지 않을까? 초등학생..
- 7월 1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12년 전에 똑같이 생긴 아파트만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곳으로 이사 왔을 때, 먼저 터를 잡고 살던 이들은 살기 좋은 곳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했다. 호수공원도 있고, 학원도 가깝다면서 애들 키우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호수공원은 밥 먹고 산책이나 갈까 하고 나서기에는 너무 멀었고, 동네 엄마들은 가까운 학원은 안 좋다면서 대형 버스가 학원생들을 실어 나르는 멀리 떨어진 학원으로 아이들을 보냈다. 아이 키우기 좋은 곳의 장점을 활용할 수는 없었으나, 아이는 그런대로 잘 적응했다. 하지만 나는 아파트만 삭막하게 서 있는 동네가 서먹했다. 사람들은 소리 없이 건물을 드나들었고, 아파트 단지에는 아파트만 버티고 있는 듯 조용했다. 우리 아파트에서 조..
어릴 적 내가 자란 마을에는 커다란 방앗간이 있었다. 방앗간 부부는 마을에서 가장 일찍 깨어나서 하얀 국수를 뽑아 뒷마당에 내걸었다. 바람이 불면 국수가닥이 흰 무명천처럼 너붓대는 그 뒷마당을 지나칠 때면 간간하고 구수한 냄새가 몰큰몰큰 났다. 명절이면 방앗간 앞은 불려놓은 쌀을 소쿠리에 받쳐 머리에 이고 나온 아주머니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추석 때는 흰 쌀이 곱게 빻아져 쌀가루가 되었고, 설날에는 가래떡이 되었다. 가래떡을 뽑으려면 꽤 오래 걸렸다. 설이 다가오면 방앗간은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었다. 방앗간 부부 둘이서는 밀려드는 쌀을 감당하지 못해 학교에 다니는 자식들이 죄다 불려 나왔다. 그러고도 일손이 모자라 먼 친척의 아들까지 데려왔다고 했다. 마을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우리 할머니의 ..
그의 고향이 속초라고 했다. 강연이 있어 속초로 가는 길에 퍼뜩 반도체 회사에 다니다가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그가 생각났다. 10년 전 봄날, 택시 운전사인 그의 아버지는 병세가 나빠진 딸을 택시에 태우고 서울 병원으로 달렸다고 했다. 한참을 달리다가 아버지는 차를 멈췄다. 가쁜 숨을 내쉬던 스물세 살의 딸은 택시 뒷좌석에 누운 채 눈을 감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무엇을 보았을까? 그의 꿈은 마음껏 여행을 다니는 거였다. 고등학교 3학년 봄에 일찌감치 취업이 되어서 졸업여행도 못 간 그는 결국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했다. 세상은 아이들에게 말해 왔다. 아파도 참고 꿈꿔라. 꿈을 이룰 수 있는가 물으면 답은 간단하다. 노력하라. 노력해도 안 되면 더 노력하라. 그리 말한 세상은 노력한 아이들을 함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