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젊음으로 넘실거린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산과 계곡과 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젊은이들이 유독 눈에 띈다. 건강한 신체, 지치지 않는 에너지, 넘치는 기상. 뭣이 그리도 즐거운지 자기들끼리 뒹굴고 노느라 정신이 없다. 특히 부모님 슬하를 벗어나 어엿한 성인으로서 친구끼리 여행 온 20대 대학생들의 자유로움은 청춘을 몸으로 보여준다.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나도 한때는 저랬지. 좋을 때다. 이렇게 사람 구경하며 과거를 반추해보는 것도 피서의 한 가지 맛. 어느덧 상념은 추억 속을 거닐고 있다. 가만 있자. 맞아 그랬지. 히히히. 하지만 그 시절이라 해도 모두 좋은 기억만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힘들었던 때도 많다. 학기말 시험공부, 취직과 결혼 걱정, 산더미 같던 리포트…...
여름이다. 바야흐로 휴가의 계절이 도래하고 우리는 떠남을 상상한다. 고운 모래 위로 부서지는 에메랄드빛 파도, 솟아오르는 열기에 나부끼는 넓은 야자수 이파리. 아, 인생 뭐 있나. 그저 이렇게 즐기면 될 것을. 그래서 여행사들의 여름 상품은 바다의 낭만을 담은 사진과 그림으로 가득하게 꾸며진다. 말이 필요없는 것이 바로 이미지의 힘. 알록달록한 색의 비치파라솔, 시원한 열대과일 칵테일, 멋진 선글라스와 이글거리는 태양. 그래 떠나자. 열심히 일한 나. 단숨에 흥과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거기에 진실이 담겨 있을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특히 공간에 관한 이미지일수록, 어딘가에 저 그림과 비견되는 해수욕장이 진짜로 존재하고, 내가 잘만 찾으면 바로 저런 곳에서 올여름을 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나를..
콜록콜록. 아차차. 해버리고 말았다. 후다닥. 황급히 몸을 피하는 이들의 몸동작엔 불쾌함이 배어 있다. 하얀 마스크 위로 굴리는 눈에는 원망이 이글거린다. 하필 왜 내 옆이람. 요즘 같은 메르스 시대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감히 기침을 터뜨리다니. 싸늘한 시선을 감당할 수 없어 눈을 깊이 내리깐다. 십 년 넘게 앓은, 낙타와 무관한 호흡기 지병이 있더라도 지금은 기침 불허(不許)의 세상이다. 잘못하다간 멋대로 나다니는 격리대상자와 같은 몰지각한 인사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이런 판국에 기침이라니.제 죄를 제가 알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억울하다. 나를 잠재적 보균자로 오해하는 시선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모두들 불안할 법도 한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말 못할 나의 억울함은 이 문제의 바이러스와 전혀 상관없는..
평화롭던 공간에 느닷없는 괴성이 울려퍼진다. 곧이어 고요함을 날카롭게 가르는 소리가 또다시 들려온다. 실체가 애매했던 소음은 이제 분명한 언어로 구성된 고함소리라는 것이 확인된다. 누군가가 공공장소에서 고성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몇 초만 들어보면 감이 온다. 소위 말하는 ‘진상 손님’이 또 출현했다는 사실을. 어디를 가도 이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식당, 카페, 마트, 버스, 지하철, 주차장, 심지어는 비행기까지, 서비스업이 존재하는 한 어디든 ‘진상’은 활개를 친다. 그들의 무례함과 뻔뻔함 때문에 서비스업계 종사자는 물론 일반 소비자마저 감정노동에 시달릴 판이다. 마치 천하의 중죄를 저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종업원을 닦아세우는 손님 때문에 불편했던 경험이 없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뚜렷한 대책..
도심의 빌딩숲에 폭 파묻혀 자동화된 세계 속에 사는 사람이라도 자연을 접하지 않고 지내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아니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고 또 만난다. 누구든 일상생활에서 동식물을 가장 자주 접하는 곳, 다름 아닌 바로 밥상이다. 산에서 뜯은 나물, 흙에서 자란 야채, 그리고 바다에서 건진 생선. 서식지로부터 그릇 위까지 긴 여행을 마친 여러 종의 생물이 하루에 세 번, 또는 그 이상, 우리와 마주한다. 웬만한 한국인의 식탁은 단일 먹거리가 아닌 최소한의 생물다양성이 나타나는 식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원재료가 연상이 잘 안되는 음식도 많다. 가공이 많이 된 식품일수록 원래의 모습과 멀어져서 실제 동식물과 만나는 듯한 느낌은 적어진다. 요즘 각광받는 홀 푸드(whole food)나 매크로바이오틱(..
어이쿠 저기도 망했네! 여긴 또 언제 바뀌었나? 길거리를 걷다 다반사로 터져 나오는 말이다.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추억의 장소가 되어주는 공간이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어찌나 쉽게 망하고 생겨나고 또 망하는지, 요즘에는 어느 가게에 정 붙이기도 전에 간판이 내려져 있기 십상이다. 반면에 눈에 띄게 점점 많아지고 있는 곳도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카페이다. 우리나라에 커피를 좋아하는 인구가 저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우후죽순 생겨나는 카페는, 주력 상품의 사회적 선호도와 무관한 또 한 가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카페가 누군가와 만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곳이라면, 카페의 증가로 사람들 간의 대화도 증가했을까? 저 수많은 마주 보는 의자들은 그곳에 앉은 이들로 하여금 더 원활한..
새해가 밝았다. 아니 벌써 한 달이나 지나가버렸다. 이번에는 좀 다르게 살아보리라, 각오를 제대로 다지기도 전에 달력은 성급하게시리 한 장을 넘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의 무심한 진행에 그냥 이대로 질 수는 없다. 이미 바쁜 일상이 올해에도 내 삶의 정권을 잡으려는 태세이지만, 나는 고집스럽게 시간을 내어 신년의 포부와 소망을 정리해본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고, 인간의 이야기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자연과 동식물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 이것이 야생학교의 목적이자 설립 취지다. 아직은 어엿한 건물을 갖춘 그런 물리적인 형태의 진짜 학교는 아니지만, 배움과 사색과 창조가 일어나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학교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시험이나 입시 따위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고, ..
한 해의 끝자락이 보인다. 움츠린 어깨, 빙빙 두른 목도리, 모락모락 입김. 시린 바람 속을 걷는 이들은 자신들이 향한 따뜻한 목적지를 생각하며 발길을 재촉한다. 세상만사의 다사다난함이 일단락되는 이 정기적 시점에 돌입하면 도시는 들뜨기 시작한다. 연말은 정정당당한 쉼과 축제를 의미하지 않던가. 다정한 이들과 모이기, 음식 마음껏 먹기, 흥겨움에 탐닉하기 등의 행위가 거의 의무화되는 이 시간이 있기에 일 년 동안의 고생과 인내를 뒤돌아보고 또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젠 쉬어라. 얼마나 보람차게 지난 12개월을 보냈는지는 천차만별이더라도 추위가 절정에 달하는 와중에 해가 바뀌는 이때를 맞이하는 이들은 모두 평등한 생존자들이 된다. 큰 탈 없이 여기까지 온 것이 어디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