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실패한 친구가 내 앞에서 고개를 떨군다. 단숨에 비운 술잔을 힘없이 내려놓더니 이내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쉰다. 휴우. 인생의 깊고 어두운 골짜기에 빠져버린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과연 뭐가 있을까. 그저 곁에 있어주면서 슬픔과 비통함을 온전히 나누어 경험하는 수밖에. 그래도 기나긴 그간의 사연과 뒷이야기를 다 듣고, 함께 아쉬워하고 분노한 끝에, 덧붙이는 고전적인 말이 하나 있다. “세상에 여자(또는 남자)가 어디 그 사람뿐이냐!” 오늘 밤의 하소연과 넋두리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잠언은 대체적으로 수긍을 받는다. 다 아는 얘기지만, 그리고 절대로 이 실연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친구는 천천히 고개를 끄떡인다. 적어도 오늘 밤은 이렇게 넘어갈 수 있으리라. 같은 의미의 영어 관용문은 다음..
1795년 윤 2월9일 아침, 정조대왕은 역사적인 수원화성 행차에 나섰다.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베풀고, 동갑이었던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현륭원에 성묘를 가기 위한 것이었다. 보통이면 이동하는 데 하루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지만, 노모의 건강을 염려한 왕은 여행을 이틀에 걸친 일정으로 잡았다. 악대의 연주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무려 6000명의 신하로 구성된 이 성대한 행렬은 완행으로 화성행궁을 향했다. 옷깃이 스치고 흙을 지르밟는 집합적 소리가 지그시 봄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햇살은 부드러웠다. 물론 이 마지막 두 문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현장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분위기까지 알겠는가. 하지만 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정조대왕 능행도(正祖大王 陵行圖)를 보면 어렴풋이나마 그날의 정취..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나. 우리는 그렇게 투덜거리곤 한다. 쥐꼬리만큼 벌기라도 하면 어디선가 나타나 세금이나 때리기에 바쁘지. 그러다가 무슨 일로 외국에 나가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지곤 한다. 입국 순간부터 며칠 동안 머물 예정인지, 숙소는 어딘지 시시콜콜하게 다 밝혀야 하다니! 그냥 좀 계획 없이 놀다 가면 안되나? 자기 나라에 들어가 돈 쓰겠다는데도 출입 자체에 대해 빡빡하게 구는 그 태도가 못마땅하다. 지구인으로서 이 행성의 구석구석을 마음대로 밟을 수조차 없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불쾌한 구석이 있다. 잠시 다녀가는 여행객과는 달리 상당 기간 체류해야 하는 유학생이나 해외 거주자는 이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안다. 어느 나라 땅에 그저 있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과 시간과 비용은 속된 말로 장난이 ..
삶과 생존은 다르다. 그래서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있다. 숨은 붙어 있지만 살고 있는 것 같지가 않을 때 나오는 말이다. 여기에는 삶을 원하지만 생존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원통하다는 마음도 담겨 있다.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것으로 인생이 충분하다면 왜 이런 호소가 나오겠는가. 사람은 빵 또는 밥만으로 살 수 없기에 뭔가 질적으로 나은 생활을 하게 될 때 비로소 사는 데 급급하지 않은, 진짜 사람답게 산다고 우리는 말한다. 요즘처럼 경쟁 시대에 이게 웬 호사스러운 말인가 싶은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라. 정말로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지 않는지. 중요한 날엔 좀 근사한 데에서 식사하며 기념하고, 자주는 못 읽어도 어쩌다 기분이 동할 땐 미루던 책을 집어 몇 줄이라도 읽어본다. 내 직장과 커리어와 무관한 것..
가게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들려오는 힘찬 외침. “어서 오세요!” 그런데 사실은 그다지 힘차지도 않으며, 제대로 나를 향한 말도 아니다. 보통 손님을 보지도 않은 채 건네는 인사라, 받는 이도 화답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가게 내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도 빈약하기는 매한가지. 꼭 필요한 질문과 대답, 포장 및 결제에 관한 사항 외에는 할 말도 없다. 오히려 상업적 관계를 살짝이라도 벗어나는 대화를 시도했다간 수습이 불가한 어색함이 찾아올 수가 있다. 특히 남자 손님이 괜히 여자 직원에게 시도하는 몇 마디는 치근거림으로 오인되기 일쑤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수반되는 미묘함과 복잡성이 버겁게 느껴질 때, 차라리 인터넷과 같은 가상공간이 제공하는 익명적 깔끔함이 편안하고 쾌적하다. 생활 속에서 온라인..
여행은 즐겁지만 또한 피곤하다. 나의 편안한 보금자리로부터 벗어나 어떤 낯섦과 마주하는 일은 의외로 힘이 드는 경험이다. 구경하려고 많이 걷다 보면 물론 더욱 그렇지만, 몸이 최대한 편안하도록 앉아서 돌아다녀도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녹초가 돼버린다. 매 끼니를 잘 먹고 평소보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도 마찬가지이다. 최고의 럭셔리 호텔에서 아무리 휴식에 탐닉한다 해도, 나만의 소박한 공간에서 쉬는 것만큼 에너지가 재충전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우리의 근접 환경과 엄청나게 다양한 관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들이마시는 물과 공기의 미세한 화학적 조성과 향기, 내가 걷는 길의 교통신호 체계와 공간구성, 내가 쓰는 언어의 문법과 어휘와 뉘앙스.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이..
약 1년 전의 일이다. 아침 출근길에 나선 나의 아버지는 올림픽대교를 달리고 있었다. 동작대교로 넘어가는 곡선구간에 이르자 길 한가운데에 아주 작은 보행자들이 눈에 띄었다. 엄마 오리와 뒤따르는 4~5마리의 새끼들. 아마도 한강에 있다가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인지 종종걸음으로 이 위험천만한 도로를 건너고 있었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속도를 급히 줄이고 차를 최대한 비켜서 몰았기에 최악의 사고는 면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 아슬아슬한 모면도 겨우 시작일 뿐, 그 방향 그대로 계속 갔다간 그야말로 산 너머 산이었다. 과연 오리 가족이 저 무시무시한 왕복 8차선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운 좋게 살아서 그 고비를 넘겼던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넘어도, 넘어도 끝이 없는 거미줄 같은 도로망이 그들을 기다리고 ..
이미 비좁을 대로 비좁아진 도시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주 약간의 프라이버시라도 얻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지하철 의자의 가장 끝자리는 적어도 한쪽은 누군가와 부대끼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모든 승객들의 제1지망 좌석이다. 버스에 입장하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빈자리부터 골라 앉고, 일단 한 명씩 채워진 다음에 두 번째 착석 라운드가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원자 오비탈에 전자가 채워지는 방식을 설명한 훈트의 규칙과 닮아 학창 시절 화학시간에 자주 거론되는 예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거의 차이가 없는 옵션을 두고 벌이는 다소 우스운 경쟁이다. 하지만 인구과밀의 콩나물시루 속에 매일 산다고 해서 생명으로써 자존감과 존엄성 자체가 사라지진 않는다. 오히려 무수히 많은 타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