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라는 에세이에서 무역이 국제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이라고 제시한다. 인간의 합리성에 회의적이었던 흄은 경험적 지식의 축적을 신뢰했는데,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질투심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훌륭한 제도로 무역을 이해했다.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래 당사자들이 서로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공정하게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시장의 정의였다. 정의야말로 개인의 경쟁을 파국에 다다르게 하지 않는 안전장치였다. 흄의 입장에서 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도덕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보다 무역을 하는 것이 상호에게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을 때, 개인은 서로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스는 신의 제왕인 제우스와 알크메네라는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신의 존재로 그려진다.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의 저주를 받아서 헤라클레스는 취중에 자신의 자식들을 죽이고, 12개의 과업을 완수해야 비로소 죄를 씻을 수 있게 되었다. 이 12개의 과업은 대체로 괴물과 야수를 퇴치하고 다른 지역의 권력자를 굴복시키는 일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만 놓고 보면 별반 특별할 것이 없는 신화이다. 그러나 이 헤라클레스가 근대 서양에서 성장과 발전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흥미가 동한다. 눈썰미가 있는 여행객이라면, 서양의 저택이나 궁전 천장화에 그려져 있는 헤라클레스의 이미지를 종종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질투와 배신으로 점철되어 있는 폭력적 이야기의 주인공이 왜 이렇게 화려한 장식으..
장안의 화제였던 MBC 드라마 가 막을 내렸다. 최종회의 시청률이 40%에 달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물론 이런 시청률이 특별하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드라마의 내용이 특출했다고 평가하기도 망설여진다. 그렇지만 여하튼 는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 드라마의 정체성은 연역적인 방식으로 구성된다. 텔 레비전 드라마는 대중의 욕망을 드러내는 대중문화의 거울이다. 네덜란드 여성학자 이엔 앙은 라는 저작을 통해 왜 네덜란드 여성들이 자신들의 처지와 동떨어진 통속적인 미국 부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지, 이유를 분석했다. 원인은 부자보다도 여성이라는 성차에 있었다. 네덜란드 여성들은 미국 부자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드러난 미국 여성들의 처지에 공명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자의..
태국만에 있는 아름다운 열대의 섬. 세계에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자급 공동체를 이루었다. 매일 하는 일은 해변에서 수영을 하거나 파티를 벌이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도 누구 하나 야단치지 않는 완벽한 낙원이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 상어에게 물리는 사고를 당한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한다. 자신들의 낙원이 다른 이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젊은이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비명을 지른다. 그러자 다른 젊은이들은 파티 분위기를 깬다는 이유로 죽어가는 친구를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숲 속에 유기해버린다. 대니 보일 감독이 영화로 만든 알렉스 갈런드의 베스트셀러 소설 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이 ..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여야 합의 내용을 유가족들이 수용하지 않으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한다. 또 이완구 원내대표는 “100% 유가족을 만족시킬 안은 없다”는 말도 했다. 교착상태에 빠진 세월호특별법을 빨리 처리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최대한 좋게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발언 하나로 새누리당이 어떤 관점에서 세월호특별법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지, 그 태도의 일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씁쓸하다. 왜 문제인가. 기본적으로 이 말이 진심이라면, 이 원내대표는 유가족들과 국민을 서로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을 실토하는 셈이다. 유가족들이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
뤼미에르 형제가 이라는 인류 최초의 영화를 상영했을 때 관객들은 진짜 기차가 도착하는 줄 알고 깜짝 놀라 일어나 도망치는 소동을 벌였다고 한다. 20세기 초반까지 미디어에 등장하는 사물이 사실이라는 믿음은 여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정반대이다. 미디어는 사물의 사실성을 흐리는 방해물에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반전은 미디어 자체에 대한 불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은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에 가깝다. 미디어가 단순히 사물에 대한 정보만을 전해주는 수동적인 중간자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오래전에 설득력을 상실했다. 오히려 미디어가 적극적으로 사물에 대한 ‘진실’을 창조하고 날조하기도 한다는 사실에 대한 꾸준한 증거가 있다. 가장 분명한 증거가 바로 정치일 것이다. 미디어가 ..
“자유, 불평등, 최적자생존과 부자유, 평등, 부적자생존. 전자가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최고의 구성원들만을 남기게 될 것이다. 반면 후자는 사회를 하향평준화시키고 최악의 구성원들만을 남기게 될 것이다.” 20세기 초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라는 미국의 사회학자가 1910년에 했던 말이다. 섬너는 또한 “이런 생존투쟁의 결과로 인해 발생하는 불평등한 결과에 대해 개탄할 필요는 없다”고 못을 박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약자가 도태되고 강자가 살아남는 것은 “자격과 능력에 맞춰 부를 소유하고 즐길 수 있는 자유”의 혜택이고 이런 과정이 바로 “전적으로 중립적인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섬너는 영국의 사회진화론자인 허버트 스펜서의 이론을 수용해서 경쟁을 생존의 필수조건으로 받아들였다. 섬너와 같은 생..
독일계 미국 비평가 가브리엘 슈왑은 최근 발표한 에세이에서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을 지칭해 “미래에서 온 유령”이라는 표현을 썼다. 체르노빌은 구 소련에서 발생한 원전사고의 현장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사고 이후 30여년이 지난 지금 재난의 현장은 자연을 통해 치유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숲이 무성하고 동물들이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이 뛰어놀고 있다. 게다가 한때 대피했던 주민들까지 다시 돌아와 살고 있다. 변화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심지어 체르노빌을 구경하기 위해 관광객이 밀려들고 있다. 한편으로는 안전을 국가과제로 설정하면서 또 한편으로 이렇게 재난에 무감각한 행동을 보이는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슈왑은 이런 ‘재난의 상품화’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