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등 4개 부처 장관이 공동으로 9개 항의 ‘어린이 헌장’을 발표했다. 한국 동화작가협회 발표 내용을 보완한 뒤 공식화한 것이다. 그 3항은 “어린이에게는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4항은 “어린이는 공부나 일이 몸과 마음에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였다. 1988년 개정되면서 표현이 다소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어린이 정책의 핵심이다. 그런데, 2009년부터 올해까지 ‘어린이 행복지수’가 6년째 내리 ‘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하고 있고, 그 주된 이유로 성적 압박과 학습 부담,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가 꼽히고 있다. 지난주 목요일 서울에서 12세 초등학생이 골목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
군 기지 안에서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 제보를 하려던 병사가 수사관을 만나기 전에 기합을 받던 중 사망한다. 군은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해 달라며 ‘합의 전문 변호사’에게 의뢰한다. 헌병대 여 수사관과 사건을 조사해 나가던 변호사는 결국 군 내부 고위층의 뿌리 깊은 불법과 인권침해 인식과 관행을 발견하고 법정에서 그들 스스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교사’ 혐의를 실토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몇 사람의 의인’들의 용기와 헌신, 노력에 의해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실현된다. 1992년에 개봉했던 할리우드 영화 (몇 사람의 의인들) 이야기다. 미국 해병대에서 발생했던 실제 사건을 극화한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의인’들이 보복과 불이익에 내몰리고 ‘악..
지난 10일 발생한 ‘중국 어선 선장 사망사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중국 외교부가 주중 한국 대사를 초치했다. 우리 국격과 국위가 어이없이 손상당하는 순간이다. 대한민국 해경은 적법하고 정당한 공무집행을 했다. 작은 도발로도 치명적인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바다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해상 법집행에 대한 폭력적인 저항은 결코 보호받을 수 없다. 이미 2008년과 2011년 불법조업 중국 선원이 휘두른 둔기와 흉기에 맞은 박경조 경위와 이청호 경장이 사망하는 등 비극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연간 20만척이 넘는 중국 어선이 우리 해역을 침범해 불법조업을 하고 있는데, 단속 건수는 연간 500건을 밑돌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올해는 현재까지 122건에 불과하다. 촘촘한 그물로 해저를 쓸고 다니는 중국 어선..
세월호 참사 167일째인 어젯밤, 특별법 제정안에 대한 여야 대표 간 합의가 비로소 이루어졌다. 여전히 10명의 실종자는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유가족은 심리적 치료와 치유 과정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농성 중인 참담한 상황에서 기대와 희망을 주는 소식이다.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도대체 왜 300명이 넘는 생명이 그렇게 허망하게 스러져가야 했는지에 대한 진실 발견과,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한 단죄와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아직 대표 간 합의에 대해 양당 의총을 거쳐야 하는 등 절차적 문제가 남아 있지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진정한 첫발’을 이제 겨우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냉정하게 바라보자. 왜 이렇게 늦어졌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은 하나다. ‘정치적 계산..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골프장 경기진행요원(속칭 캐디) 성추행’ 사건은 우리 사회의 부끄럽고 참담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박 전 의장의 지위가 특별히 높고, 그의 가해 행동이 지나치게 심각하며, 피해자가 남다른 용기를 발휘해 고소했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주변에서는 유사한 피해 상황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여군 장교가 상관의 성추행을 견디기 힘들어 자살하고, 여교사들을 상습 성추행한 교장은 경징계를 받고 만다. 검사는 여자 피의자를 성추행하고, 항공사는 승무원 대상 성추행과 성희롱 승객들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교수의 제자 성추행과 성희롱이 심각한 문제고, 회식 자리 성추행 사건은 점심시간 직장인들의 단골 화젯거리가 된 ..
범죄 현장에서 발견하는 가장 슬픈 모습은 ‘피해자’였던 자가 다른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로 변해 있는 상황이다. 어린 시절 이웃집 아저씨에게 성폭행당한 후 학교폭력과 군대 내 따돌림을 차례로 겪으며 영혼이 황폐해진 정남규가 선택한 복수극은 아무 죄 없는 여성들을 향한 잔혹한 연쇄살인이었다. 국내외 대부분 연쇄살인범의 과거에는 유사한 학대와 폭력 피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국민적 분노를 야기한 ‘28사단 윤 일병 사건’의 주범 이모 병장 역시 후임병 때는 스스로 병영 내 따돌림과 가혹행위의 피해자였다고 주장한다. 우리 옛말에도 ‘구박받은 며느리 엄한 시어머니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난 8월22일, 네덜란드 국적의 유대인 하요 메이어가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저명한 학자도 정치인도 부자도 아닌..
인류는 오래전부터 ‘범죄자는 일반인과 다르다’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동생을 살해한 뒤 쫓겨난 ‘카인의 후예’들이나 악마에게 영혼을 사로잡힌 마녀나 이교도들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믿고 종교재판을 열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처형했다. 19세기 범죄학자 롬브로조는 ‘격세유전으로 원시인의 특성을 타고 태어난 자들’이 범죄자들이며 외모부터 일반인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반면 그의 제자 가로팔로는 ‘외모가 아닌 심리적 돌연변이’들이 범죄자인데 이들은 유색인종과 집시 등 ‘열등한 집단이나 민족’에게서 많이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 등이 자행한 끔찍한 인종학살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것이다. 이후 현대과학은 이런 통념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범죄자들의 조상..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된 이후, 부패된 시신의 신원확인과 사인, 사망시간 추정 등을 둘러 싼 논란이 식을 줄 모르고 확산되고 있다. 그 와중에 포천의 한 다세대 주택 안에서 발견된 두 남자의 시신 역시 부패된 상태였으며, 그 중 피의자의 남편으로 확인된 시신의 사망 시기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렇듯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는 사건 뿐 아니라 미제 사건으로 남거나 사건의 진실을 둘러 싼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의 배경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초동조치의 실패’와 ‘증거 불충분’의 문제다. 유병언 전 회장 시신 문제 역시 정부와 권력에 대한 불신 등 ‘정치적’인 문제가 가장 크게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변사체가 발견되었던 당시 초기에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고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