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범죄 보도와 관련해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 신조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엉뚱한 사람의 얼굴을 파렴치 범죄자라며 1면에 싣거나, 피해자의 신원을 짐작하게 할 만한 정보를 마구 기사에 공개하거나, 무리하게 범죄 사건의 잔혹하고 흉측한 측면만을 과장하고 포장해 관음증을 부추기는 경우들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범죄보도가 정치·사회적인 민감한 이슈들을 덮는 추악한 도구로 이용된다는 세간의 의혹 또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09년 1월,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 경찰청 홍보담당관(지금의 대변인)에게 “용산사태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홍보하라”고 요구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이런 의혹은 근거를 부여받게 되었다. 아울러, 경찰관서마다 각 언론사 사..
배가 잔뜩 부른 채,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더 이상 먹지 않을 떡 두 개를 남이 먹을까봐 양손에 움켜쥔 놀부의 모습. 지금 우리 검찰의 모습이 그렇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헌법에 명시된 영장청구 독점권’, 수사권과 경찰 및 특별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 지휘권, 독점적 기소권, 독점적 공소유지권, 형집행권 등 재판을 제외한 모든 형사사법 기능을 다 틀어쥔 검찰이 정보 수집과 범죄예방 업무까지 손을 뻗치더니, 급기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을 넘어서는 대규모 ‘과학수사부’를 창설했다. 명분은 ‘경찰 및 국과수와의 선의의 경쟁’이다. 자신이 지휘하는 부하와 경쟁하겠다고 현장 실무자들에게 지급되는 장비와 물품들을 챙겨 갖는 임원이나 간부를 본 적이 있는가? 정작 검찰과 경쟁이 필요한 것은 ..
속칭 ‘크림빵 뺑소니사건’은 누리꾼의 관심과 참여가 없었다면 해결되지 못할 뻔했다. 곧이어 딸의 자전거가 도난당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 대응이 없자 아빠가 스스로 범인을 붙잡아 경찰에 인계한 사건이 발생했다. 수원 팔달산 ‘시신 훼손 유기사건’ 범인 박춘봉도 시민의 제보가 없었다면 미궁에 빠질 뻔했다. 울산 ‘봉대산 다람쥐’로 불린 연쇄 방화범 역시 아파트 경비원의 신고와 폐쇄회로(CC)TV 분석 노력이 없었다면 더 많은 산불을 냈을 것이다. 경찰은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시민의 공은 줄이고, 경찰의 공은 부풀리려다 망신을 자초하곤 했다. 반면에 시민의 참여와 제보가 부족했던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사건, 화성 여대생 피살사건, 포천 여중생 피살사건, 서울 노들길 여성 피살사건 등은 ‘영구미제’의 늪 속..
1829년 최초의 근대 경찰을 창시한 로버트 필 경은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찰(policing by consent)’ 개념을 확립했다. 그가 제시한 9개 항의 ‘경찰원칙’은 지금까지 전 세계 경찰의 철학적 바탕이 되고 있다. ① 경찰은 군대의 폭압이나 엄한 법적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미연에 범죄와 무질서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② 경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힘은, 시민의 지지와 승인 및 존중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③ 경찰에 대한 시민의 지지와 승인 및 존중을 확보한다는 것은, 법을 지키는 경찰의 업무에 대한 시민의 적극적인 협력 확보를 의미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④ 시민의 협력을 확보하는 만큼, 경찰 목적 달성을 위한 강제와 물리력 사용..
조선의 세 성군 세종과 영조, 그리고 정조는 죽임을 당한 백성들이 억울함을 남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법의학 교과서이자 범죄 수사 및 재판의 기본과 원칙을 정한 및 과 그 언해본을 연이어 만들었다. 그 원전은 중국 원나라 때 왕여가 쓴 으로, 고려말에 유입되었다가 1796년(정조 20년)에 많은 오류가 수정되고 개선된 한글판으로 완성된 것이다. 서양 ‘형법학의 시조’ 베카리아가 일반적인 형사법의 원칙을 주장한 을 쓴 것이 1764년, ‘범죄학의 아버지’ 롬브로조가 단순한 범죄자들의 외형관찰을 기록한 범죄인류학 저작들을 출간한 것이 1890년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체의 세밀한 구조와 사망의 다양한 원인에 따른 사후 변화와 경과시간들이 포함된 이 18세기 조선에서 나왔다는 것은 대단한 ..
소위 ‘땅콩 회항’ 사건 피해자 박창진 사무장에 대한 정부, 국토교통부의 조사과정에서 ‘가해 혐의업체’인 대한항공의 여모 상무가 19분간 동석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은폐와 왜곡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토부 조사관은 마치 사전 협의와 각본이 마련된 듯 이를 방조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여 상무 등 대한항공 임직원들은 승무원들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하고 e메일 등 증거 인멸을 지시하는 등 조직적으로 국가행정과 사법작용을 방해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아무런 공직도, 관련 법적 지위도 없는 일개 사인인 정윤회씨 딸에 대한 승마대회 판정 시비 조사 문제로 국장과 과장이 좌천되고, 장관이 물러나는 한심한 소동의 후폭풍에 휩싸여 있다. 청와대 비서실은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논란에..
1994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형법상 ‘강간’ 및 ‘강제추행’ 등의 범죄를 더 이상 ‘정조에 관한 죄’로 부르지 않게 되면서 대한민국에서 ‘정조’ 개념은 법적으로 폐기됐다. 구시대적인 ‘정조’ 대신 ‘성적 자기결정권’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삼국시대 ‘삼종지도’로부터 시작되고 유교에 의해 강화된 ‘정조’ 개념은 성을 본인,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가족과 가문의 ‘재산’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반인권적’이다. 지금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혼외 성관계를 가진 여성을 아버지나 오빠가 살해하는 ‘명예살인’이 대표적인 예다. ‘성적 자기결정권’의 또 다른 측면은 ‘성 미성년자’ 개념이다. 즉, 아직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질 만한 연령에 도달하지 못한 미성년자를 보..
6년 전, 경남지역 보육원에 있는 고아 소년들이 모여 유소년 축구팀을 만들었다. 축구로 희망을 일군다는 뜻에서 ‘희망 FC’라 이름붙인 이 팀은 곧 해체되고야 만다. 돈이 없으면 운동을 계속할 수 없는 현실에서, 어차피 꺾일 ‘헛된 꿈’을 꾸면 안된다는 보육원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사교육 열풍 속에 공부로는 희망을 찾을 길 없는 가난한 아이들, 오직 공 하나만 있으면 되는 축구에서 희망을 찾자는 이 작은 움직임은 지역아동센터로 옮겨갔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저소득층 자녀들로 구성된 새로운 ‘희망 FC’는 박지성, 손흥민 같은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일념하에 구슬땀을 흘렸다. 경남도민 축구단이 유니폼을 지원해주고, 단장이 사비를 털어 훈련용품과 대회 참가비용을 마련했다. 감독도 아이들의 ‘꿈’을 위해 스스로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