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출범이 임박했으나 새 정부의 얼개인 정부조직 개편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여야는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조직 개편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다. 개편안 논의를 위해 여야가 가동한 ‘10인 협의체’가 지난 7일 회의를 끝으로 개점휴업에 빠지는 등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다음 본회의가 잡힌 18일 개편안을 처리하겠다는 심산인 모양이나 이 또한 불투명하다. 가뜩이나 늦어진 조각을 비롯해 새 정부 운영구상이 큰 차질을 빚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여야의 대치는 인수위가 제출한 조직개편안 원안을 그대로 살리자는 새누리당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독립성 보장 등 6개 요구 사항을 내건 민주통합당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현 방송통신위원회 기능의 상당..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결국 사퇴했다. 후보자로 지명된 지 41일 만이다. 이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특정업무경비의 개인적 전용, 배우자 동반 해외출장, 위장전입을 비롯한 수십 건의 의혹에 휩싸였다. 국민들은 헌법기관 수장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일찌감치 도달했다. 이 후보자는 그럼에도 ‘특정업무경비 3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사퇴를 거부하는 몽니를 부렸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 새누리당은 ‘이동흡 폭탄’을 서로 떠넘기며 사태 악화에 일조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이 후보자가 물러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대통령 임기가 열흘밖에 남지 않은 만큼 새로운 후보자 지명은 박 당선인 몫으로 돌아가게 됐다. 지난달 21일부터 공석 상태인 헌재소장 ..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이른바 ‘삼성 X파일’을 공개한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대법원은 어제 노 대표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사건 재상고심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사건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 내정자와 노 대표의 인연 때문에 더 관심을 끈다. 과거 노 대표가 연루된 사건을 수사한 검사가 황 내정자다. 황 내정자는 2005년 서울중앙지검 2차장 시절 국정원 도청 및 삼성 X파일 수사를 지휘했다. 경기고 동기동창인 둘의 운명은 하루 만에 극명하게 갈렸다. ‘공안통’이라는 딱지 때문에 몇 차례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 황 내정자는 새 정부의 공안 부활 기류를 타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반면 노 대표는 황 내정자가 쳐 놓은 그물망에 걸려 의원직을 날린 셈이다. 황 내정자 지..
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남원시내 뒤편에 우뚝한 산이 하나 있다. 남원의 진산 교룡산이다. 고즈넉한 산을 천천히 올라가면 선국사라는 절이 있다.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가 고향인 경주 일대에서 유학자들이 핍박하자 피신해 8개월여 머문 곳이 이 절의 은적암이다. 동학의 주요 저서를 지은 곳이기도 하다. 어느 날 노스님 한 분이 수운이 거처하는 은적암을 찾았다. 스님의 이름은 송월당(松月堂)이었다. 수운이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서, 그와 담론을 즐기기 위해 찾아온 송월당 스님은 수운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선생은 불도(佛道)를 연구하십니까?” 수운이 답하기를, “예, 나는 불도를 좋아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 어찌하여 중이 되시지 않았소?” “중이 아니고서도 불도를 깨닫는 것이 좋지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교육부 장관에 서남수 전 교육부 차관을, 외교부 장관에는 윤병세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수석을 발탁하는 등 6개 부처 장관을 내정했다. 법무부 장관에는 황교안 전 부산고검장, 국방에는 김병관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안전행정부에는 유정복 새누리당 의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는 유진룡 전 문화부 차관이 각각 내정됐다. 6개 부처는 새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과는 무관한 부처들이며, 나머지 11개 부처 장관은 개편 결과가 나오는 대로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상 첫 조각의 특징 중 하나는 국방부 장관을 제외한 5명 전원이 고시를 거친 관료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들 5명은 지역적으로 수도권 출신이며, 고교별로 봐도 경기고(3명), 서울고(2명), 제물포고(1명) 등 이른바 명문고를 ..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과 관련해 불구속 기소된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에게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어제 서울중앙지법은 이 대통령 아들 시형씨가 부담해야 할 매입비용 9억7000여만원을 국가에 떠넘긴 혐의(배임)로 재판에 회부된 김 전 처장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거액의 예산을 전용한 고위공직자에게 실형이 내려지지 않은 점은 유감스럽다. 그러나 법원이 이광범 특별검사팀의 수사 결과를 받아들여 핵심 피고인의 위법행위를 인정한 점은 의미가 작지 않다고 본다. 이광범 특검팀은 지난해 11월 내곡동 수사를 종결하며 이 대통령에게 재직 중 불소추 특권에 따른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이 불기소했던 김 전 처장을 기소함으로..
감사원이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감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말 예비회계감사를 한 데 이어 25일부터 본감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잡음으로 얼룩진 인권위가 감사 대상에 오른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현 정부 최악의 실정 중 하나로 ‘식물 인권위’를 꼽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다.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은 어제 출간한 라는 제목의 책에서 인권위 추락 과정을 상세하게 담았다. 이 대통령이 취임 후 단 한 차례도 인권위 업무보고를 받지 않았을 정도로 무관심했다고 돼 있다. 안 전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는 출범 전부터 인권위를 눈엣가시로 여겼다”면서 “인권위가 촛불집회 진압 과정에 공권력의 인권침해를 지적한 게 보복조치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번 인권위 감사는 ‘정권 눈치보기’라는 ..
이현 | 동화작가 누군가 일을 그르쳤을 때, 너그러운 사람들은 그 잘못을 감싸주느라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래도 열심히 하잖아. 그래서, 열심이라서 그런 만큼 일을 더 심각하게 그르칠 수도 있다. 가만히나 있으면 어쩐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말하면 성과주의라고 비판받을 수 있을 테지만, 우리 앞에 엄청난 증거가 있다. 그 ‘열심’ 덕분에 4대강은 만신창이가 됐다. 허공으로 날려버린 수많은 공약들처럼, 4대강에 대해서도 마냥 게으름을 피워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4대강을 그야말로 ‘열심’히도 파헤쳐 놓았다. 그리고 그 강줄기 옆으로 나란히 자전거길까지 닦았다. 강물은 썩어가고 강의 생명들도 죽어가는데, 그런 풍광을 감상하며 달리라고 길까지 닦아놓은 것이다. 죽을 만큼 패놓고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