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순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내세운 약속 중의 하나가 ‘국민대통합’이다. 지역, 계층, 세대, 성별 등 여러 갈래로 골이 깊게 파여 있는 우리나라 형편을 생각할 때, 국민대통합을 공약한 것은 합당한 일이다. ‘국민대통합’은 정치적 냄새가 물씬 나는 선거구호이지만, 국민통합은 지도자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정치의 본령이다. 박 당선인이 당선 후에도 계속 ‘신뢰’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약속 이행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 국민통합은 그 자체로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다른 가치를 이뤄내기 위한 도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통합은 무엇을 이뤄내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야 하는가? 한마디로 국민의 ‘분열’ 정체성을 치유하고 ‘통합’ 정..
이현 | 동화작가 얼마 전 재미난 블로그를 알게 됐다. 사랑앓이 중인 사람들이 고민을 상담하면, 상황을 분석하기도 하고 조언도 해주는, 소소하지만 실감나는 연애 이야기들을 맛깔스럽게 풀어나가는 블로그다. 저마다 설레고 아픈 사연들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란 본디 그런 데가 있지만 더구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그 사람의 사소한 눈짓 하나조차 사랑의 증거로 보이는 그런 상황. 그렇게 콩닥콩닥하다가 알콩달콩 잘살게 되면 참 좋으련만, 알고보니 나 혼자 김칫국을 배 터지게 들이켰다는 속 터지는 결말이 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딱, 그런 기분이었다. 대선 결과를 보며 여태 마신 김칫국이 한꺼번에 역류해 속을 박박 긁어대는 것 같았다. 그제야 생..
지난해 말 사퇴한 한상대 전 검찰총장의 후임자를 인선하기 위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발족했다.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당연직 5명과 비당연직 4명 등 9명의 위원으로 추천위를 구성했다고 한다. 추천위가 3명 이상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법무장관은 추천 내용을 존중해 최종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제청하게 된다. 검찰총장이 추천위의 추천을 받아 임명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법조계에서는 차기 검찰총장이 오는 4월쯤 임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다음달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임명되는 신임 법무장관이 추천위를 꾸리고, 이 추천위가 후보군을 압축한 뒤에야 제청 및 인사청문 절차가 시작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러나 예상을 깨고 비밀리에 추천위원들을 위촉했다고 한다. 어제 일부 언론이 위원회..
한윤정 문화부 부장 박근혜 당선인이 차기 대통령으로 확정된 이후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현대사를 다룬 책들이 갑자기 많이 팔리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한홍구의 , 서중석의 등의 판매량은 대선 직후 단기간에 열 배, 스무 배씩 가파르게 치솟았다. 책을 구입하는 계층은 주로 2030세대로,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인혁당’이니 ‘정수장학회’ 등의 실체와 역사적 맥락이 궁금했던 게 구매 동기다. 박정희 시대를 직접 경험했던 5060세대와 달리, 이들은 박정희의 유산 위에 세워진 박근혜 정권을 이해하기 위해 한 세대 이전의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늘 현실정치와 맞물려 있다. 문민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를 시작한 이래 새로운 역사 인식과 그에 따른 과거 청산..
여야가 기어코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하는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 촉진법 개정안’(택시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택시도 버스나 철도처럼 정부의 폭넓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택시법안을 지지하는 여론은 택시업계를 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권이 처음부터 제대로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여야 합의로 택시법안을 발의하고 강행 처리한 탓이다. 여야는 택시법안의 필요성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를 들지만, 따지고 보면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택시업계 종사자 30만명의 표를 의식했기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입법권이 아무리 헌법상 국회의 고유권한이라지만 택시법안 처리는 ‘입법권의 남용’이란 지적을 받아 마땅하다. 택시법안의 입법 취지는 택시회사의 경영난과 운전기사의 열악한 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어제 육성으로 발표한 신년사는 올해가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인 전환을 이룰 시기임을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업이었던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에 이어 인민생활의 개선을 토대로 한 경제강국 건설에 본격적으로 매진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는 이명박 정부 5년간의 대립과 갈등을 접고 기존 합의를 준수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개선할 것을 제안했다. 북한이 노동신문·청년전위·조선인민군 공동사설이 아닌 지도자의 육성 신년사를 통해 국정기조를 밝힌 것은 1994년 이후 처음이다. 신년사에서는 무엇보다 외부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안도감이 엿보인다. 100% 자력으로 이룬 장거리 로켓 광명성 3호 2호기의 발사 성공을 국가적 존엄과 ..
국회가 어제 새벽 342조원 규모의 2013년 새해 예산안을 채택했다. 법정처리 시한인 12월2일을 넘긴 것은 물론이고 해를 넘긴 지 6시간 만에 통과시키는 진통을 겪었다. 5년 만에 처음 여야 합의로 예산안을 채택했다는 상징성은 있지만 아쉬운 일이다. 새해 예산안의 가장 큰 특징으로 복지예산이 사상 처음 100조원을 넘었고, 전체의 30%를 차지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복지예산은 97조원이었지만 대선이 치러진 이후 국회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2조원이 더 늘었다. 여기에 민간에 사업을 맡기고 정부가 금리를 대주는 방식의 복지사업 5조원을 합치면 실질적인 복지예산은 100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복지예산이 늘어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처럼 복지예산이 많이 늘어난 것은 서민들의 삶..
지난 21일 노조 사무실 완강기에 목을 맨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한진중공업지회 최강서 조직차장이 휴대폰에 남긴 유서에는 노동자의 패배감과 절망감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그는 “자본 아니 가진 자의 횡포에 졌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썼다. 최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결정적 동기가 회사 측이 막대한 액수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며 노조를 압박한 것임을 보여준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11월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 노조와 합의하면서 고소·고발 취하와 손해배상 최소화를 약속하고도 158억원의 손배소를 제기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손배소나 구상금 청구, 가압류 등의 방법으로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기업의 행태와 이를 외면 또는 방조, 심지어 동조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가 계속되는 작금의 노동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