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배상책임에 대해 최근 사법부가 내린 판단이 주목할 만하다. 서울고법 민사16부(최상열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이른바 ‘문인간첩단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국가는 총 6억96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보상을 받았더라도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는 별도의 배상 청구 권리가 원고에게 있음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동안 사법부가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 등을 받으면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보고 청구를 각하하거나 기각한 것과는 사뭇 다른 판단이다. 최근 유신·긴급조치 등 과거사와 관련해 청산 내지 화해를 내세우며 경쟁적으로 입..
안홍욱 정치부 기자 ahn@kyunghyang.com 현행 한국 대선은 단순다수제를 채택하고 있다. 후보가 몇 명이건, 얼마를 득표했건 상관없다. 한 번의 투표로 한 표라도 가장 많이 얻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방식은 간편하지만 이 제도가 갖는 문제점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대선이 거대 정당에 좌지우지된다. 한국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지배하는 사실상 양당제다. 그러나 두 정당이 대표하는 이념적·계층적 범위는 넓지 못하다. 다변화한 사회의 이해관계를 두 정당이 다 수용할 수는 없다. 기성정치권이 국민의 눈높이를 맞춰가지 못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1987년 대선 이래 대통령 당선자가 득표율 과반을 차지한 적이 없다. 15대 대선 노무현 후보가 48.9%로 가..
희한한 대선이다. 선거일이 3주도 남지 않았으나 유권자들은 후보들을 접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야권이 등록 전까지 후보 단일화로 시간을 보내는가 싶더니 야권 후보가 확정되자 여당 후보 측은 양자간 TV토론을 회피하고 있다. 대선 사상 보수와 진보 진영의 가장 팽팽한 대결이라지만 허공에 내젓는 삿대질이 있을 뿐 구체적 쟁점들을 둘러싼 후보 검증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후보의 면면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념의 잣대에만 의존해 편을 가르는 ‘묻지마 선거’라도 해야 할 판이다. SBS는 어젯밤 박·문 두 후보의 양자 토론을 추진했으나 박 후보 측이 답을 주지 않는 바람에 무산됐다고 한다. KBS도 오늘 정치·외교와 내일 경제·사회 분야의 양자 토론을 계획했지만 역시 박 후보 측 사정으로 성..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그제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하기에 앞서 같은 당 하태경 의원이 대표 발의한 ‘대한민국 헌법 제8호에 근거한 긴급조치로 인한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에 서명했다. 지난 10월16일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유신헌법 긴급조치로 인한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과 내용이 대동소이한 데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국회의원 신분으로 공동 발의한 마지막 법안인 만큼 ‘긴급조치 보상법’의 국회 입법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적절치 않은 입법이다. 두 법안의 취지는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고 부당한 피해를 회복하며 미래적 국민화합과 민주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법안의 골자는 ‘긴급조치피해자명예..
정승일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이제 3주 뒤면 차기 대통령이 선출된다. 그런데 얼마 남지 않은 선거판을 대하는 주변의 보통 사람들의 표정이 시큰둥하다. 흥이 나지 않고 신바람도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보통 시민들의 마음속에는 ‘누가 대통령이 된들 내 인생이 뭐 크게 달라지겠어?’라는 체념이 있다. 5년 전인 2007년의 대통령 선거에 즈음하여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더냐’라는 말이 널리 유행했다. 많은 국민들은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가 출범할 때 개인적으로도 더 행복한 세상이 될 거라고 나름 기대가 컸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비정규직과 미취업 청년이 크게 늘었다. 명예퇴직 당한 후 음식점과 통닭집을 창업한 자영업자들이 크게 늘고 그중 상당수가 파산..
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어젯밤 야권의 대선 후보 단일화를 위한 TV토론을 가졌다. 문·안 두 후보는 저마다 진정성과 참신성을 앞세우는 등 자신의 강점을 설파하면서 양보 없는 일전을 벌였다. TV토론 성적표가 단일화의 향방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라는 점을 의식한 듯 경쟁력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 단일화 방식을 놓고 두 후보 진영이 빚어온 신경전의 일단도 드러났다. 이제 단일화 시계는 ‘등록 전 후보 확정’이라는 마감시간을 향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축적된 양측의 감정적 응어리는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안 후보 측은 줄곧 문 후보 측의 말과 행동이 달랐다고 몰아세웠고, 문 후보 측은 안 후보 측이 건건이 떼를 쓴다고 공박해왔다. 양측이 번갈아 가며 협상 내용을 흘리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을 재개하며 ‘새 정치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두 후보는 공동선언문에서 “과거에 머물러 있는 낡은 정권을 교체하고, 과감한 정치혁신으로 새로운 정치를 창조하겠다”고 밝혔다. 선언문은 새로운 리더십과 국정운영, 기득권 타파, 정당 혁신, 국민연대 등 4가지 소주제로 이뤄졌다. 세부적으로는 국회의원 정수 조정, 여·야·정 국정협의회 상설화, 대통령 권한 축소와 국무총리 역할 강화, 정당 국고보조금 축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문·안 후보는 새 정치 공동선언이 ‘개혁의 시작’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정권교체라는 눈앞의 목표에 매몰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면서, 단일화를..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사려 깊은 표현의 자유’를 생각해본다. 이념·정책과 권력을 두고 갈등하는 정적 역시 인간적 존엄성을 누려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표현의 자유 말이다. 그래서 정적에 대한 비판이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과에 대한 성찰과 숙고를 끌어내는 지혜로운 표현의 자유 말이다. 홍성담 화백의 일명 ‘박근혜 출산 그림’이 논란이 되고 있다. 홍 화백의 그림은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선글라스를 쓴 아기를 막 낳은 광경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얼마 전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의료드라마의 주인공(최인혁)인 의사 한 명이 아기를 보며 거수경례를 붙이고 있다. 언론 인터뷰와 보도에 따르면, 홍 화백은 박 후보의 출산설에 착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