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바르 로렌첸은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두 조 앞에서 올림픽 타이기록을 세운 차민규를 0.01초 차이로 제쳤다.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로렌첸은 기자회견에서 “앞에서 홈팀 선수가 올림픽 기록을 세워서 경기장이 무척 시끄러웠다. 그런데 내가 다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전광판에 내 기록이 나오자 경기장이 조용해졌다”면서 웃었다. “기분이 정말 쿨 했다”고 덧붙였다.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평창과 강릉에는 ‘쿨한 선수’들이 넘쳐난다. 메달의 압박감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지만, 이를 이겨내는 방식이 찰나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엄숙함과 진지함만은 아니다. 클로이 김은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서 엄청난 기술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반원통의 경기장에서..
보수성향 방송인인 폭스뉴스의 로라 잉그램은 NBA 선수 르브론 제임스가 못마땅했나 보다. 덩치 큰 흑인 농구 선수가 도널드 트럼프의 가치관과 정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비판하는 모습을 참아주기 힘들었던 것 같다. 잉그램은 방송에서 제임스의 말이 문법에 맞지 않고 지적이지도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입 닥치고 드리블이나 해.” 제임스는 스타답게 반응했다. “전 입 닥치고 드리블만 하진 않을 겁니다. 전 이 사회와 청소년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존재거든요. 그녀 덕분에 좀 더 각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 이름이 뭔지 모르겠지만 고맙네요.” 르브론 제임스는 스테펀 커리와 함께 현재 NBA를 대표하는 선수다. NBA 정규리그 MVP를 네 차례 차지했고, 올림픽에도 출전해 두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제임스가 고향..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빛나는 사람은 많다. 그중에는 4위 선수도 있고, 2위 선수도 있으며, 예술감독도 있고, 자원봉사자도 있고 다른 민족, 다른 국가들의 선수도 많다. 올림픽에서의 아름다운 사연은 1등들의 사연으로 가득 채워지지 않는다. 열대국가에서 온 한 명으로 이루어진 선수단부터 시작해서 우승을 0.01초차로 놓친 아쉬움에 가득 찬 선수, 이곳에 와서 갑자기 충수돌기염을 앓고 수술한 뒤 경기에 참여한 선수, 또다시 챔피언을 이어간 팀들의 우정, 민족의 화해 등은 모두 감동적인 소식이다. 저마다 지닌 온갖 사연을 갖고 평창을 찾아와 자신의 찬란한 인생 한순간을 쏟아붓고 간다. 그리고 그 모든 사연은 같은 무게로 아름답다. 오로지 금메달을 딴 사람들만 영광을 누리는 올림픽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 1등만 ..
평창 동계올림픽은 ‘역사적’인 의미를 획득할 것인가. 폐회식까지는 며칠 더 남아있기 때문에 이 ‘역사적’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한정적인 수사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기대를 걸고 싶다. 특정 국가 올림픽을 통하여 그 이전과 이후를 완전히 가르는 새 지평을 연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그래도 1964년의 도쿄 올림픽이나 2012년의 런던 올림픽은 세계가 일본과 영국을 어떤 식으로든 달리 보게 만든 사건으로 기록된다. 우리의 기억도 선명하다. 88서울 올림픽과 2002 월드컵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규모 이벤트를 치르기 전과 후로 한국 사회를 일정하게 판별해 볼 수 있었다. 거대한 중산층 문화의 형성과 새로운 세대의 활기찬 등장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평창 올림픽도 그러한 분기점으로 기억될 것인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이처럼 따스하게 해준 한·일전이 또 있었을까. 18일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이상화가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小平奈緖)와 다정하게 포옹하며 격려하는 모습은 올림픽 정신을 일깨우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36초94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고다이라는 2위로 경기를 끝낸 뒤 눈물을 쏟아내던 이상화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잘했다. 여전히 너를 존경한다”고 위로했다. 둘은 어깨동무를 한 채 각자의 국기를 흔들며 트랙을 돌았고, 관중들은 박수와 환호로 격려했다. ‘승패를 떠나’라는 관용구가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주니어 선수 때부터 함께 겨루면서 우정을 쌓아왔다. 늘 긴장을 놓지 않고 도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준 라이벌이자 친구였다. ..
동계올림픽을 틈틈이 재미나게 보고 있다. 경기의 승패에 몰입하여 일희일비하며 환호와 탄식을 오간다. 누구나 알다시피 올림픽은 선수들에겐 가장 큰 성공과 실패를 맛보게 해주는 장이다. 메달을 따면 금의환향하지만 따지 못하면 그 박탈감이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야말로 사활을 건 한판 싸움이니 지켜보는 이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돌 하나를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앞서 계산했던 온갖 수와 자리싸움의 운명이 결정 나는 컬링 경기를 비롯해 대부분 건곤일척의 승부다. 아나운서와 해설위원의 설명을 듣다보면 선수들마다 사연이 많다. 소속 국가가 제재를 받아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고 ‘러시아 출신’이라 불리는 선수들을 비롯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여자 하키 선수들이 한 골 넣고 서로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그 무게감이 ..
-2018년 2월 15일 지면기사-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남북한 선수들이 단일팀을 이뤄 출전한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예선이 14일 일본전을 끝으로 예선리그를 마무리지었다. 앞으로 5~8위 결정전 2경기가 더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의 경기만으로도 잘해냈다고 손뼉 쳐줄 만하다. 국가 간 실력차가 큰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세계 3~4부 리그에 머물고 있는 남북한 선수들은 스위스와 스웨덴 등 세계 톱클래스팀과도 용기있게 싸웠고, 일본전에서는 역사적인 골까지 넣었다. 이번 단일팀은 얼어붙어 있던 남북관계를 반영하듯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최종 결정(1월20일)과 북한 선수 12명의 합류(25일) 등 일사천리로 단일팀이 구성되자 20~30대를 중심으로 한 국내 여론은 싸늘해졌다...
아이스하키에서 가장 불쌍한 포지션이라면 역시 ‘골리(골키퍼)’를 꼽을 수 있다. 두께 2.54cm, 지름 7.62cm의 원형압축고무를 얼려 만든 무게 150~170g의 퍽이 시속 160~180㎞의 총알속도로 날아오는데, 이것을 온몸으로 막아야 한다. 195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아이스하키 골리는 맨 얼굴로 경기에 나섰다. 1927년 여자선수인 엘리자베스 타일러(퀸즈대)가 치아보호를 위해, 1930년 클린트 베네딕트가 부러진 코를 보호하려고 각각 마스크를 썼다. 그러나 부상에서 회복된 후에는 곧바로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시야를 가리는 그 무엇을 얼굴에 단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상대와 당당히 맞서야 할 선수가 얼굴을 가리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이거야말로 불성실한 겁쟁이 아닌가. 그러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