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과 그늘을 알아야, 인간은 더욱 인간다워진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고 했다. 군중의 환호와 폭죽의 화려함에 빠져서는 정의로운 세상을 볼 수 없다. 평창 올림픽 개막이 목전이다. 전 세계가 스포츠를 통한 인류 평화, 공존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과거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2014년 가을, 상상할 수 없는 ‘고목 학살사건’이 벌어진다. 강원도 정선과 평창의 경계에 위치한 가리왕산. 평창 올림픽 스키 활강경기가 예고된 곳. 수령 150년을 훌쩍 넘긴 신갈나무, 음나무, 전나무가 차례차례 잘렸고 그 수가 무려 10만그루를 넘었다. 500년 ‘왕실의 숲’은 슬로프의 모양대로 가리왕산 정상에서 수직으로 밀렸다.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
평창 동계올림픽이 임박한 최근 미국의 대북태도가 심상치 않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지난 23일 “올림픽 대화만으론 대단히 중요한 문제들을 다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했고,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26일 “북한의 술책에 속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24일 북한 원유공업성 등을 새롭게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현송월이 1박2일간 방남하면서 뉴스의 중심이 되자 백악관의 고위 관료가 “김정은이 평창 올림픽의 메시지를 납치(hijack)하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말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남북이 2년여 만에 대화의 문을 열어 평창 올림픽의 평화적 개최에 힘을 모으려는 상황에서 미국이 보이고 있는 태도는 당혹스럽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평창 올림픽 ..
고대 올림픽의 목표는 전쟁 중지였다. 기원전 776년에 열린 첫번째 올림픽도 늘 전쟁 상태였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휴전이 목적이었다. 이들은 올림피아 지역을 중립 및 불가침 지역으로 규정했고, 올림픽 기간 동안 적대행위 중지를 선포했다. 스포츠라는 ‘유사 전쟁’을 통해 진짜 전쟁을 피한 셈이다. 열흘 뒤 개막하는 평창 동계올림픽도 유사한 과정을 밟았다. 한국과 미국이 연합군사훈련을 중지했고,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을 두 달 가까이 멈췄다. 유엔도 올림픽휴전을 결의해 힘을 보탰다. 그런데 정작 한국 내부에서는 격렬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 등 보수 세력이 북한 참가와 관련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있다. 이들은 평창 올림픽 개회식 남북 공동입장과 한반도기 사용, 여자 하키 남북단..
지난 1월10일 이일영 교수가 경향신문에 칼럼 ‘양국체제인가, 한반도 체제인가’를 올렸다. 양국체제도 한반도 체제이니 이 제목은 이상하다. 이 교수는 양국체제론과 분단체제론, 두 개의 ‘이론’을 말하고 그 둘의 병립을 제안하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양국체제와 분단체제, 두 개의 ‘현실’을 말해왔다. 이 둘은 병립할 수 없다. 선택해야 한다. 분단체제에서는 한반도 두 국가의 존재, 두 국가의 평화 공존이 허락되지 않는다. 분단체제에서 남북은 서로를 부정한다. 모두 자기중심으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남은 ‘북진통일(흡수통일)’을, 북은 ‘조국통일(적화통일)’을 부르짖어 왔다. 상대가 자신을 부정하는 이상, 그러한 상대와는 생사를 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국전쟁(Korean War)이..
남한 선수들과 단일팀을 이뤄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이 어제 남한에 들어왔다. 이들은 곧바로 선수촌이 있는 충북 진천으로 이동해 남한 선수단과 합류했다. 이들은 오늘부터 공동 훈련에 들어간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출범하기까지 큰 홍역을 치렀다. 단일팀 구성에 따른 남한 선수들의 출전시간 축소 등 불이익 문제가 불거졌고, 이에 대한 일부 선수의 반발과 야권의 정치적 공세가 거셌다.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인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단일팀을 반대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남북이 급작스럽게 단일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남한 선수단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올 들어 갑자기 남북대화가 재개되는 바람에 올림픽 개최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
정현이 한국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은 24일 열린 호주오픈 남자단식 8강전에서 미국의 테니스 샌드그렌을 3-0으로 완파하고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 테니스 선수가 메이저대회 4강에 오른 것은 남녀를 통틀어 처음이다. 이덕희가 1981년 US오픈 여자단식 16강에 오르고, 이형택이 2000년과 2007년 US오픈 남자단식에서 16강에 진출한 게 지금까지 거둔 최고 성적이었다. 1905년 출범한 호주오픈에서 남자단식 4강에 오른 아시아 선수는 1932년 일본의 사토 지로가 유일했다. 특히 프로 선수들의 ATP 투어 출전이 공식 허용된 1968년 이후 아시아 선수가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한 것은 일본의 니시코리 게이밖에 없었다. 정현은 지난 22일 열린 호주오픈 ..
3시간21분간의 혈투 후 조코비치가 정현의 가슴과 어깨를 두드렸다. 경기 전후 선수 간 인사는 테니스의 오랜 관습. 하지만 패자가 미소를 띤 채 승자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내는 모습은 조금 특별했다. 바로 직전 혈투를 벌인 선수들이라기보다 마치 스승과 제자 같은 모습이었다. 정현은 “조코비치가 다음 경기도 잘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현과 조코비치의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4회전은 테니스가 왜 아름다운 스포츠인지를 보여주었다. 일진일퇴의 경기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진정성과 아량이 담긴 언사가 더 눈길을 끌었다. 정현은 승리 후 인터뷰에서 “조코비치는 나의 어릴 때 우상이었다”며 “그가 투어에 복귀해 기쁘고, 그를 상대할 수 있어 영광이다”라고 치켜세웠다. 조코비치는 취재진이 오른팔꿈치 통증에 대한 ..
아쉽게도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과정이 되었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실의와 눈물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일이다. 종목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3피리어드 전체 1시간’의 경기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조직력이 관건이다. 무엇보다 상대적 약체팀에 절대적인 것이 조직력인데 그것이 흔들렸다. 이에 관하여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크게 실책했다. 우선 설득과 동의의 과정이다. 문제가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다. 비록 특정 분야의 미시적인 것일지라도 그 설득 과정을 통하여 사회 전반의 정서적 연대의 수준이 높아진다. 이를 소홀히 했다. 북한에 대한 모든 사안은, 절망적이든 희망적이든, 언제나 ‘내일 당장’ 벌어질 수 있다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올림픽과 관련하여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