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이 3위를 차지했다.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트위터에 대표팀의 귀국을 환영하며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의 라이오니스(잉글랜드 여자대표팀의 애칭 ‘암사자’)들이 오늘 엄마, 배우자, 딸들로 돌아간다.” 성차별적 표현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FA는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선수들이 가족과 재회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2004년 FIFA 회장이던 제프 블라터는 “여자축구 선수들에게 몸에 착 달라붙는 유니폼을 입혀야 한다”고 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렌나르트 요한손 당시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이 “기업들은 빗속에서 땀 흘리며 뛰는, 사랑스러운 여자선수들의 모습을 ..
나는 ‘헤딩’을 하는 게 늘 두려웠다. 성인남자 평균 신장에 조금 못 미치고 일찍 안경까지 쓰는 바람에, 마음 같아서는 98 프랑스 월드컵 때 ‘헤딩’으로만 브라질 골문을 두 번이나 흔들어버린 지단처럼 해보고 싶었지만, 동네축구에서는 조금 한가로운 좌우 외곽에서 ‘센터링’을 올리는 데 집중했다. 그럼에도, 나의 ‘센터링’이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골문으로 집중되고 동료 선수가 온몸을 뒤틀어 ‘헤딩 슛’을 터트리는 광경! 아름다웠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 용어들은 ‘헤더’와 ‘크로스’로 변했다. 머리로 패스를 하거나 슛을 하는 것은 이제 헤딩(heading)이 아니라 헤더(header)다. 오랫동안 사용되던 센터링이나 핸들링도 ‘잘못된 일본식 영어’(재플리시)로 간주되어 크로스나 핸드볼 파울로 변했다. 문법..
빙상종목에서 국가대표를 지낸 한 선수는 지난여름을 해외에서 보냈다. 폭염을 피해 출국한 게 아니다. 앞서 그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개혁을 촉구하는 움직임에 참여했다.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전 연맹 부회장)로 대표되는 기득권세력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결국 홀로 외국으로 떠났다. 개인훈련을 하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서야 귀국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컬링 전 국가대표 ‘팀킴’이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 그의 딸·사위인 김민정·장반석 감독으로부터 폭언과 사생활 통제, 비인격적 대우에 시달렸다고 폭로했다. ‘겨울동화’에 열광하던 대중은 충격에 빠졌다. 컬링계 내부를 아는 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터질 게 터졌을 뿐이라고 했다. 팀킴은 “가족이라 칭하는 틀 안에서 억압, 부당함, 부조리에 불..
어떤 일을 도모할 때, 그 일의 가치와 명분이 우선 중요하지만, 과연 그 일을 실현해 낼 수 있는 현실적 역량이 충분한가, 이 점 또한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지난 10여년 동안 아쉬웠던 것은, 한국 스포츠문화의 전반적인 개혁, 특히 학교 체육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여러 모임이나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정작 책임 있는 당국의 핵심에서는 이에 관하여 무지하거나 무관심했다는 점이다. 그나마 어떤 사건에 의하여 그들로서도 불가피하게 참석하게 될 때조차 대단히 방어적이었다. 나름의 노력과 시간들은 또 하나의 ‘잃어버린 10년’이 되고 말았다. 이른바 ‘국위선양’의 깃발만이 펄럭이는 분위기 속에서 스포츠문화의 폐습들은 더 많이 생산되고 확산되어 어느덧 어디서부터 누가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적폐’가 되고 말았다...
경향신문이 무려 전체 9권 3800쪽 분량의 를 확보했다고 해서, 나는 당장이라도 편집국에 찾아가고 싶었다. 혹시 신문사 안에 부탁할 만한 사람이라도 없나 하고 생각도 해봤다. 법정 공방까지 벌여가며 1년5개월 만에 확보한 ‘전사’를, 염치불구하고 복사를 하든지 아니면 밤새워 필사라도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전사(全史)’가 아니라 ‘전사(前史)’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5공화국의 전체사가 아니라 5공화국이 수립되기 전까지의 기록 말이다. 이런 ㅠ.ㅠ 물론 이 자체로 엄청난 기록이다. 10·26 시해 사건과 12·12 사태 그리고 무엇보다 5·18 광주항쟁에 관한 핵심 인물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형사적 죄책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전체사’였다고 하면, 요즘의 내 집중적인 관심사, 즉..
지금부터 꼭 30년 전 많은 기대와 우려 속에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이 개최됐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반쪽 대회로 치러진 뒤 개최된 서울 올림픽은 동서화해 무드가 조성된 역사적인 올림픽이었다. 서울 올림픽의 모토는 ‘화합과 전진(Harmony and Progress)’, 슬로건은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The World to Seoul, Seoul to the World)’였는데, 당시 160개국에서 8465명이 참가한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의 대회였다. 88서울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전체 4위라는 올림픽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개최국의 이점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성적이었고, 그 이면에는 올림픽 유치 이후 추진된 꿈나무선수 발굴과 스포..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결승전의 숨은 MVP는 김민재”라면서 “일본의 역습을 잘 막아냈다”고 극찬했다. 과연 그랬다. 김민재는, 특히 일본전에서, 폭우를 쓸어버리는 자동차 와이퍼처럼 깔끔하고도 신속하게 일본 공격을 차단했다. 최용수 SBS 해설위원은 황의조를 극찬했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황의조가 골을 터트렸을 때 “클래스가 다르다. 옛날의 저를 보는 것 같다”고 했는데 베트남전에서 황의조가 골을 넣자 “옛날의 저를 보는 것 같다고 했는데 부끄럽다. 사과하고 싶다”고 축하했다. 한편 안정환 MBC 해설위원은 수비수 김진야를 “정말 대단하다. 뛰어난 기술과 지치지 않는 체력”이라고 격려했다. 김진야는 이제 ‘철강왕’으로 불린다. 사실 손흥민을 잠시 괄호 안에 넣고 젊은 후배들부터 극찬하는 마음일 것이다...
2003년 미국프로농구(NBA)에 데뷔하여 15년, 신인 때부터 지금까지 받을 만한 상은 다 받았고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에도 기여한 르브론 제임스. 203㎝의 거구로 강력한 파워와 현묘한 기술로 코트를 지배했지만, 그가 가장 잘 다스린 것은 그 자신이었다. 데뷔 14년차 되던 2017년 11월, 무려 1082경기 만에 처음으로 퇴장을 당했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최고 수준으로 관리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코트 바깥의 경기에서는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고향 오하이오주 애크런에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 ‘아이 프로미스(I Promise)’를 개교한 뒤 가진 CNN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올 초에도 “인종주의가 우리를 정복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