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많은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정답을 제시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도 있고 생각이 엇갈리는 장면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하고 정지우 감독이 연출한 영화 ‘4등’이다. ‘해피엔드’와 ‘은교’로 유명한, 그래서 스포츠 인권을 다룬 이 영화 ‘4등’을 연출했다는 게 조금은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 ‘사로’(1994), ‘생강’(1996) 같은 독립단편으로 영화를 시작했고, 2005년에 류승완·장진·김동원과 함께 인권위 프로젝트 영화 ‘다섯 개의 시선’에 참여했던, 그리고 그 유명한 ‘해피엔드’나 ‘은교’도 단순한 치정에로물을 넘어 관계의 형성과 파탄의 미묘한 엇갈림을 제시했던, 정지우 감독이다. 그런 까닭에 일차적으로 나의 기대는 이 영화가 ..
복싱은 ‘욱’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스포츠이다. 고대 그리스의 투사들은 밧줄에 매인 채 돌 위에서 마주 앉아 어느 한 편이 녹다운 될 때까지 주먹으로 쳤다. 로마시대 전사들은 주먹보호를 위해 감싼 가죽끈에 쇠징을 박았다. 가죽끈은 훗날 ‘사지 찌르기’라는 의미의 흉기인 미르멕스로 변질됐다. 전사가 죽어나갈 때까지 진행되던 야만의 이벤트는 기원전 393년 무렵 공식폐지됐다. 권투가 다시 등장한 것은 17세기 영국이었다. 야만적이라는 비판 때문에 몇 가지 ‘문명적인 룰’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운 뒤 30초 중단, 글러브 사용 의무화, 1회 3분 후 1분 휴식 룰 등…. 1889년 7월8일 미국 미시시피주 리치버그에서 벌어진 존 설리번과 제이크 킬레인의 대결은 인류 최후의 맨주먹 싸움이었다. 설리..
‘축구황제’의 수식어가 펠레에게만 붙는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71)의 별명도 ‘카이저(Der Kaiser·황제)’다. 선수 시절의 화려함만 따진다면 펠레(브라질)나 마라도나(아르헨티나)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곧잘 ‘헛다리 예측’으로 비웃음을 사는 펠레나 마약 복용 등으로 망가진 마라도나에 견줄 수 없다.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을 제패했고, 바이에른 뮌헨에서 유러피언 3연패를 이룬 유일한 축구인이다. 2006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장 등 축구행정가로도 이름을 떨쳤다. ‘레전드 업계’에도 급이 있다면 베켄바워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야 할 것이다. ‘리베로(자유인) 시스템’을 완성한 전술혁명가로도 유명하다. 리베로 시스템의 원조는 1960년대 이탈리아 인터밀란의 왼쪽 수비..
양팀 모두 실수가 없다면 그 경기는 무승부일 것이다’ 히딩크 감독의 명언이다. 이 말은 주석이 필요하다. ‘실수하면 용서치 않겠다, 낙오자는 버리고 간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히딩크는, 감독도 선수도 심판도 실수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것을 줄여가기 위해 노력하고 격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타박하지 않고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반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실수하면 낙오자로 만들고 패잔병으로 만들어버린다. 대통령은 임기 내내 노기 띤 얼굴로 국민을 타박한다. 그리하여 이 도시의 일상이 움직이는 시한폭탄으로 가득차 있다. 실수하면 분노하는 세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이세돌 대 알파고의 대결. 이를 ‘기계 대 인간’의 대립보다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볼..
‘보라 하늘의 푸른 솔과 대지에 일어선 높은 산을! (중략) 우리 조선사회에 개개의 운동단체가 없음은 아니나 이를 후원하며 장려하여 조선인민의 생명을 원숙창달하는 사회적 통일적 기관이 없음은 실로 유감이고 또한 민족의 수치로다. 우리는 이에 뜻한 바 있어 조선체육회를 발기하노니 조선사회의 동지들은 모두 와서 찬양할진저.’ 1920년 7월13일 오후 8시 서울 인사동 중앙예배당에서 발족한 조선체육회의 창립취지서다. 1919년 2월 조선총독부 산하 어용단체로 조선체육협회가 출범한 데 반발해 1년여 뒤 친일인사를 배제한 사회 각계 지도층 인사 96명이 모여 만든 자주적 체육단체가 현 대한체육회의 전신인 조선체육회다. 창립 이념은 그래서 ‘건민’과 ‘저항’이다. 스포츠를 통해 민족 자긍심을 키우고, 항일투쟁을 ..
ㆍ이세돌 대 알파고 대국을 보고 충격, 이세돌 불계패! 이렇게 느낌표를 붙여야 할 만한 사건이다. 드디어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는 세상이 오는 것인가? 그러나 이를 ‘기계 대 인간’ ‘인류 문명의 위기’ 등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피상적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이러한 묵시록적 상황이나 이야기를 반복하여 만들어내면서 그 위기를 헤쳐왔다. 13세기 이탈리아의 단테가 쓴 은 존재하지 않는 지옥을 상상하고 그 아래로 순례하는 인간을 통해 중세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17세기 영국의 밀턴, 그의 은 또 어떠한가? 신의 형벌, 추락한 천사, 지옥에서 복수의 성채를 쌓는 사탄. 실물로 존재하지 않으나 상상 속에서 가능한 이 묵시록을 통하여 밀턴은 당대의 황폐한 상황을 그렸다. 나 같은 영화 또..
프로골퍼 타이거 우즈는 지난해 투어 상금이 44만8598달러(약 5억4000만원)였다. 상금 랭킹은 한국의 최경주보다 한 계단 아래인 162위지만 우즈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지난해 선수 브랜드가치 1위에 올랐다. ‘황제’ 명성이 많이 퇴색하기는 했어도 그의 가치는 상금의 70배 가까운 3000만달러였다. 우즈는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대가로 나이키골프·롤렉스 등과 거액의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다.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은 운동선수나 배우, 가수 등 유명인의 이름이나 초상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권리이다. 우즈가 나이키골프로부터 받는 수천만달러는 자신을 모델로 광고할 권리를 판 대가이다. 우리말로 풀면 ‘초상사용권’ 또는 ‘초상재산권’이라고 할 수 있으나, 적확한 표현이라..
‘레알 수원.’ 프로축구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한때 이렇게 불렸다. 모그룹인 삼성의 지원을 받아 최고의 선수들을 사들였고, 언제나 우승후보로 꼽혔다. 국내 프로축구는 물론 클럽대항전인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강호로 군림했다. 이런 수원을, 팬들은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에서 레알이라는 단어를 따와 ‘레알 수원’이라고 불렀다. 세계적인 명문팀인 레알 마드리드는 ‘갈락티코’(은하수) 정책으로 유명하다. 최고의 스타 선수들을 끌어모아 팀을 은하수로 만들었다. 2000년대 초반 지네딘 지단·루이스 피구·데이비드 베컴·호베르투 카를루스 등이, 지금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레스 베일 등이 레알 마드리드에 모였다. 이런 레알 마드리드의 정책엔 비판도 많다. “돈으로 성적을 내려 한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