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원도 평창의 가리왕산으로 전공 답사를 갔다. 도착한 곳은 알파인 스키 공사 현장이었다. 우리 일행을 환경운동연합의 김경준 국장이 맞이해 주었다. 그는 500년 이상 된 원시림이 2주간의 올림픽을 위해 파괴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산 중앙을 마치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듯이 밀어버린 휑한 가리왕산을 직접 보니, 마음이 먹먹했다. 올림픽은 도시 개발의 효과적인 수단이다. 마라톤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땄던, 1992년 올림픽 개최지인 바르셀로나를 여행한 적 있다. 많은 볼거리와 공공 인프라 시설로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현지 가이드는 올림픽을 치르기 전 바르셀로나는 불결하고 위험하며 낙후된 도시였다며, 올림픽 개최가 바르셀로나 발전의 마중물이 됐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88 서울올림픽과 2002..
지난 6월, 세계 최장 철도 터널인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이 완공되었다. 해발 2300m의 알프스 산맥을 관통하는 총 길이 57㎞의 터널이다. 한니발도 나폴레옹도 그밖의 수많은 사람들도 힘겹게 넘어다녔던 알프스. 기존의 복잡한 기차와 차량의 터널들을 대체하는 이 장대한 터널의 개통식 날, 문화행사가 터널의 안과 밖에서 열렸다. 행사는 가히 충격의 실험 예술이요 거침없는 퍼포먼스였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표현하려는 주제! 그것은 한마디로 이 터널 공사에 온몸을 바친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이었다. 숙연하고도 장중한 연출이었다. 유튜브로 검색하면 다 볼 수 있는데, 보는 동안 당신의 입술은 굳게 다물어질 것이다. 우리의 경우라면 어떨까. 몸으로 노동한 사람, 그렇게 하다가 아차 잘못되어 죽어간 사람,..
월요일 아침, 몇몇 신문의 1면에는 500일 앞으로 다가온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축하하는 문화 공연이 펼쳐진다는 광고가 실렸다. 더불어 문화체육관광부의 보도자료에 기반한 관련 뉴스들도 실렸다. 그 광고와 기사들을 보면서, 아 정말로 평창올림픽은 큰일 나겠구나, 하는 깊은 우려에 사로잡혔다. 그 많은 행사에 참여하는 연예인, 엔지니어, 자원봉사자들의 노고야말로 귀한 것이지만 지난 8일 고척돔구장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G-500 페스티벌, K-pop 콘서트’ 행사를 비롯해 이달 말에 서울과 평창 일대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문화 행사가 일종의 ‘한류 관광’과 같아서, 얼핏 보기에 화려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공허한, 속 빈 군무로 그칠 공산이 커보인다. 왜 그런가? 새롭고 가치 있는 의미의 발견이 ..
오랜만에 묵직한, 모든 이의 가슴 밑바닥에 침전된 차마 잊고 싶은 기억들까지 긁어내는 영화를 보았다. 다큐멘터리 영화이고, 축구 영화이고, 오는 22일부터 파주와 고양 일원에서 열리는 제8회 DMZ 국제다큐영화제 출품작이다. 어느덧 8회에 이른 이 영화제는 다큐라는 형식을 통해 오늘의 세계가 겪고 있는 고통과 슬픔의 상흔들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들로 풍성하다. 그중에서 축구와 관련된 영화 3편을 관객에게 도움말을 주기 위해 미리 보았는데, 게으르게 만든 스포츠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잉된 감정’이나 ‘진부한 감동’과는 무관한, 애써 찾아가 볼 만한 수작들이었다. 그중 가장 짧은 8분짜리 미니 다큐 은 미얀마 양곤의 얀빠 수산시장 노동자들을 깊은 유머로 다루고 있다. 스페셜 원? 그렇다. 현재 맨체..
당신의 귀국길은 쓸쓸했습니다. 환영 인파는 고사하고 몇몇 사람들이 격려를 하는 정도였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은 날카로웠고 당신은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말끝을 흐리기도 했습니다. 낯선 모습, 무엇보다 당신 스스로 처음 겪어보는 풍경일 것입니다. 2008년에는 어떠했던가요? 당신은 베이징 올림픽 해단식의 기수로 장미란 선수와 함께 서울광장까지 퍼레이드를 했지요.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는 배드민턴의 이용대 선수와 함께 기수를 맡기도 했지요.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출국할 때나 현지에서 경기를 마쳤을 때나, 마지막 1500m를 포기하고 귀국했을 때도, 세상의 관심은 줄었고 또한 냉랭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새로운 각오를 다졌습니다. 리우 현지에서는 4년 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겠다고 했지요. 그러나 귀국길에 깊은 ..
88올림픽 직전에 나는 입대를 했는데, 그 뜨거웠던 여름에 수행했던 ‘중요 임무’는 올림픽 성화의 안전을 도모하는 일이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기 북부의 어느 국도로 올림픽 성화가 지나가는데 혹시라도 모를 ‘불순분자나 간첩’의 소행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막중한 임무’를 띠고 사병들은 보름이 넘도록 야산에 매복해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광활한 산야를 경계했다. 마침내 올림픽 성화 차량이 국도에 나타난 날, 그래도 임무라고 모두들 바짝 긴장했다. 그런데, 그 차량 행렬은 빠른 속도로 나타나서는 국도 저 너머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일쯤이야 기나긴 생애의 짤막한 에피소드로 그칠 노릇이지만, 부천시 고강동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비극의 기원은 상계동이다. 1980년대 상계동은 삶이..
“우리 사회가 합의하고 또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어떤 요소’가 한국 스포츠의 ‘어떤 상황’에 불일치하는지, 그것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인권학자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의 말이다. 이 말을 지난달 말, 어느 포럼에서 들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포럼의 주최 측은, 한국 스포츠의 전근대적이며 비인권적인 상황이 비단 스포츠 내부의 상황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퇴행적 현상과 맞물려 있다는 전제 아래, 이런 문제라면 응당 경청할 만한 탁견을 지닌 조효제 교수를 초청하였던 것이다. 조효제 교수의 발표와 그에 따른 여러 토론자와 참가자들이 주고받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포츠 내부의 인권적 상황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해결해나가야 한다. 감독이나 선배들의 지속적인 ..
2002년 가을, 부산아시안게임이 열리던 때 일이다. 일주일 넘게 아시안게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다가, 가을 햇살을 올려다볼 만한 틈이 생겨 통도사로 바람을 쐬러 갔다. 마침 통도사의 개산대제가 열렸다. 당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도 있었다. 그해는 대통령 선거도 있던 때라서 2002 월드컵의 인기에 파도타기를 한 정 후보는 여러 사람들을 이끌고 큰절로 들어섰다. 몇몇은 축구협회 임원들이었다. 그중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운동장에서 한평생을 보낸 자신이 정치인의 유세 행차에 따라나선 모양을 꽤나 난처해했다. 그랬는데, 스포츠 스타들을 정치의 병풍으로 삼는 일은 끝나지 않았다. 2008년 3월 말, 18대 총선의 동작을 선거구에 출마한 정몽준 후보는 축구협회의 김정남 울산 현대 감독을 비롯, 부산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