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촛불이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살리고 있다. 매일 드러나는 어처구니없는 국정농단은 분노를 넘어선 지 오래며, 그동안 궁금했던 국가사업의 파행 이유도 설명해 주고 있다. 동계올림픽 준비과정에 대한 궁금증도 이제야 대략 풀려가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권유한 도시 간 국내 시설을 활용한 분산 개최, 일본과 북한의 동계시설 연계와 공동 개최를 통한 세계적 주목의 기회 등 그동안 진행되던 논의가 더 진전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지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작업과 함께 동계올림픽을 위한 준비도 해야 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지역의 재생, 재개발뿐만 아니라 도시가 세계적으로 재평가받는 계기가 됐다. 올림픽 이후 방문하는 관광객은 두 배로 증가했다(나고야학원대학 종합연구소, 20..
살인적인 경쟁 도시를 살아가는 개인들은 나약하기 그지없는데, 어찌하여 그들은 광장으로 나가서 촛불을 들어 인간적 위엄을 보여주는가. 2만이 20만이 되고 200만이 되어 촛불 광장에 모이는 것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 그 이상의 어떤 사회적 근거와 심미적 갈망에 의한 것이 아닐까. 매사가 굴욕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이 대도시는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에게 노골적인 협박과 묵시적인 협력을 강요한다. 그래도 옛날보다 경제 규모가 커졌고 일상의 기본적인 도구 차원에서는 확연히 발전한 게 사실이다. 저 가난했던 시절의 수도나 위생 시설은 오늘 제법 편리하고 말끔하게 변했다. 그러나 옛날의 재래식 화장실에서 벗어나 오늘의 깔끔한 위생 시설 위에 잠시 앉았다 해서 사람이 세상과 맺는 불평등하고 불안한 ‘관..
해설위원으로 유명한 신문선 명지대 교수가 제11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선거에 단독 출마했으나 23표 중 5표를 얻는 데 그쳤다. 반대는 17표, 무효는 1표였다. 연맹은 사임 의사를 밝혔던 권오갑 전 총재 체제를 당분간 유지하게 됐다.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이번 선거의 의미와 후폭풍은 상당하다. 한국 프로축구는 매 경기 헌신하는 감독과 선수들 그리고 단지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감각과 쾌락과 가치를 위하여 1년 내내 스탠드에서 함성을 지르는 팬들의 열망에 비해, 그 현실적 운영은 다소 불합리하고 그 재정적 기반은 취약하다. 따라서 한국 프로축구의 미래 발전 가치 또한 불투명하다. 프로축구의 본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 이를테면 과연 프로축구가 구매를 유발시키는 경쟁력 있는 문화 ..
올봄, 그러니까 5월31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법무부와 업무 협약을 맺고 양 기관의 책임자들, 즉 구본능 KBO 총재, 김현웅 법무부 장관, LG 트윈스 신문범 사장, KIA 타이거즈 박한우 사장 등이 등장하는 행사를 잠실야구장에서 진행했다. 이 행사와 그에 따른 여러 자료들을 보면서, 나는 피할 수 없는 자괴와 냉소에 사로잡힌 적 있다. 이름하여 ‘법질서 실천운동과 클린 베이스볼 문화 확산’이 그것인데, 이 얼마나 관변적이고 비스포츠적인가.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짜릿한 감각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프로 스포츠인데 그 대표 종목인 프로 야구의 신성한 그라운드에, ‘법질서 확립’의 국가 대변자인 법무부 장관이 들어서고 야구의 수장들이 그 옆에 서서 ‘클린 베이스볼’을 외치는 모습이란 실로 ..
22개 체육단체 5만여명이 시국성명서를 발표했다. 스포츠와 연관된 국가적 사안은 물론 체육계 현안에 대해 좀처럼 성명서를 내는 데 인색했던 22개 체육단체의 성명서라서, 한편 반갑기도 하지만 동시에 놀랍다는 인상마저 든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체육학회와 11개 분과 학회 4만872명에 더해 한국체육단체총연합회 11개 단체 1만837명 등 총 22개 단체 5만1709명의 성명서라고 하는데, 이 엄청난 숫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은 시절이 하수상하여 많은 사회단체들이 성명서를 내고 있는데, 최소한 성명서의 핵심 내용을 미리 알리고 단체 메일이나 문자 서비스를 통해 동의 여부를 확인한 후 발표하는 게 상례다. 과연 5만여명에게 그러한 절차를 거쳤는지 의문이다. 애초에 학회나 단체에 가입할 때 특정한 ..
“일 년 중에 가장 슬픈 날은 야구가 끝나는 날이다.” LA 다저스를 두 차례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왕년의 명장 토미 라소다가 한 말이다. 한국의 야구팬들에게 ‘박찬호의 양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올해 한국의 야구팬들에게 더 슬픈 날은 야구가 끝난 닷새 뒤였다. 올해의 야구는 지난 2일 두산 베어스가 NC 다이노스를 4연승으로 몰아치고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하며 끝났지만, 그 여운이 식기도 전인 7일에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이 프로야구 선수들의 도박과 승부조작에 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의 발표 자체가 새로울 것은 없었다. 도박과 승부조작은 적어도 1년 넘게 야구계를 시끄럽게 만든 화제였다. 작년 한국시리즈를 코앞에 두고 핵심 투수 3명..
전반전과는 완전하게 다른 후반전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은 우즈베키스탄전을 대비해 선발 라인업과 전술적 포메이션에 변화를 줬다. 하지만 전반전은 실패였다. 얼핏 보기에는 점유율이 높고 경기를 지배한 것 같지만, 상대를 괴롭게 하는 지배력이 아니었다. 전반전은 우즈베키스탄이 원하는 대로 경기가 흘러갔다. 우리 선수들의 움직임은 너무 평범했고, 패스의 질도 매우 떨어졌다. 반대로 후반전의 공격 패턴은 전반전과는 전혀 다른 날카로움이 있었다. 전반전과 같은 평범함을 벗어나 우즈베키스탄을 흔들었다. 그 중심에는 교체 투입된 김신욱이 있었다. 김신욱의 투입이 많은 효과를 봤다고 할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전반전에 수비들이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공간을 자유자재로 조절했는데, 후반전에 김신욱이 투입되자 김신..
이러려고 스포츠를 그토록 사랑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운 나날이었다. 세간의 풍자에 운율을 맞춰 말의 유희를 즐기는 게 아니다. 스포츠를 사랑하였고 그래서 그것에 담긴 쾌락의 비밀과 욕망의 정체를 알고자 하였고, 그래서 이 비틀리고 일그러진 한국 사회에서 운동을 해온 사람들을 존경하고 사랑해왔는데, 지금처럼 무참하게 상심한 적은 없다. 최순실 때문이냐고? 일단은 그러하다. 들려오는 추문들은 승마와 빙상과 올림픽이 최순실과 정유라를 중점으로 하여 팽팽하게 돌아가는 총체적 비리인 듯 보인다. 차은택 때문이냐고? 그 점도 물론이다. 갑자기 스포츠 현장에 등장하여 뭐든 엮을 수 있을 것 같은 ‘융합’이라는 갈고리로 문화와 스포츠의 미래적 가치를 어두컴컴한 비리의 구덩이로 처넣어 버린 행각에 깊은 자괴감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