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못회전의 방”을 뒤지니 허난설헌에 관한 글이 네 편이 됩니다. 이 달 초순에는 모 잡지사의 부탁으로 허난설헌의 삶을 25매 분량 원고에 우겨넣기도 했는데요, 흩다가 우겨넣으니, 아쉽습니다. 아쉬운 길에 허난설헌이 나고 죽을 때까지를 죽 써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나사못회전의 방”에 오른 허난설헌 관련 글. http://theturnofthescrew.khan.kr/27 http://theturnofthescrew.khan.kr/18 http://theturnofthescrew.khan.kr/17 http://theturnofthescrew.khan.kr/11 이름, 자, 호, 그리고 시집을 남긴 여성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은 한국 문학사에서 손꼽히는 여성 시인입니다. 그가 살다 간..
이건희의 ‘정직’에 정몽구의 ‘준법’에 정운찬의 ‘동반성장’에 안상수의 ‘민주주의’에 이명박의 ‘공정’에 ... 그리고 최철원의 침묵에 부칩니다. 오늘 이건희, 정몽구, 정운찬, 안상수, 이명박, 최철원 따위 고유명사를 부르게 되는군요. 제 문학을 어렵게 지키며 살다 간 시인에겐 몹시 미안하지만... 그러나 기어이 이옥(李鈺, 1760~1813)의 연작시에서 하나 뽑습니다. 儂作社堂歌 내가 부른 사당가社堂歌에 施主盡居士 시주는 모두 중놈들 唱到聲轉處 노랫가락이 절정에 이르자 那無我愛美 “나무아미타불!” 이 시의 출처는 이옥의 연작시 (“거리의 노래” “길거리 이야기”쯤으로 새기면 됩니다) 가운데서도, 창기들의 노래를 모은 ‘탕조宕調’입니다. 시는... 보시는 대로입니다. 더하고 뺄 것 없이 딱 이렇습니다..
지금 슈베르트의 피아노 독주곡 을 듣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입니다. 그리고 하필 이 시디의 대문 노릇을 하는 이미지는 보시는 것처럼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그림 입니다.낭만, 낭만주의라고 할 때, 쉬이 떠올릴 만한 이미지가 바로 와 같은 형상이 아닐지요. 알 수 없는 그리움, 떠나기, 사람을 지핀 환상, 길 위의 객수, 고독, 고독한 나그네의 마음속... 낭만, 낭만주의 기추는, 우선은 이런 것들입니다. 낭만, 낭만주의란 불만과 우울만으로는 아무래도 온전히 서기 어렵습니다. 지난 글에 소개한 임제 또한 여행에 취해 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그러나 임제의 시대는 와 같은 형상을 남기기는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 시대에는 자연이..
임제(林悌, 1549~1587). 백호白湖라는 호 또한 유명한 문인입니다. 조선 선조 때 급제해 벼슬길에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굳이 높은 벼슬아치가 되겠다고 발버둥을 친 적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 시조는 임제가 평안도사平安都事로 부임하던 길에 황진이의 묘를 찾아가 쓴 작품입니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었는다 홍안紅顔을 어디 두고 백골白骨만 무쳤느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알고 지내던 매력적인 한 여성의 죽음이 얼마나 원통했던지, 그는 이렇게 곡진한 애도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에, 아니나 다를까, 논란이 들끓습니다. 기생한테 이런 노래를 부치다니, 양반의 체통을 떨어뜨렸다고. 논란이 일자 임제는 거뜬히 벼슬을 그만두고 맙니다. 벼슬길에서 거뜬히 여행길로 제 갈 길을 바꾼 ..
어느새 비랑 우박이랑 진눈깨비가 한반도를 오락가락합니다. 비, 우박, 진눈깨비 들이 어느새 눈밭에 얼음밭까지 만드는 풍경, 그게 바로 혜초(慧超, 704~787[추정])가 노래한 “冷雪牽冰合”입니다. 습기가 한 번 언 뒤 어김없이 찾아오는, 쩡하기도 하고 매콤하기도 한 날씨를 떠올리매 혜초가 파미르 고원 횡단을 앞두고 쓴 시가 오늘 다시 삼삼합니다(http://theturnofthescrew.khan.kr/33 참조). 혜초의 여정은 중국 광동[해로 출발지]―남중국해~인도차이나반도의 해로―오늘날의 동인도[인도 도착지는 미상]―쿠시나가라를 비롯한 불교 성지―페르시아―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과 러시아 접경(카불, 바미얀 포함)―파미르 고원―구자龜玆(쿠차, 당제국의 안서도호부 소재지)에 걸친 것으로 추정됩니다. ..
冷雪牽冰合 찬 눈은 얼음과 뒤섞이고 寒風擘地裂 찬바람은 땅이 찢어져라 부는구나 巨海凍墁壇 넓디넓은 바다는 얼어 단壇을 펼쳐 놓았고 江河凌崖齧 강물은 제멋대로 강기슭을 물어뜯는다 龍門絶瀑布 용문에는 폭포마저 끊기고 井口盤蛇結 우물 아가리는 뱀이 도사린 듯 얼어붙었다 伴火上陔歌 불을 들고 층층이 올라가 노래 부르지만 焉能度播密 어떻게 파밀(파미르 고원)을 넘어갈까? 눈, 얼음, 땅을 찢을 듯 부는 거센 바람, 제멋대로 강기슭을 물어뜯는 강물, 얼어 끊긴 폭포, 도사린 뱀 모양으로 얼음이 맺혀 버린 우물 아가리, 그리고 어두운 길 밝히려 불을 들고 한 층 한 층 오르고 또 올라 만나는 파미르... 어때요, 쩡한지요? 매콤한지요? 위 시는 혜초(慧超, 704~787[추정])가 자신의 여행기 안에 남긴 시입니다...
1576년에 태어나 1649년에 돌아간 조선 사람 조위한(趙緯韓, 호는 소옹素翁, 또는 현곡玄谷)은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아간 뒤 호조 참판까지 지냈으니 당시 조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았다고 하겠지요. 그런데 ‘1576~1649년’ 사이에는 임진왜란·정묘호란·병자호란이 자리합니다. 광해군 때 영창대군이 죽어 나간 권력 다툼인 계축옥사癸丑獄事도 자리합니다. 조위한은 왜란 때 종군했고, 계축옥사에 엮여 관직에서 쫓겨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조의 쿠데타 이후에 다시 등용되고서는 이괄의 난도 겪었고, 호란 때 다시 종군합니다. 이 땅에서 정말 여러 일을 겪고 돌아간 셈입니다. 그나마 그에게는 물러나 쉴 데는 있었습니다. 외가의 인연이 있었던 전라도 남원이 그곳입니다. 쉬고 싶을 때, 정말 떠밀..
“汝宗葬于是, 汝安歸之. 惟永寧!” “네 핏줄들이 여기 묻혀 있으니 너도 마음 놓고 돌아가렴. 길이 편안하기를!” 위 한 줄은 한유(韓愈, 768~824. 자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 시諡는 한문공韓文公)가 사십대에 열두 살짜리 딸 한나韓挐를 저세상에 먼저 보내고, 묘구덩이에 부친 마지막 이별의 말입니다. 자신이 딸 한나를 잃게 된 사연과, 한나를 가매장했다가 가족묘지로 이장한 사연까지 기록된 글 의 핵심인 ‘명銘’이 바로 이 한 문장이고, 문장 전체의 맨 마지막 문장입니다. 한유 하면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를 떠올리시겠지요. 흔히 동아시아 한문문학사에서, 고문운동의 대표자 여덟을 꼽을 때 한유는 그 맨 앞에 자리하는 인물입니다. 한유는 당나라의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송나라의 구양수歐陽修, 소순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