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초반, 방송에서 잘리기가 부지기수였던 흙수저 아이돌 그룹인 방탄은 소수의 한국 소녀 팬과 아시아 지역 일부 소년 팬과 연결접속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과 아시아의 소녀 팬으로 이루어진 영토를 벗어나(탈영토화) 미국과 유럽 대륙의 수많은 팬과 연결접속, 차원과 복잡도가 다른 새로운 연결접속을 만들어냈다(재영토화). 방탄이 한국과 아시아에서 벗어나 미국과 유럽의 팬들과 연결접속한 것을 단순히 팬의 범위가 확대되었다는 의미로만 볼 수는 없다. 이질적인 전 세계 팬들과의 연결접속이 방탄의 성공의 의미를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시켰다.” 들뢰즈 연구자인 이지영은 (파레시아)에서 방탄소년단이 팬덤인 아미(ARMY)와의 연대와 실천을 통해 이루어내고 있는 놀라운 사회, 문화적 변화와 미학적 변화를 ‘방탄현상’이..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가 “안정되고 글로벌 금융위기도 가장 먼저 탈출해 번영을 이뤘던 시기”라고 강조한 MB(이명박) 시절에 출판시장의 트렌드는 ‘셀프 힐링’ 단 하나였습니다. 경제적 양극화(불평등)가 갈수록 심화되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우울증 환자가 속출했던 그 시기에 국민들은 오로지 스스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급기야 2012년에는 ‘멘붕(멘탈 붕괴)’에 빠져들었지요. 이 시기에 소설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반대세력을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둘 제거해나가던 박근혜 정부 시절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가끔은 소설이 팔린 적이 없지 않습니다. 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이 크게 팔려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경천동지할 일들이 날마다 터지는 바람에 정말로 소..
소명출판은 지난 2월24일 창립 20주년 행사를 가졌습니다. 출판사들은 크든 작든 잡화품 가게처럼 다양한 책을 내놓게 마련인데 1600여종을 펴낸 소명출판은 한국문학이라는 외길만 걸었습니다. 국문학자가 소명출판에서 책을 펴내는 것이 영광이라는 분위기여서인지 기념식장에는 유명 국문학자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잔칫집이면 즐겁고 유쾌해야 했지만 박성모 대표의 인사말부터가 무거웠습니다. “출판노동자들이 온당한 예우는 아닐지라도 우리 사회에서 평균적인 대우를 받느냐 하면 대개는 그렇지 못합니다. 20년을 버틴 이른바 한 출판사 대표라는 위치에 있는 저 자신부터 이 출판노동자로서 온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를 생각해본다는 말에서 그가 얼마나 힘겹게 이끌어왔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축사를 한 분들도 앞으로 50년 ..
“사기의 첫 번째 공식은 피해자의 욕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보이스 피싱처럼 불안감으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사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기는 피해자의 욕심을 이용한다. 사기꾼들의 속임수란 것은 실상 제비가 물어온 박씨에서 고대광실 기와집이 나온다는 것만큼 허무맹랑하다. 맨정신으로 들으면 누구나 말도 안 되는 사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배운 논리와 이성을 조금만 사용하면 손쉽게 물리칠 수 있다.” “선의는 자신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기도 마찬가지다.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람들을 노린다. 이것이 사기의 두 번째 공식이다. 그러니 설마 자기같이 어려운 사람을 등쳐먹겠느냐고 안심하지 마시라!” ..
일곱 명의 작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성이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다산책방)의 표제작인 조남주의 ‘현남 오빠에게’는 주인공 여성이 10년을 만나며 사랑을 나눈 남자 친구인 현남 오빠의 청혼을 거절하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내내 존댓말로 이어지던 편지는 마지막에서 갑자기 어조가 바뀌며 “오빠가 나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 애정을 빙자해 나를 가두고 제한하고 무시해왔다는 것. 그래서 나를 무능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질타합니다. 그 편지는 이렇게 끝납니다.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우리 세대는 전쟁을 겪지 않았다. 가난했다. 나는 두어 번 크게 아팠지만 행운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잘못된 선택에도 내 삶은 크게 망가진 적이 없다. 배우지 못한 아버지 밑에서 청운동이란 좋은 환경에서 살았고, 상업고등학교를 나와서 좋은 회사에서 일했다. (…) 외환위기 때 국가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기업이 도산해 실업자가 쏟아졌지만 우리 회사는 탄탄해서 안전했다. (…) 어쨌든 살면서 사기꾼을 만나지 않고, 폭력이나 재난에서 내 목숨과 재산을 지켜냈다. ‘그만하면 잘 살지 않았는가!’ 앞으로 남은 세월은 남을 도우며 살고 싶다.” 장석주의 (yeondoo)에 등장하는 56년생인 이 남자의 아버지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전립선암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이 사람은 두 아들에게 25세..
빅데이터, 공유경제, 가상·증강 현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메이커 운동 등 첨단 어벤저스급 기술들의 총합인 ‘4차 산업혁명’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기술들을 서로 결합해 놀라운 것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바람에 내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신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5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 후보자들은 4차 산업혁명이 ‘미래의 먹거리’가 될 것이라며 일제히 정책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그 경쟁에서 승리한 문재인 정부는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구성해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실천의지를 보여줬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메시아’가 우리를 정말 구원해주고,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이 다시 새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기술들이 제각각 수백만명의 ‘..
-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나는 백인이긴 하나, 북동부에 거주하는 미국의 주류 지배 계급의 와스프는 아니다. 나는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의 핏줄을 타고 난데다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수백만 백인 노동 계층의 자손이다. 우리에게 가난은 가풍이나 다름없다. 우리 조상들은 대개 남부의 노예 경제시대에 날품팔이부터 시작하여 소작농과 광부를 거쳐 최근에는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았다. 미국인들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힐빌리, 레드넥, 화이트 트레시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들을 이웃, 친구, 가족이라고 부른다.” (흐름출판)의 저자인 J D 밴스는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에 속하는 오하이오 철강 도시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밴스의 엄마는 전도유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