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시장이 심각하게 얼어붙고 있습니다. 과잉생산이 심각한 제조업이 위기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출판시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에 출판의 ‘명가’로 군림하던 출판사일수록 직원과 신간 종수를 줄이며 겨우 버텨 나가는 상황입니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과거에 ‘골목’을 지키며 대장노릇을 할 때는 잘 하면 호가호위도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글로벌 상상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른바 전 세계를 압도하는 창조력이 발휘된 상품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입니다. 인건비를 비롯한 제반 비용은 증가하는데 책값은 올리기 어렵습니다. 경제는 조금이나마 성장한다고 하는데도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그랬습니다. 모타니..
수도 있다. (…) 대학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만인의 관심을 받던 남학생, 또는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던 여학생을 20년 후에 만나면, 냉소적인 알코올 중독자나 지친 모습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는 중산층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방향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경제적 여유도 있고 탄탄한 자격증도 있는 개인이 오늘날 안전망도 없으며 언제라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느끼는 까닭은, 자립하려는 노력과 공동체적 연대감 사이의 균형이 무너졌기”에 중산층은 단순한 분열의 차원을 넘어 갈가리 찢어졌다는 것이지요. 일본의 예를 볼까요? 일본은 대다수 기업이 ‘잃어버린 20년’의 긴 터널 속에서 인건비를 철저하게 삭감하면서 이익을 확보하는 경영 전략을 수행했지만 노..
보름밖에 남지 않은 2015년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은 80만부를 넘긴 (인플루엔셜)입니다.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아들러의 가르침을 철학자인 기시미 이치로와 프리랜서 작가인 고가 후미타케가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이 책은 올해 내내 베스트셀러 1위를 달렸습니다. 이제 기시미 이치로의 책들이 원서에도 없는 ‘용기’라는 이름을 줄줄이 달고 번역 출간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1월21일에 발표한 한 글에서 이 책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은 아들러의 주장이 ‘사토리(득도) 세대’의 의식구조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썼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성적보다 자율성을 강조하는 ‘유토리 교육’을 받은 이 세대는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을 이용한 ‘스마트폰 세대’이기도 합니다. ..
사람들은 교육이야말로 성공의 열쇠이며 능력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우수한 교육을 받고 학업 성취도가 뛰어나면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고 그 덕분에 한 단계 높은 계층으로 올라서고 있다고 강력하게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은 능력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스티븐 J 맥나미와 로버트 K 밀러 주니어, 사이)의 저자들은 이런 능력주의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능력보다 부모의 배경, 학교와 교육 시스템,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부의 상속, 특권의 세습, 차별적 특혜, 사회 구조적 변화 등 비능력적 요인이 능력을 이겨버리는 세상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오히려 학교와 교육은 “불평등한 삶을 대물림하는 잔인한 매개체..
지난주에 저는 지방 여러 곳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이동거리가 길어서 힘들었지만 무척 뿌듯했습니다. 주로 40~50대의 사람들이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제 강의를 열심히 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60~70대의 남성들도 다수 참여해 열심히 들어주시는 모습에 당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강연투어에서 저는 한 지방 명문사립고에서 성적이 매우 우수한 학생들이 ‘스카이’에 원서 내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는 이야기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비싼 돈을 들여 서울 유학을 해도 취업도 되지 않는 마당에 무리할 필요 없이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진학해 부모의 부담이라도 덜어주겠다고 했다더군요. 가족들과 하루라도 더 같이 지내며 함께 책을 읽어보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하더군요. 2010년 3월에 창간되어 6년째에 ..
교육부는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고전 읽기를 강화하는 인문소양교육에 중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지난 6월 초 열린 교육부 주최의 ‘전국 초·중등 인문소양교육 포럼’에서 ‘대중 인문학과 대학 인문학’에 대해 발표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발표자는 요즘 교사들의 중·고등학교 때 성적이 너무 좋은 것이 문제라는 지적을 했습니다. 정년이 보장되는 교사라는 직업이 인기를 끌다 보니 우수한 학생들이 교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교사들이 학창시절에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를 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런 교사들이 교실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만 챙기고 있는 것이야말로 문제라는 지적을 하면서 성적만으로 교사를 뽑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일제고사를 도입했습니다. 단순히 학업성취도를..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hell·지옥)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진규·유토피아)라는 자기계발서가 등장할 정도로 요즘 젊은이들은 미래의 꿈을 하나둘 접어야만 했습니다. OECD 가입국 중에서 자살률, 청년자살률, 노인자살률, 노인빈곤율이 1위인 나라에서 극단적으로 내몰리는 젊은이들이 ‘멘붕’(2012년)에 이어 ‘헬조선’이라는 말을 만들어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입니다. 인문학자인 김경집은 (더숲)에서 “밝은 미래를 열어줄 결정적 열쇠”인 수평사회의 저울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말합니다. “여기 저울이 있다. 저울은 무게를 재고 값을 정한다. 저울은 판단과 측정의 기준이고 객관성과 보편성의 잣대가 된다. 저울은 수평을 유지했을 때 제 기능과 역할을 완수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앞의 ..
세계 경제의 불황을 떠올릴 때마다 늘 유로화의 위기가 함께 거론됩니다. 최대 진원지는 그리스입니다. 재정위기가 시작된 2010년부터 긴축으로 인한 실업과 경제난에 시달리던 그리스 정부는 결국 자체 통화 도입이라는 ‘그렉시트(Greek+Exit,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하겠노라는 벼랑 끝 전술을 벌이면서 국민투표에 부쳤습니다. 그리스 국민들은 구제금융 긴축 반대(OXI)에 60% 이상의 표를 던졌습니다. 그리스 국민들은 잠시 승리감에 도취됐습니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는 “그리스 서민층과 청년들의 승리”라는 현지 분위기를 전달했습니다. 선거가 끝난 직후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만났지만 그리스가 얻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승리가 아니라 처절한 패배였습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