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니시카와 미와의 장편소설 이었다. 지난 2월 개봉한 동명 영화의 원작 소설로,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를 잃은 인기 소설가(사치오)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몇 번이나 울컥했다. 아예 책을 덮고 잠시 울기도 했다. 여운이 길게 남는 소설이었다. 자극적인 묘사도, 극적인 반전도 없이 여러 등장인물이 1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읽는 내내 세월호 이후의 현실이 계속 겹쳐 생각났다. 사실 소설과 현실은 거의 겹치는 장면이 없는데도, 갑작스러운 비극 이후 남아있는 자들이 살아내야 하는 삶의 구체성이 감정선을 건드렸다. 겨우내 광장에서 외쳤던 ‘박근혜는 내려가고, 세월호는 올라오라’..
1720년 9월27일 조선 숙종의 사망 소식을 청에 알리기 위해 파견된 연행사의 정사 이이명, 부사 이조, 서장관 박성로, 아버지 이이명을 따라온 이기지가 북경의 천주교 남당을 방문한다. 포르투갈 신부 수아레즈, 마갈렌스, 카르도소, 그리고 독일 선교사 쾨글러가 이들을 정중히 맞았다. 이기지는 1720년 7월27일 출발부터 1721년 7월1일 귀국에 걸친 일지를 기록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기지는 일행이 돌아가고도 홀로 남아 서양인과 수다를 떨었다. 간식도 나왔다. 노란 빛깔이 인상적인 과자, ‘계란병’으로 기록된 과자였다. 이기지에 따르면 “부드럽고 달콤하며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풀려 정말 색다른 맛이었다”. 만드는 법을 물으니 설탕, 계란, 밀가루를 섞어 만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락없는 스펀지케이크..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되풀이되는 로맨스의 공식처럼 누구나 현실의 누추함에서 나를 구원해줄 멋진 이성과의 사랑과 결혼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신분과 인종, 문화 차이 등을 극복하고 결혼에 이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즉 어떤 사회에서든 모든 것을 극복하거나 초월하는 열정적 사랑이 결혼의 합당한 관습으로 인정된 적이 없다는 것이 사랑 연구자의 연구 결과이다. 과거 서양과 동양을 막론하고 결혼계약의 기초가 된 것은 경제와 신분을 둘러싼 가족 간의 거래이지 ‘사랑’은 아니었다. 계급과 부의 결속이 아닌, 개인의 의사에 바탕한 ‘자유연애’가 결혼의 조건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들어서이며 우리의 경우 이광수의 이 나온 뒤로도 지난한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젊은이들은 최초의 근대인들이 환..
새벽 5시 따스한 우리 집 바깥에서 좁은 계단을 바삐 오르내리는 신문 배달부의 발소리가 들린다. 그는 몇 시에 일을 시작했을까 생각하는 사이 동이 튼다. 베란다 밖에선 버스가 정차했다가 출발하며 오늘의 순환을 시작한다. 오늘은 반올림 스타일로 머리를 묶어달라는 딸아이와 한번만 더 놀고 씻겠다는 둘째를 달래 안락한 집을 나선다. 큰아이는 학교로, 막내는 어린이집으로 가기 위해 나와 함께 차에 올라타고 아파트 정문을 지난다. 흰머리만 조금 남아 있는 경비원에게 인사까지 하고 나면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던 세계에서 나와 공허한 명랑함이 깃든 도시로 들어선다. 활기찬 공기에 어쩐지 한기가 서려 있다. 흰 장갑을 끼고 신기한 것에 올라탄 ‘야쿠르트’ 아주머니, 막 지나가는 지하철, 택배 오토바이를 보며 환호하는 ..
배우 김민희와 영화감독 홍상수가 서로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입을 열었다. 시사회장에서 받은 기자의 질문에 “저희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라고 답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축복받지 못했다. ‘불륜’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홍상수는 부인과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고, 그에 따라 김민희는 아직 유지되고 있는 남의 가정에 끼어든 불청객이 되었다. 대리운전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나는 함께 차에 오른 남녀가 부부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눈이 생겼다. 유심히 그들을 관찰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겉보기에는 모두가 평범한 부부처럼 보이지만 우선 앉는 자리부터가 다르다. 부부는 자연스럽게 남편이 조수석에, 아내가 뒷좌석에, 그렇게 한 사람이 굳이 뒤통수를 보며 따로 앉는다. 가..
미국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 ‘우렛소리’(, 현대문학, 2015)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이런 하찮은 것 하나 때문에! 고작해야 나비 한 마리인데!” 2016년에 있었던 일련의 사태부터 2017년의 탄핵 인용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돌이켜보다 문득 저 대목이 떠올랐다. 처음에 일이 불거졌을 때, 박근혜를 비롯한 청와대 비서진은 ‘하찮은 것’의 입만 틀어막으면 될 거라 낙관하거나 ‘고작해야 나비 한 마리’이니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알다시피 나비효과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정운호에서 출발한 법조 비리는 우병우와 정유라를 거쳐 소용돌이가 되었고 최순실로..
종종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다’는 규범에 따라 행동한다면 세상은 훨씬 평화로운 곳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개인마다 살아오는 동안 쌓아온 경험이 다르기에, 역지사지라는 단순명쾌해 보이는 윤리적 태도를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선별되고, 이입의 강도도 사안별로 달라진다. 역지사지를 더욱 폭넓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내가 경험하지 못했기에 모를 수 있는 다른 이의 입장이 있음을 고려하고, 그것을 알기 위해 타인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고백들을 경청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피로할 수도 있는 과정이다. 팍팍한 ‘헬조선’에 살면서 부정적인 감정으로 출렁이기 쉽다는 것 역시 역지사지를 실천하기 어려운 ..
1만485. 최근 일주일 동안 걸어다닌 결과의 평균이다. 날이 추워서, 날이 더워서, 비가 와서, 피곤해서…. 각종 핑계를 대며 하루에 5000보 걷기도 힘들던 ‘귀차니즘’은 사라지고, 틈만 나면 ‘좀 걷다 올까’ 궁리하는 나를 발견하는 요즘이다. 갑자기 부지런해진 이유는 단 하나, ‘포켓몬고’ 게임 덕분이다. 조금이라도 덜 걷기 위해 꾀를 내던 내가 자발적으로 더 먼 거리를 걷기 시작하다니 놀라운 변화다. 시작한 지 한 달도 안돼 100㎞를 걸었다는 메달을 받았으니, 짧은 기간 동안 내 일상과 습관을 완전히 바꿔버린 셈이다. 사실 나는 포켓몬 세대가 아니다. 피카츄나 꼬부기 정도만 알았고, 포켓몬 애니메이션도 거의 안 봤다. 그런데 왜 이렇게 포켓몬고를 열심히 하고 있는 걸까? 심지어 게임을 즐기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