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 중국전문가 춘추시대 진나라 영공은 한때 개인의 향락을 위해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동원하여 9층짜리 호화롭고 거대한 건물을 짓게 했다. 누구든 이 일과 관련하여 이러쿵저러쿵 말하면 죽이겠다는 무시무시한 엄포까지 놓았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완공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신하들은 영공의 기세에 눌려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순식(荀息)이란 대신은 이런 상황을 그냥 넘길 수 없어 영공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순식이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던 영공은 활에다 화살을 팽팽하게 매겨놓고는 순식을 기다렸다. 영공을 만난 순식은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대왕, 제가 대왕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재미난 재주를 하나 보여드릴까 합니다”라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순식의 말에 영공은 마음을 풀었다. 순식은 싱글벙글 웃으..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2일 MBC 파업사태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그는 이날 한 행사에 참석한 뒤 기자 질문을 받고 “파업이 징계사태까지 간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라며 “노사가 서로 대화로 슬기롭게 잘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방송사들의 연대파업이 시작된 이래 견해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장 먼저 파업에 들어간 MBC는 이날로 파업 145일째였다. 박 의원은 이전에도 방송 파업과 관련해 수차례 취재진의 질문을 받았지만, “나중에 말씀드리겠다”며 답변을 미뤄왔다. 그러나 오랜 침묵 끝에 나온 견해 표명치곤 내용이 빈약했다. 그는 “(파업이) 장기화되면 결국 가장 불편하고 손해 보는 것이 국민이 아니겠느냐”며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노사 간에 빨리 타협하고 대화해서 정상화되기..
장훈 | 중앙대 교수·정치학 필자의 전공이 정치학이다보니, 요즘 이런 인사를 종종 받는다. (큰 선거가 두 차례나 있는 해이니만큼) “올해는 많이 바쁘시겠어요?” 격려의 뜻도 담겨 있지만, 때로는 우리 현실정치에 대한 불만과 실망을 담은 인사이기도 하다. 이렇듯 싫든 좋든 정치학자들은 현실정치와 일정하게 연관되게 마련이다. 아주 멀리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경우에서부터 아주 가까운 경우에 이르기까지. 어떤 형태로든 관련을 갖게 마련인 정치학자들과 현실 정치인들 사이의 관계는 올해처럼 선거가 있는 해에는 “기묘한 역전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평소의 보수적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정치인들은 선거의 해에 들어서면 평소보다 훨씬 변화 지향적이고 과감해지기조차 한다. 제도 변화가 가져오는 부작용이나 실현가능성은..
새누리당의 당원명부 유출 사건이 한 꺼풀씩 의혹을 벗어가고 있다. 당원 220만명의 인적사항과 휴대폰 번호 등 개인 정보가 담긴 명부가 4·11 총선을 앞두고 공천 경쟁을 벌이던 새누리당 예비후보 8명 내외에게 넘겨졌고, 2명이 공천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한 명은 당선됐으나 다른 한 명은 본선에서 야당 후보에게 낙선했다고 한다. 지난 3월에 외부로 유출된 명부가 총선의 공천 과정에서 당원 공략에 활용된 방증들이 아닌가 싶다. 부정경선 시비가 불가피해지는 국면이다. 여당의 고위 관계자는 어제 오후 “당원명부를 건네받은 인사 2명 중 한 명은 낙선했으며 나머지 한 명은 국회의원이 됐다”면서 “다만 당선된 국회의원은 내부 경선을 거치지 않고 전략공천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만 해도..
당원명부 유출 브리핑하는 박민식의원 대검찰청 산하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이 저축은행 비리 사건에 대한 3차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영업정지된 4개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처리가 핵심이다. 검찰은 거액의 고객 예금을 빼돌려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붙잡힌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을 비롯해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윤현수 한국저축은행 회장, 김임순 한주저축은행 대표 등을 기소했다. 1·2차 수사결과까지 포함하면 모두 83명을 재판에 넘겼다고 한다. 그런데 43쪽에 달하는 검찰의 발표자료를 보면 의문이 생긴다. 엄청난 액수의 부실대출과 횡령이 이뤄졌는데도 이렇게 조성된 자금이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검찰은 “불법자금의 사용처를 추적해 정·관계 로비 등의 범죄를 척결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
전병역 정치부 기자 지난해 6월1일 북한 국방위원회로부터 메가톤급 폭로가 날아들었다. 5월 중국 베이징에서 남측이 비밀접촉을 하면서 ‘돈가방’을 건넸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부실하고 미숙한 대북 관리를 상징하는 단면으로 남북 관계사에 길이 남을 오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동부 장관에 이어 청와대 2인자였던 이명박 정부의 공신인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선을 넘었다. 19일 한 종편방송에서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가진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의 비밀회담 내용을 공개해버렸다. 노동부 장관 시절 김양건을 여러 차례 만나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양해각서(초안)에 서명했고, 북측이 국군 포로와 납북자 일부를 송환하는 대가로 남측이 경제지원을 약속했다는 게 요지다. 그런 그의 입을 두고 뒷말이..
하승수 | 변호사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인 문재인씨가 본격적으로 비전과 정책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그가 제시한 비전은 4대 성장전략이란 것이다. 분배와 복지를 강화하는 ‘포용적 성장’, 문화혁신과 교육혁신을 통한 ‘창조적 성장’, 화석연료 시대를 마감하고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생태적 성장’, 집단협업, 개방형 혁신, 협동생태계를 활용하는 ‘협력적 성장’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솔직히 실망스럽다. 세계적으로 성장주의에 대한 회의가 퍼져가고, 더 이상 경제성장에 집착하는 것이 사회구성원들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상식이 되고 있는데 문재인씨는 여전히 ‘성장’에 초점을 맞춰 얘기를 시작했다. 성장주의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경제성장률을 국가정책의 목표로 삼겠다는 사고가 바로 성장주의이다. 이 성..
통합진보당이 북한의 3대 세습과 인권, 주한미군 철수 및 재벌해체론 등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혁신비대위 산하 새로나기 특별위원회의는 어제 보고서를 내고 진보적 가치의 혁신과 새로운 비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면서 대북관과 대북정책, 한·미동맹, 경제공약 등 전반에 걸쳐 당이 새롭게 지향해나가야 할 바를 제시했다. 파격적인 내용들이다보니 당권파 일각에선 ‘백기투항이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통진당의 새로나기는 특위가 밝힌 대로 ‘대북관과 대북정책, 한·미동맹 문제에 있어 정당은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당위론에서 출발한다. 그런 맥락에서 3대 세습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고, 북한의 특수성을 이유로 인권 침해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한·미동맹 해체와 미군철수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