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이 유력한 대선주자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절제된 언행, 원칙과 소신을 지키려는 자세 등 정치지도자로서의 덕목을 대중이 일정 부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그가 반드시 극복·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부정적 의미의 정치적 유산이 바로 그것으로 정수장학회도 그중 하나일 터이다. ‘박근혜 캠프’의 정치발전위원을 맡고 있는 이상돈 중앙대 교수가 얼마전 “박 의원 본인이 정수장학회 등 아버지 시대에 있었던 어두운 부분을 대선과정에서 해소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까닭도 과제 해결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제 박 의원이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언급한 것을 살펴보면 이 문제가 이상돈 위원의 ..
선학태 | 전남대 교수·정치학 안철수 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과 언론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대통령 자리는 선택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는 그의 말대로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는데 바람이 그냥 놔두지를 않는”(樹慾靜而風不止) 형국이다. 지지도 부동의 1위인 박근혜는 고개를 젓고, 야권 대선 주자들도 숨죽이고 지켜볼 것이다. 안철수는 정치를 하더라도 진영논리에 매몰되지 않겠다고 말했다. 진보좌파 대 보수우파, 어느 블록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일 터다. 진보 학자들은 한국정치에서 필요한 것은 중도세력이 아니라 사민주의와 같은 진보좌파세력이라고 역설한다. 경청할 만한 통찰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섬세한 관점 같지는 않다. 그간 민주통합당은 적어도 무늬상으론 줄기차게 ‘좌클릭’의 길을..
안홍욱 정치부 기자 ahn@kyunghyang.com 지금이야 수억원대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된 몸이지만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전 차관은 이명박 정부 초기에 잘나갔다. ‘개국 공신’이던 그는 문화부 차관으로, 국무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는 정부 대변인을 겸했다. 신 전 차관은 2008년 5월 “국무총리제는 독재시절에 (대통령이) 얼굴 마담을 시키기 위해, 책임으로부터 차단막을 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당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책임총리제 강화’를 얘기하자 “대통령제를 잘 모르고 하는 얘기”라면서 이렇게 일축했다. 일개 차관이 여당 대표의 제안을 단박에 뭉갰던 그 말은,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사실인 듯하다. 적어도 이명박 정부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국무총리 위상을 어떻..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어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오는 12월19일 대권 고지를 향한 여야의 대선 레이스도 본격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박 의원은 출마선언문에서 경제민주화의 실현과 일자리 창출, 한국형 복지의 확립을 국민 행복을 위한 3대 핵심 과제로 천명했다. 그의 선언문은 ‘1% 대 99%의 세상’으로 상징되는 양극화의 해소라는 시대적 과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번 대선이 국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실질적이고도 생산적인 경쟁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 비록 예고된 바이나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박 의원의 정책적 대변신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라면 5년 전 재벌에게 무소불위의 시장 권력을 넘겨주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며, 법질서는 세..
김경주 | 시인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등장하는 시들은 지루하고 답답했다. 시 자체를 감상하는 법을 몰랐으니 당연하다. 아니, 아무도 우리가 시를 통해 사물과 인간의 진실된 세계에 접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니 교육과정에선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교과서에 갇힌 시들은 물방울이 없는 조화 같았다. 모범답안을 찾아야 하는 입시문학으로서 그 시들은 영원히 시들지 못해서 병들어 있었다. 문학청년들은 ‘입시 서자’로 치부되기 십상이었다. “어떻게 이 시를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 앞에서 “이 시의 주제는 4번의 보기에 가깝다” 같은 ‘답’에 형광펜을 칠하다 보면 수업종이 치거나 시험지를 걷어갔다. 시는 함축과 상징이었지만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있어야만 밑줄을 그을만 했다. 비유는 우리가 모범답안으로 ..
전원책 | 변호사·자유기업원장 적기(赤旗)는 ‘혁명’의 상징이다. 프랑스혁명 직후 루이16세의 ‘반동’에 대항한 시민의 깃발이자 자코뱅 공포정치의 깃발이었다. 1848년 2월혁명 때에도 혁명세력인 소부르주아의 깃발이었다. 그 무렵 을 썼던 마르크스는 2월혁명의 불길이 오스트리아와 독일로 번져가자 쾰른으로 돌아가 신(新)라인신문을 발간했다. 임금노동자 계층이 막 형성된 독일에서 공산주의를 선전할 목적에서였다. 신문사는 프로이센 수비대의 유치장 맞은편에 있었는데 식자공들은 의도적으로 붉은 자코뱅 모자를 쓰고 다녔다. 당국은 불온사상을 퍼뜨린다는 이유로 신문을 폐간하고 마르크스의 추방을 결정했다. 마르크스는 종간호를 빨간 잉크로 찍은 뒤 밴드가 연주하는 가운데 적기가 펄럭이는 신문사를 떠났다. 그 뒤로 붉은색..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 역주행’ 사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민의 기본권을 탄압하고 민주주의 기틀을 훼손한 공직자들이 처벌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하기는커녕 그 사건을 계기로 더욱 승승장구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언론자유 침해의 상징처럼 돼버린 미네르바 사건이나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검사들이 승진·영전했는가 하면, 촛불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 판사는 법관의 최고 영예라는 대법관으로 군림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KBS 국회 민주당 대표실 도청의혹 사건에 연루됐던 한선교 의원을 엊그제 19대 국회의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했다고 한다. 한 의원은 지난해 6월 국회 문방위에서 KBS 수신료 문제를 다룬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녹취록을 읽었다가 민주당에 의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으나 ..
신형철 | 문학평론가 poetica7@hanmail.net 제목은 어려웠고 포스터는 생경했다. 그렇더라도 영화 자체는 얼마간 익숙한 방식으로 찍었으리라 짐작하며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분노와 슬픔을 예감하면서, 그리고 그런 감정적인 반응에 머물고 말 나 자신을 미리 조금 냉소하면서. 그러나 영화 은 예상과 달랐다. 분노와 슬픔보다는 분석과 성찰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과 포스터는 정직한 것이었다. 이미 ‘씨네21’ 이영진 기자가 이 영화의 목표와 성취를 다음과 같이 정확히 요약했으니 인용으로 대신하자.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을 증명하는 방식에 있어 은 유사 주제의 다큐멘터리들과 다른 방식을 취한다. 대개는 희생당한 이들의 편에 서서 억울함에 대한 호소를 강조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에는 사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