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정 | 존스홉킨스대 교수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이들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한 것은 심각한 일이다. 단순한 색깔론을 넘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헌법질서를 흔드는 발언이며, 사실관계조차 틀린 발언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제91차 인터넷 라디오 연설에서 천안함 사건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2010년도 천안함 폭침 때도 명확한 과학적 증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똑같이 자작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늘 그래왔던 북한의 주장도 문제이지만,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우리 내부의 종북세력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 발언은 대한민국 법치주의 원리를 심각히 훼손한다. 대한민국에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
최우규 정치부 차장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때 일이다. 프랑스 북부 ‘칼레’라는 시가 영국군에 포위됐다. 11개월을 버텼으나 끝내 항복해야만 했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 시민을 도살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칼레는 자비를 구했고, 왕은 “명망 높은 시민 대표들이 교수형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칼레 최고 부자인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먼저 자원했다. 시장이 나섰고, 상인과 그의 아들 등 일곱명이 나섰다. 영국 왕의 요구는 여섯명의 교수형이었다. 생 피에르는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했고 모두 동의했다. 다음날 아침 생 피에르는 오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자원한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살아남으면 순교자들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먼저 죽음을 택한 것이다..
민간인 불법사찰 및 은폐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사실상 수사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검찰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과 김진모 전 민정2비서관(현 서울고검 검사)을 불러 조사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장 비서관은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입막음’ 용으로 5000만원을 건넸다는 의혹을, 김 전 비서관은 불법사찰 1차 수사 당시 검찰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부인했다. 검찰은 장 비서관과 김 전 비서관을 비공개 조사하는 특별대우를 베풀더니 “민정수석실 관계자에 대한 소환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했다. 2010년 은폐조작 당시 민정수석이던 권재진 현 법무부 장관은 조사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이다. 지난 3월 중순부터 ..
새누리당이 어제 의원총회를 열어 19대 국회의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6선의 강창희 의원(대전 중구)을 선출했다. 여야의 원구성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강 의원은 오는 5일 국회 개원식과 함께 수장 자리에 올라 19대 국회의 전반기 2년을 이끌게 된다. 강 후보자는 친박 색채가 짙어 4·11 총선 후보 등록 때부터 의장 물망에 오른 인사다. 이로써 새누리당은 국회의장과 대표, 원내대표를 모두 친박인사들이 맡는 명실상부한 ‘박근혜당’으로의 탈바꿈을 완료했다. 경위야 어찌됐든 강 후보에게 축하를 보내야겠지만 그가 안고 있는 여러 약점과 한계로 19대 국회의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19대 국회의 의미는 참으로 각별하다. ‘국회 선진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폭력과 날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엊그제 부산대 강연에서 통합진보당 사태 등 사회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진보정당이 북한에만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건 동의할 수 없다고 했고, 우리 세대의 중요한 과제로는 복지와 정의, 평화를 들었다. 민주통합당 대선 주자 중 한명인 문재인 상임고문이 제안한 공동정부론은 화합정치가 필요하다는 철학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관심사인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선 ‘자문 단계’라고 피해갔으나 그가 정치를 향해 또 한 걸음 내디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안 원장의 강연은 각종 현안에 대한 의견 표명이라는 의미가 있으나 그 수준은 원론을 맴돌았다. 우선 대선 출마를 염두에 뒀을 법한 키워드라 할 수 있는 복지와 정의, 평화는 그간 쏟아져 나온 진보진영의 주장에 무게를 싣는 듯했지만 ..
정제혁 | 사회부 대검찰청이 지난 22일 발표한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검찰 입장’(이하 입장)은 검찰이 자신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매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문서이다. ‘입장’에서 검찰은 정치·사회적 갈등의 ‘최종 해결자’ 역할을 자임하는 것처럼 보인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수사의 배경을 설명한 ‘입장’의 첫 단락은 세 문장으로 이뤄져 있다. 먼저 “통합진보당은 지난 4·11 총선에서 민주적인 비례대표 후보자 선출방식을 통하여 높은 정당득표율을 이끌어냈으나, 최근 불거진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의 총체적인 부정 의혹’으로 인하여 국민적인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이어 “ ‘부정경선 의혹’을 해결하여야 할 통합진보당은 당내 각 정파의 첨예한 대립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硏 연구실장 복지국가 운동에 빨간불이 켜졌다. 2010년 무상급식 이후 보육, 의료, 반값등록금, 복지재정 등 계속 몰아칠 것 같던 복지국가 물결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일시적 멈춤으로 보기엔 정황이 심상치 않다. 우선 보편복지의 선봉에 섰던 야권이 그렇다. 근래 민주통합당의 지도부 선거,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내홍 탓이 아니다. 19대 총선에서 야권이 드러낸 모습은 복지국가를 추진할 의지도 힘도 없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민주통합당은 화려한 복지공약을 내걸면서도 엉성한 재정방안으로 기획재정부의 검증 공세에 시달리는 수모를 당했다. 명확한 재정방안 없이는 복지포퓰리즘으로 공격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안이하게 선거에 임한 결과이다. 진보정당 역시 무기력하긴 마찬가지다. 제도권..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모든 일이 한꺼번에 벌어져 난마처럼 얽혀 있다. 한편에서 통합진보당 당원명부 압수수색이 방송 매체의 화면을 뒤덮는 동안, 다른 한편에선 ‘노동해방실천연대’ 사회주의자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긴급체포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이루어졌다. 그런가 하면 22명의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을 추모하는 국민대회를 연 대책위를 사법처리하겠다는 검경의 엄포가 쌍용차 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소리 높여 외쳐대는 이른바 선진자본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벌거벗은 모습이다. 그 틈을 비집고 이명박 정권 말기의 공안정국을 향한 발톱이 다시 흉측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보수·진보 언론을 막론하고 시대착오적인 진보재구성 논쟁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이 모든 사태의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