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당권파가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최악의 폭거를 저질렀다. 엊그제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문 수습을 위해 열린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는 공당으로서 상상조차 하기 힘든 폭력사태로 얼룩지며 중단됐다. 이날 중앙위는 통합진보당에 주어진 중요한 기회였다.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에 표를 던진 200만명 이상의 유권자, 그리고 진보정치의 대의에 공감하는 모든 시민들은 숨을 죽이고 회의를 지켜봤다. 당내 제세력이 극적 합의를 통해 파국을 피하고 새 출발의 길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속절없이 배반당했다. 당권파 당원들은 1980년대 ‘용팔이 사건(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을 연상케 하는 난장판을 연출했다. 참담한 심경과 함께 개탄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당권파는 중앙위가 시작된 직후부터 ..
유럽과 중남미 등의 진보정당, 더 정확하게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붉은 장미’를 당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장미의 촘촘한 꽃망울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날카로운 가시는 투쟁을, 붉은 색깔은 노동자들이 흘린 피를 의미한다고 한다. 총선 등 각급 선거가 있을 때 진보정당들은 당선자의 이름 위에 붉은 장미를 꽂아주거나 본인에게 직접 장미꽃다발을 안겨준다. 이처럼 진보정당은 보수정당에는 없는 고유한 문화를 갖고 있고, 다수 대중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통합진보당 등 한국의 진보정당은 ‘붉은 장미’ 외에도 또 다른 전통이 있다. 당내 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합창으로 구성되는 국민의례 대신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민중의례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민중의례는 군사독재 정권..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4·11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예전 같으면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읽기 위한 치열한 논의와 공방이 전개될 시점이지만, 요즘 정치 기상도를 보면 상황이 생뚱맞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총선 공약은 내팽개친 채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내부 권력구도와 지도체제 개편 논의에만 매몰돼 있고,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부정선거 논란으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진흙탕 싸움에서 허우적대는 중이다. 총선 결과를 복기하면 단순하다. 이명박 정부의 부패와 실정에도 새누리당 우위의 여대야소가 유지됐고, 진보정당의 성장은 지체되었으며,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은 실패했다.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 역사상 가장 많은 13석의 의석을 얻었다. 그러나 의석수가 증가했음에도 득표율은 2004년 총..
이승철 논설위원 리처드 루거 미국 상원의원의 모습을 가까이서 본 것은 2000년대 초반 워싱턴의 상원의원 회관에서 처음이었다. 루거 의원은 달변이 아니었지만 외교위원회 공청회가 열리면 오랜 연륜에서 오는 해박함과 식견으로 회의를 생산적으로 이끌었다. 가히 상원 외교위원회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만했다. 그런 그가 지난 8일 인디애나주 공화당 경선에서 극보수주의자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선했다고 한다. 루거 의원의 패배에서 미국 정치의 양극화 현상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미국 정치에서 초당파들의 몰락은 이미 시작됐다. 루거 의원과 같은 공화당 소속인 올림피아 스노우에 상원의원이 두 달 전 정치 현상에 넌더리를 치면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스노우에 의원은 루거 의원과 함께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기부양..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이 3급 부이사관 자리를 버리고 4급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갔다. 직급만 떨어진 게 아니다. 현직에 있으면 정년이 보장되는데 보좌관은 다음 총선까지 4년이다. 민주통합당 은수미 당선자와 함께 일하게 된 김은정 전 여성가족부 인력개발과장 이야기다. 김씨가 17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끝내기로 결심한 직접적 계기는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라고 한다. 행시 출신의 이른바 ‘공무원 엘리트’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찰에 가담한 걸 보고 같은 공무원으로서 자괴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김씨가 언급한 ‘공무원 엘리트’는 민간인 불법사찰·은폐조작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진경락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을 가리키는 듯하다. 고용노동부 요직을 두루 거친 진씨는 총리실 파견 중 승진을 위해 불법을 무릅쓰..
정부가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의 주택투기지역을 9년 만에 해제하는 내용 등을 담은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표면적으로는 ‘주택거래 정상화와 서민·중산층 주거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노무현 정권 때 도입된 투기억제 제도를 완전히 걷어내는 동시에 투기수요를 자극해서라도 부동산 경기를 띄우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 발표에 앞서 강남 3구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투기지역인 데다 주택시장에서 차지하는 강남 3구의 상징성 때문에 이곳의 투기지역 해제가 투기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점을 우려하기는커녕 오히려 시장을 향해 ‘강남 3구를 마지막으로 부동산 규제를 모두 풀었다’고 선언함으로써 투기수요 자극을 꾀했다.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박래용 디지털뉴스편집장 이쯤되면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서야 할 것 같다. 경향닷컴에서 이명박 대통령 친인척 측근비리를 인포그래픽(정보+그래픽)으로 만들어 봤더니 유전자 게놈(genome) 지도처럼 배열구조가 어지럽고 퉁퉁하다. 그림에 등장한 인물을 보면 청와대 참모·가신이 5명, 대통령직인수위·서울시 출신이 5명, 안국포럼이 4명, 손위 동서에 처사촌과 사촌처남 등이 8명이다. 최고원로기구라는 6인회 멤버는 대통령을 빼고 3명이 사법처리됐거나 수사를 받고 있다. 부패율 60%다. 집권 내내 공정사회를 입에 달고 살았던 정권이 이 정도니 그런 구호라도 외우지 않았으면 교도소 한 동이 다 찰 뻔했다. 대통령이 “보급품은 자체 해결하라”고 한 것도 아닐 텐데 수인(囚人)조합에 둘러싸인 그래픽 한가운데 MB의 ..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나는 몹시 당황했다.” 카프카의 단편 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중환자를 치료하러 급히 가야 하는데 거센 눈보라가 막고 있기 때문이다. 타고 가야 할 말도 없다. 지금 야권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이 이와 다르지 않다. 지금이 어느 땐가. 무척 당황스럽고, 이 때문에 참 갑갑한 심정이다. 통합진보당의 겯거니틀거니 하는 꼴에 대해 더 말을 보탤 것이 없다. 다만 억울하고 기막혀도 대중을 믿고 다 내려놓으라고 권하고 싶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길게 보면 오늘의 시련은 진정한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벼려지는 담금질이나 성장통일 게다. 지금 시선을 주고, 지탄을 날려야 할 대상은 민주당이다. 오는 12월 대선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이 더 크고 막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