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대통령 임기 단임제는 과거 ‘체육관선거’로 탄생한 제5공화국 정권이 그들의 집권을 합리화하고 국민적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채택한 제도이다. 그 뒤 대통령의 임기는 헌법 개정과정에서 5년 단임제로 확정됐다. 5년 단임제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 만든 제도라기보다 1인 장기집권을 막아보자는 당시의 국민적 여망과 12·12 쿠데타세력들의 정권연장 논리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현행 단임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대통령 자신이 단임으로 끝나 선거에 의한 국민의 심판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책임행정을 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5년마다 공약으로 내세운 선심성 혹은 선거승리용 정책 실천 때문에 대통령이 국가의 중장기발전계획을 추진..
김지환 경제부 기자 석가탄신일이 낀 황금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5일 오후 외교통상부로부터 문자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메시지의 내용은 ‘외교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글본 정오표 공개’였다.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한·미 FTA 한글본 정오표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협정문의 번역오류로 인한 개정내용이 객관적으로 투명하게 공표됨으로써 한·미 FTA 협상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여론 형성의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손을 들어줬다. 외교부는 지난 1월 “정정된 협정문을 공개했기 때문에 국민의 알권리는 이미 충족됐고, 협상 관련 문서는 발효 뒤 3년까지는 비공개”라며 항소를 제기했다. 정오표는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
통합진보당의 4·11 총선 비례대표 후보자 부정경선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세가 정도를 벗어나고 있다. 당초 부정경선에 초점을 맞추는가 싶더니 어느 틈엔가 ‘종북주사파’의 국회 입성 반대로 슬그머니 방향을 틀었다. 이른바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세력들이 이번 기회에 진보진영을 손봐야 한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다 보니 생긴 현상이 아닌가 싶다. ‘진보=종북’이라는 그들만의 낙인찍기가 여전히 횡행하는 현실이 당명까지 바꾼 새누리당의 진면목이라는 얘기인지 안타깝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어제 최고위원회의에서 “(통진당의)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에 대해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종북좌파의 국회 입성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리를 먼저 제기한 인사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파이시티 개발사업 인허가 청탁과 함께 8억원을 받은 혐의로 수감 중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구치소장 직권으로 풀려나 외부 병원에 입원했다. 법원은 이를 모른 채 최 전 위원장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위한 심문기일을 잡았다. 그러나 풀어줄지 말지 심문하는 날에 당사자는 이미 수술대에 누워 있었다. 재판장이 “당황스럽다”고 하자 검사는 “저희도 나중에 알았다.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수용자 처우법)’ 37조 1항에 따르면 구치소장은 수용자에게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외부 의료시설에서 진료받게 할 수 있다. 법원이나 검찰의 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고 법무부에 사후 보고만 하면 된다. 규정대로라면 최 전 위원장의 외부 병원 이송 과정에 위법 ..
장훈 | 중앙대 교수·정치학 후안 린쯔(Linz) 교수는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장단점을 논의하는 이른바 정부형태 논쟁에서 세계적 권위자이다. 스페인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해 온 이 노대가(老大家)는 특히 대통령제가 갖는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 신랄하고도 예리한 비판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라는 저서에 집약된 대통령제의 여러 문제들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아마추어 국외자’의 등장 가능성이다. 내각제는 원천적으로 국회 내에서 착실하게 국정경험을 쌓아온 현역의원들만이 최고지도자에 오를 수 있지만, 온 국민이 직·간접으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대통령제에서는 역설적으로 “정치에 대한 실망감과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정치경력이 거의 없는 국외자들이 선출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서울시장..
한상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 헌법은 국가권력으로부터 정당의 자유와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정당법도 이에 따라 당원명부의 비밀성을 철저하게 보장한다. 물론 재판상 필요 등의 이유로 법원이나 선관위에 예외를 인정하지만, 그것도 “열람”만 가능할 뿐이다. 또한 범죄수사를 위해서도 당원명부를 조사할 수 있는 예외를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필요로 한다. 형소법에 따른 일반적인 압수수색영장이 아니라 정당법에 따라 발부된 별도의 “조사”영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당원명부의 비밀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정당법의 취지에 비추어볼 때, 검찰은 당원명부를 “조사”할 수 있을 뿐 “압수”할 수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압수수색영장을 들이대며 당원명부를 강탈해 갔고,..
이승준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방통대군, 왕수석 등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줄이 수사선상에 오르고 구속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유죄 확정판결이 난 것은 아니나 각종 이권에 부당하게 개입해 알선수재 내지 수뢰의 정황이 짙다. 올해 초에도 친인척·측근 비리가 지면을 장식했고, 이에 대해 대통령은 취임 4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사과(?)를 했다. 조선사에서 가장 비운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왕 중의 한 사람이 정조였다. 유년시절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을 목격하고, 당쟁으로 인한 역모와 암살 기도에도 불구하고 탕평책 등의 시행을 통해 개혁군주라는 고독한 길을 간 인물이 정조였다. 그런데 이러한 정조가 사도세자에 대한 원한을 갚고 모반의 위기상황 속에서 성군(聖君)으로 평가받는 기저에는 철저한 ..
검찰이 어제 통합진보당의 서울 대방동 당사 등 10여곳에 압수수색차 들이닥쳤다. 한 시민단체의 고발이 검찰 수사를 촉발한 모양이나 통진당의 자중지란도 명분을 제공한 것 같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혁신비대위가 경쟁 부문 비례대표 당선자 및 후보자의 사퇴 시한으로 정한 날이다. 계파 간 충돌이라는 ‘내우(內憂)’에 검찰 수사라는 ‘외환(外患)’이 겹쳐진 꼴이다. 난마처럼 꼬인 채 절체절명의 위기로 치닫는 통진당 사태가 참으로 걱정스럽다. 배경이야 어떻든 현시점에서 검찰 수사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혁신비대위가 비례대표 사퇴 거부자들에 대한 징계를 검토하는 등 본격적 쇄신에 나서려던 차다. 더디지만 당 차원의 조사와 조치도 진행되고 있다. 검찰이 헌법상 보장된 정당활동을 제약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