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치러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박지원 후보가 선출됐다. 박 후보는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유인태 후보를 근소한 차로 눌렀다. 박 신임 원내대표는 19대 국회 개원협상을 총괄하는 한편,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다음달 임시전당대회 때까지 당 운영도 책임지게 된다. 이번 경선이 민주당 안팎에서 비상한 주목을 받은 것은 이른바 ‘이해찬 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역할분담론’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친노’와 ‘호남’이 뭉쳐 대선 총력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며 ‘담합’이 아닌 ‘단합’이라 주장했다. 우리는 그러나 두 사람의 합의에 대해 4·11 총선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요구를 배반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저버린 밀실·구태정치라고 비판해왔다. 경선 결과도 이들의 담합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의미를 담은 ..
조명래 | 단국대 교수·도시계획학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용도변경을 둘러싼 청탁·압력·돈거래의 망이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 개발업자와 정권실세 사이의 청탁관계로 시작하더니, 정권실세와 선거캠프, 두 시장의 정무라인, 시 간부와 도시계획위원, 현 대통령의 시장 시절 결재라인 등으로 뻗치고 있다. 현 정권의 최대 비리사건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는 ‘파이시티 사건’의 본질은 도시개발이고, 그 중심에 도시계획위원회가 있다. 도시계획위원회는 도시의 각종 시설을 개발하고 설치하는 시책들을 자문·심의·의결하는 기구다. 법에 규정된 심의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면 어떤 도시계획사업도 진척될 수 없다. 그로 인해 자산상의 막대한 불이익을 겪을 수 있지만, 허용되면 많은 혜택을 얻기도 한다. 우리의 도시에는 아직도 수많..
김철웅 논설실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서울 청계광장에서 엊그제부터 열리고 있다.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나온 탓에 4년 만에 재개된 이 집회엔 ‘촛불소녀’로 나왔다가 그새 ‘촛불숙녀’로 성장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의 태도는 “남들은 조용한데 왜 이리들 호들갑이냐”고 윽박지르는 것 같다. 농림수산식품부가 며칠 전 내놓은 ‘미국 광우병 발병 이후 세계 주요국 조치 동향’에 따르면 이집트, 과테말라, 인도네시아 등 세 나라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부분적으로 중단했다. 반면 캐나다, 멕시코, 일본 등 17개 나라는 별도 조치 없이 수입을 계속하고 있다. 이걸 보면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 그런가. 저들은 대범한데 한국인들만 유난히 ..
정부가 서초·강남·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의 주택 투기지역 지정을 해제할 모양이다. 4·11 총선이 새누리당 승리로 끝나자마자 경제 부처 일각에서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의 필요성을 거론하더니 최근 들어서는 “강남 3구 투기지역 지정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발표가 임박한 듯한 인상까지 주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영향받아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강남 집값이 들썩거리고 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주택·토지 등 부동산 경기가 뚜렷한 하강곡선을 그리면서 정부는 해마다 두세 차례씩 부동산 시장을 띄우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집을 팔려고 해도 못 파는 서민층의 고충을 덜어준다는 명분 아래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으로 포장된 여러 대책을 쏟아냈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고 과거에 힘들게 도입했던 투기억제 장치..
안홍욱 정치부 기자 ahn@kyunghyang.com 18대 국회가 2일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번 국회 임기는 5월29일까지이지만 이날 국회 본회의를 마지막으로 실제 활동은 끝난 셈이다. 18대 국회는 쏠림이 심했다. 4년 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153석으로 제1당이 됐고, 친박연대(14석)까지 합하면 167석이었다. 반면 통합민주당(83석), 민주노동당(5석), 창조한국당(3석) 등 진보·개혁 정당은 합해봐야 91석에 그쳤다. 힘의 우열이 여실한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국회 운영은 진즉 기대하기 어려웠다. 거대 여당은 야당의 반대에 직면하면 우회로를 찾지 않았다. 야당을 힘으로 밀어붙이고 밟고 넘어갔다. 그 결과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이 갖가지 기록으로 남겨졌다. 18대 직권상정 의안 수..
양권모 | 정치·국제에디터 sulsu@kyunghyang.com 민주통합당에서 이해찬 전 총리와 박지원 의원이 만나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나눠 맡기로 정리했다고 한다. 권력을 맡을 당사자들끼리 밀실에서 짬짜미를 해놓고, 이것을 소속 국회의원과 국민들이 아름다운 단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친노와 호남의 결합, 대선 승리를 위한 역할 분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착각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결합과 대선 승리는 이런 식의 끼리끼리 담합으로 담보되지 않는다. 왜? 이들의 역할 분담은 가치도, 명분도, 감동도 없기 때문이다. 대선 승리를 위한 선택이라고 내세웠지만, 외려 대선을 포기한 것으로 간다는 점에서 전략적이지도 않다. 첫째, 가치도 없고 명분도 없다. 친노 대 비노, 호남 대 비호남의 구도를 언제까..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bbbenji@naver.com 1998년 일본 총리가 된 오부치 게이조는 지지율이 60%를 넘을 만큼 인기를 끌었고, “10~2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명재상의 실적을 남겼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던 데는 나름의 비결이 있었다. 대학원에 다닐 때부터 정계 진출을 준비해온 그는 연설을 잘하기 위해 웅변부에, 정치인이 되면 휘호를 부탁받을 것이라며 서예부에, 난투국회에 대비해 합기도부에 들었다. 자기 지역구인 ‘군마’가 관광명소라며 관광학회에도 가입했다. 심지어 “정치인은 세계를 알아야 한다”며 25세 때 9개월간 4대륙 38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26세 때 최연소 중의원이 되면서 총리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한마디로 오부치는 준비된 ..
윤여준 |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 지난 총선에서처럼 말의 위력과 폐해가 단적으로 드러난 적도 흔치 않을 것이다. 팟캐스트 의 멤버인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의 과거 막말파동이 판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말로 인해 역사의 향방이 바뀐 경우는 동서고금을 통해 적지 않지만, 우리 정치사에서는 4·19 당시 민심에 불을 지른 “총은 쏘라고 준 것”이라는 이기붕의 망언 이래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정치란 단순한 폭력에 의한 일시적 지배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공동체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명분으로서 특히 말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왕과 조정에서는 용어 사용에 극도의 신중을 기했고, 군주는 특정 용어를 독점하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일찍이 수사학과 논리학을 중시하는가 하면,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