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성공회대 교수·정치사회학 오래전부터 나는 진보의 자기성찰성 혹은 진보적 성찰성이라고 하는 화두를 가지고 있다. 이는 진보가 스스로를 성찰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나 태도인데, 우리가 통상 적에게 들이대는 비판의 잣대를 진보와 좌파가 스스로에게 적용해보는 감수성을 갖자는 취지다. 진보의 성찰성은 진보가 더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적의 장점을 ‘전유’할 수 있는 전략능력을 제고하게 할 수도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고비마다 이러한 성찰적 감수성을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졌다. 예컨대 김용민 파동을 생각해보자. ‘보수의 공세에 대해 정면돌파’한다는 시각에서가 아니라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김용민의 설화는 그것이 과거에 이루어진 일이..
4·11 총선 패배의 치유책을 모색하는 민주통합당의 대응이 여전히 실망스럽다. 선거 직후 봇물을 이룰 것 같던 자성론은 한명숙 대표의 사퇴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 겸허하게 민심을 수용하겠다면서 ‘대오각성’이니 ‘환골탈태’니 운위하던 위기감은 벌써 옛일이 돼 버린 분위기다. 민주당이 진정 패배를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민주당이 주말 내내 임시 지도체제를 놓고 벌인 논란은 위기의 본질과 거리가 한참 멀다. 대안부재론에 따른 직무대행 체제냐, 공동책임론에 의한 비대위 체제냐는 다툼은 ‘친노’와 ‘비노’의 대결로 비쳐질 뿐이다. 이번 총선 패배가 친노의 독주와 전횡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지만 그렇다고 임시 지도체제로 세력 대결을 벌인다는 건 또 다른 파워게임..
이한승 | 신라대 교수·바이오식품소재학 과학자는 보수적일까 진보적일까? 과문해서 우리나라의 통계는 잘 모르겠으나 미국 과학자에 대한 통계는 본 적이 있다. 2009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과학자의 무려 52%가 진보(자유주의), 35%가 중도였고 보수는 9%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미국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 통계는 결과가 많이 다르다. 미국인의 경우엔 20%가 진보, 38%가 중도, 37%가 보수라고 응답했다. 미국 내 과학자와 비과학자 사이에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함을 볼 수 있다. 물론 극단적 보수주의자에 가까운 조지 부시 대통령 치하 8년에 대한 미국 과학자들의 반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 논란을 필두로 각종 연구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과학자들을 괴롭혔다. 게다가 과학 예산의 ..
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서구 문화권에서 지혜의 대명사는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다. 성경 열왕기상 3장에 기록되어 있는, 두 여자가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자식이라 다투는 사건의 재판은 아주 유명하다. 이 쟁론에 대해 솔로몬은 칼을 가져오게 하여 아이를 둘로 나누라고 하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주장을 철회하는 여자를 생모로 판정한다. 역사는 이 지혜로운 처결을 일러 ‘솔로몬의 재판’이라 부른다. 중국에도 이와 꼭같은 이야기가 있다. 원나라 때 이잠부(李潛夫)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희곡 가 그것이다. 이 희곡에 포청천(包靑天)이 등장한다. 마씨 집안의 첩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를 질투한 정실부인이 남편을 독살하고 첩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뒤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그 아이를 자기가 낳았..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어제 “새로운 변화를 향한 국민의 열망을 제대로 받들지 못했다”며 대표직을 사퇴했다. 4·11 총선에서 진 민주당의 사령탑으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한 대표의 사퇴는 민주당이 요구받고 있는 쇄신과 변화의 첫걸음일 뿐이다. 그만큼 민주당이 처한 상황은 엄중하고, 가야 할 길은 멀다. 한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리더십 논란에 휘말렸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 유죄를 받은 임종석 전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기용하고 공천까지 준 게 시작이었다. 논란이 일자 임 전 의원이 총장직에서 물러나고 공천장도 반납했지만 여론은 나빠질 대로 나빠진 뒤였다. 팟캐스트 멤버 김용민씨를 정봉주 전 의원 지역구에 공천한 것도 화근이 됐다. ‘지역구 세습’ 비판을 무릅쓴 선택은..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어제 기자회견에서 “빠른 시간 안에 불법사찰 방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이 총선 승리 후 일성으로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를 언급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실제로 불법사찰·은폐조작 사건의 진상을 끝까지 밝혀내겠다는 뜻이 있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불법사찰은 말 그대로 ‘불법’이다. 절도 방지법이나 성추행 방지법이 불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따로 방지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 기존 법률로도 처벌이 가능하고, 과거 자행된 불법사찰의 진상을 규명하면 그것이 재발을 막는 효과를 낳게 된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과거’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총선 과정에서 “불법사찰 문제는 특검에 맡겨두고 정치권은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더니, 어제 기자회견에선 특검 ..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진퇴 문제로 숙고하는 모양이다. 19대 총선에서 패했다는 결과보다 그 패배에 이르게 된 과정이 더 문제라는 내부의 질타가 쏟아져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도부 몇몇이 책임을 진다고 해서 충격의 패배가 쉽게 추슬러질 것 같지 않다. 민주당으로선 곱씹을수록 기가 막히고, 반추할수록 용납할 수 없다는 후회가 밀려오는 탓이다. 자신들의 존재감에 대한 근본적 회의라 할 수 있다. 딱히 여권의 안정적 승리라 할 수는 없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승리이고, 민주당의 패배가 분명한 총선 결과가 몰고온 후폭풍이다. 민주당의 패인은 한둘이 아니다. 으뜸이라면 ‘친노 인사’들의 독주, 전횡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참여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뒤 ‘폐족’을 자임했다가 2010 지방선거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 4개월 만에 김정은 체제가 공식 출범했다. 북한은 엊그제 조선노동당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을 당 중앙위 비서국의 제1비서로 추대했다.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의 자리에 올려놓는 대신 김정은에게 실질적인 권력을 부여한 것이다. 당의 지도적 지침이었던 주체사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대체해 3대 세습을 명문화하는 동시에 김정은의 북한이 선대의 유훈통치를 이어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정은은 또 당 중앙군사위원장 및 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에도 추대됨으로써 당과 군의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및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최룡해를, 당 정치국 위원에 김정각 인민무력부장을 각각 임명하는 등 핵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