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선 논설위원 아마 ‘한 번 주유로 서울과 부산을 왕복할 수 있다’고 했던 것 같다. 강한 인상을 남긴 광고 중 하나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카피의 한 구절이다. 살인적인 고유가 시대를 살아가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더 와닿았던 모양이다. 전기와 휘발유로 가는 차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새길수록 새롭다. 고가라는 한계가 있으나 돈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친환경론자라는 평판까지 덤으로 얻는다. 유행하는 말로 ‘개념 있는’ 측에 들 만하다.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업 경영자와 과학기술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한 산물일 것이다.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이 정도라면 국리민복을 외치는 정치, 정치인이라면 이를 능가하는 상상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 상상력의 사례라면 2002년..
김광기 | 경북대 교수·사회학 지금 전국의 국립대학은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어수선하다. 총장 직선제 폐지를 둘러싼 교육과학기술부와의 갈등이 빚어낸 후유증 때문이다. 교과부는 지난해 초 ‘교육공무원임용령 일부 개정령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킴으로써 단과대학장 직선제를 폐지시키고 총장이 직접 임명토록 해 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금의 후유증은 그때 이미 충분히 예견된 일 중 하나였다. 교과부가 총장 직선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는 명분은 간단하다. 직선제의 폐해가 심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실성 없는 공약의 남발과 학내 구성원의 파벌 형성 등으로 선거가 과열되고, 보직을 공에 따라 나누어 먹어 학내 분위기를 크게 해친다는 역기능이 직선제 폐지의 명분으로 등장했다. 이에는 확실히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과거의 ..
이중근 기획에디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 총선 막바지에 광주에 출마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와 대구에 출마한 김부겸 민주통합당 후보를 불러내 모종의 정치 행사를 가지려 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런 이벤트는 안 원장이 그동안 비판해온 한국 정치의 낡은 행태의 단면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으로, 현 시점에서 안 원장의 정치의식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가 생각하는 새로운 정치란 무엇인가. 아무도 그것을 모른다는 데 안 원장 문제의 핵심이 있다. 정치와 사회 현안에 대해 발언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더구나 안 원장처럼 여론조사 지지율이 50% 안팎에 이르는 명망 있는 인물이라면 더욱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의무도 있다. 여기에 국민이 현역 정치인이나 정당에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을..
김진호 논설위원 향토에 대한 자부심도 정치인의 입에 오르다 보면 엉뚱하게 변질된다. 특히 개발독재시대에 발아된 지역주의를 벗어던지지 못한 우리 정치지형에선 모순 구조를 더욱 뒤틀리게 할 수도 있다. 19대 총선 대구 수성갑에서 김부겸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누르고 수성에 성공한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이 연일 쏟아내는 지역주의 발언을 들으면서 뒷맛이 씁쓸해지는 까닭이다. 이 의원은 지난 12일과 16일 CBS와 PBC 라디오방송에 잇달아 출연해 지역과 야당의 정체성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그가 내놓은 발언들을 요약하면 이렇다. “대구·경북 지역은 국가의 안전을 생각하는 화랑도 정신이 내려오는 곳으로 급진 좌파이념의 민주통합당은 지역주민들에게 절대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쪽(민주당)은 걸핏하면 데모하고..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남들이 우리를 ‘백의민족’이라고 부른 이유는 우리가 흰옷을 입고 흰색을 숭상했기 때문이란다. 중국 문헌인 ‘위지동이전’을 보면 “부여는 흰색을 숭상하여 흰옷을 널리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기원전 1세기부터 300년간 존속한 부여 사람들이 백의를 입었다니, 그 역사가 굉장히 오래됐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이 진짜로 흰옷을 좋아했는지는 의문이다. 흰옷은 때를 잘 타고 오래 입으면 누렇게 변색된다. 또한 더 살이 쪄 보이고, 얼굴이 상대적으로 어둡게 보이는 단점도 있다. 흰옷을 입었던 것은 염색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탓이라는 주장도 그래서 제기됐다. 사극을 보면 못사는 사람들은 흰옷을 입지만, 양반들은 죄다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좋아한 색깔은 어..
이일영 | 한신대 교수·경제학 4·11 총선 결과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확보하고 야권연대는 140석에 그친 데 대해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감안하면,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렇게 말아먹다니…” 하는 탄식이 나올 만하다. 그러나 경제조직을 연구하는 조직경제학의 관점에서 평가해 본다면, 야권의 140석 확보도 과분한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는 선거일 며칠 전 고교시절 은사로부터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e메일을 받았다. “이제 거의 선택할 후보와 정당이 정해졌을 것이지만 한 번 더 심사숙고하시기를 바랍니다. … 선동에 속지 말고 양심을 지켜야 함을 명심하십시오. 노소간 기권하지 마십시오. 민심이 천심임을 보..
오민규 | 비정규노조연대회의정책위원 “망국적 한국병을 치유하고 신한국을 창조하자!” 1995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김영삼 문민정부는 ‘민주자유당’의 이름을 ‘신한국당’으로 개명한다. 당명만 바꾼 게 아니다. 구 민정당, 공화당계 인사를 몰아내고 이재오·김문수 등 민중운동, 노동운동 출신 인사들과 홍준표·맹형규 등 당시 스타급 신인들을 영입한다. 다음해 치러진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42%에 달하는 현역 교체율을 보인 공천을 통해 139석을 얻어 제1당 자리를 수성하고, 과반 의석도 확보한다. 총선 직후 김영삼 대통령은 “투쟁과 분배 우선에서 벗어나 경제 발전과 함께 가는 합리적 생산적 노동운동”을 주문하며 이른바 ‘신노사관계 구상’을 발표한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김영삼 대통령은 ..
이기수 정치부장 152(새누리당) 대 127(민주통합당). 158(보수) 대 142(민주·진보). 좁혀도 넓혀도 뭔가 홀린 듯한 스코어였다. 11일 밤부터 신문사에 걸려온 전화만 봐도 진 쪽의 패닉은 꽤 오래갈 듯하다. 하늘이 준 진보 과반의 기회를 갖다 바쳤고, 별렀던 불법사찰·종편 청문회가 가뭇해졌고, 복지·재벌개혁 이정표도 멀어진 듯한 항변이었다. 원주의 40대 남자는 “다 죽으라고 전해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한명숙·김용민 욕만 퍼붓던 부산 사투리가 들렸고, 말없이 한숨만 쉬는 여자도 있었다. 야권 지지층의 공허감이 파도처럼 실려 왔다. 2010년 6·2 지방선거, 가까이는 6개월 전 서울시장 선거부터 오매불망하던 심판의 기세가 꺾인 울분이리라. 이긴 쪽도 혼란스러워 했다. 152는 짐작도 못했던..